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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느 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박찬욱 감독에게 3번째 수상을 안겨준 ‘헤어질 결심’은 영화 <색, 계>와 <만추>에서 그 아름다운 미모를 뛰어넘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배우로 자리잡은 중국 배우 ‘탕웨이’와 영화 <괴물>, <이끼>, <최종병기 활> 등의 주연을 맡으며 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박해일’이 각각 주인공 ‘송서래’와 ‘장해준’ 역을 맡은 수사물이자 로맨스 영화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의 인상적인 영화를 연출하며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베를린국제영화제, 영국아카데미영화상, LA비평가협회상, 카탈루냐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서도 상을 휩쓴 감독입니다. 그는 2003년작 <올드보이>를 통하여 2004년에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2009년작 <박쥐>를 통하여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 <아가씨> 이후 6년만에 완성한 영화 <헤어질 결심>을 통하여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봉준호 감독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형사 ‘장해준’이 산에서 추락사한 사망자에 대한 사건을 수사하던 중 사망자의 딸로 착각할 만큼 나이차가 많이 나는 젊고 아름다운 중국인 아내 ‘송서래’를 취조하게 됩니다. 보통의 형사들과 달리 차분하고 깔끔하며 예의 바른 형사 해준은 남편의 사망 소식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침착한 서래를 의심하지만 또 알 수 없는 끌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등산을 좋아해 영상 채널까지 운영하고 있던 남편과 달리 산을 좋아하지 않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서래는 남편에게 상습 폭행도 당했던 것으로 알려지며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됩니다. 이포라는 작은 해안 마을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아내와 주말부부로 지내는 해준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서래의 가까이에서는 잠을 잘 수 있게 됩니다. 서래의 남편 사건이 자살로 종결되고 그 전까지 자신의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고 있던 해준은 점차 서래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영화 <아가씨>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에서 찰떡 같은 클래식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여 영화 속 장면의 미장센을 완성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박찬욱 감독은 말러의 음악을 사랑하는 ‘말러리안’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드디어 말러의 작품을 배경 음악으로 사용해 두 주인공의 잔잔하지만 거센 파도 같은 감정의 흐름과 사망 사건의 극적인 흐름들을 치밀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는 오스트리아 후기 낭만파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20세기 작곡가 중 가장 심오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음악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교향곡 <대지의 노래>를 비롯한 10개의 교향곡 모두가 그의 생각처럼 ‘하나의 세계와 같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각각의 세계가 모두 전세계의 크고 작은 오케스트라들이 사랑하는 교향곡이 되었습니다.
말러가 1901년에서 1902년까지 작곡한 ‘5번 교향곡 (Symphony No.5)’은 그가 표제음악이 아닌 특정한 이미지나 스토리가 없는 순수한 음의 조합을 통한 ‘절대음악’으로 구성된 4개의 악장의 교향곡으로 작곡하려 했던 곡입니다. 하지만 당시 41세였던 말러가 19세 연하의 작곡가이자 작가였던 ‘알마 쉰들러 (Alma Margaretha Maria Schindler, 1879-1964)’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오스카 코코슈카’, ‘클림트’, ‘발터 그로피우스’와 같은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알마 쉰들러에게 구애하기 위하여 말러는 ‘아다지에토 (Adagietto)’ 악장을 하나 더 작곡하여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다섯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였고, 이 곡을 통하여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다지에토의 악보를 알마에게 보냈고 뛰어난 작곡가이자 예술가였던 알마는 이 악장의 의미를 깨닫고 말러와 결혼하게 되었죠.
1악장 ‘장송행진곡, 침착한 걸음으로 엄숙하게, 행렬처럼 (Trauermarsch, In gemessenem Schritt. Streng. Wie ein Kondukt)
2악장 ‘폭풍처럼 움직임을 가지고, 가장 격렬하게 (Stuermisch bewegt. Mit froesster Vehemenz)’
3악장 ‘스케르초. 힘있게, 빠르지 않게 (Scherzo. Kraeftig, nicht zu schnell)
4악장 ‘아다지에토, 매우 느리게 (Adagietto, Sehr langsam)
5악장 ‘론도-피날레. 알레그로 (Rondo-Finale. Allegro)
5악장으로 구성된 말러의 5번 교향곡 중 4악장 ‘아다지에토’는 현악기와 하프만이 연주하는 매우 아름다운 곡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하기에 말러의 5번 교향곡은 애틋함과 절실함 외에도 고독이나 두려움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많이 내포된 곡입니다. 물론 말러가 미래를 볼 수는 없었겠지만, 말러 부부의 딸이 병으로 사망한 후 그로피우스와 불륜을 저지르고 말러의 사망 후 그와 재혼한 알마의 삶과 심경을 복합적으로 잘 그려낸 곡이 바로 말러의 교향곡 5번 아닐까 짐작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역시 두 주인공의 사랑, 어쩌면 욕망을 복합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싶어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를 배경 음악으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는 3개의 장면에 등장합니다.
암벽 등반을 즐기는 서래의 남편은 자신의 영상 채널에서 산을 오르며 “말러 5번을 틀고 등산을 시작하면 4악장이 끝날 때에 정상에 다다르고, 그 정상에서 5악장을 듣고 하산하면 완벽하다”라고 표현합니다. 또 서래의 남편이 거실에서 혼자 LP를 꺼내 음악을 듣는 장면에서도 아다지에토는 등장합니다.
그리고 서래의 비밀을 알게 된 해준이 그녀의 행적을 따라 등산하는 장면에서도 아다지에토가 배경음악으로 쓰입니다. 흐르듯이, 격렬하게, 진심을 담아, 조금 서둘러서 등 말러가 아다지에토에 쓴 지시어처럼 해준과 서래의 감정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어긋나기도 부서지기도 합니다.
해준에게 ‘미결’로 남아야 완전한 사랑이 될 것이라 믿는 서래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래에게 느끼는 감정에 휩쓸려 ‘붕괴’되고야 마는 해준의 ‘비극적인 멜로’를 천재 감독의 섬세한 연출로 그려낸 긴 여운의 영화 <헤어질 결심>, 그리고 산과 바다, 그리고 파도소리로 채워진 이 영화 속 해준의 대사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도 있고, 잉크가 물에 떨어지듯 서서히 퍼지는 사람도 있다”란 말처럼 감정의 미묘한 엇갈림과 욕망, 그리고 고독을 완벽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영화를 살린 클래식,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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