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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브런치 클래식 매거진

브런치 칼럼 #26. 음악 영화 이야기 1. 영화 "피아니스트", 그리고 쇼팽

by zoiworld 2017.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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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주소는 https://brunch.co.kr/@zoiworld/36 입니다~~^-^

안녕하세요. 매달 2, 4번째 주에 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 칼럼으로 찾아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쏘냥 (박소현)입니다.

 

디즈니 판타지아 1960 시리즈에 이어 2017년 하반기에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 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제로 음악 영화 이야기 시리즈를 이야기 해보려 하는데요.오늘은 그 첫번째 주제로 영화 피아니스트와 영화 속에 등장한 쇼팽의 두 작품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피아니스트애드리언 브로디 (Adrien Brody, 1973~), 토마스 크레취만 (Thomas Kretschmann, 1962~)이 주연으로 연기한 작품으로 쉰들러리스트, ET 등으로 유명한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유대계 출신의 유명 감독이자 올리버 트위스트, 테스 등의 작품을 연출한 감독으로 유명한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nski, 1933)이 감독을 맡아 2002년에 개봉하여 큰 흥행을 불러 일으킨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유대계 폴란드인이자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슈필만 (Wladyslaw Szpilman, 1911~2000)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인데요.

 

슈필만은 그가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던 1939년에 독일 나치의 폴란드 침공, 점령, 그리고 바르샤바의 게토 (Ghetto, 유대인 강제 거주 거리, 구역)로 강제 이주를 경험하였습니다.그는 45년까지 약 6년의 시간 동안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살아남은 20여명의 유태인 중 한명입니다.슈필만은 그와 우연히 만나게 된 독일의 교육자 출신이자 나치의 인종차별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독일 육군 장교였던 빌헬름 호젠펠트 (Wilhelm Adalbert Hosenfeld, 1895~1952)에게 음식 등의 생존 필수품들을 제공받았으며, 그 덕분에 소련이 바르샤바를 다시 점령해 독일군에게서 해방되는 순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호젠펠트는 소련군에게 잡혀가 포로 수용소에서 1952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지만, 슈필만은 그 후에도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자신이 살아남은 경험과 호젠펠트와의 인연을 도시의 죽음 (Smierc Miasta)란 제목의 자서전에 담아냈으며 1998년에 다시 피아니스트란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슈필만의 삶과 소설, 그리고 자신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태인 학살과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몸소 겪었던 기억을 토대로 이 영화 피아니스트를 그려내었으며, 그 결과 2002년 깐느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쉰들러리스트와 함께 유태인 학살을 주제로 한 홀로코스트 (Holocaust) 영화의 상징처럼 그려지는 이 영화의 전체에 쇼팽의 피아노 작품들이 흐르는 것이 인상적인데요.

 

프레데릭 쇼팽 (Frederic Francois Chopin, 1810~1849)는 폴란드가 낳은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알려져있지요.그가 폴란드를 떠난 1830, 그의 나이 20세때까지 썼던 이름은 프리데리끄 프란치세끄 쇼팽 (Fryderyk Franciszek Chopin)으로 1830년부터 죽을때까지 살았던 프랑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프랑스어로 바꾸며 우리에겐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으로 알려져있습니다.

 

20세의 나이에 조국 폴란드를 떠나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쇼팽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국심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았었는데 그런 그의 마음과 폴란드인스러움을 잃지 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매우 중요한 레퍼토리이자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들을 다수 작곡했는데요.

 

그 중 오늘의 영화 피아니스트에 등장한 작품은 녹턴, 즉 야상곡과 발라드 두 작품입니다.

 

첫째로 쇼팽의 야상곡 20번 내림다단조 (Nocturne No.20 in c scharp minor, B.49)은 쇼팽이 1827년부터 1846년까지 작곡한 21개의 작품 중 20번째 작품으로 1~18번과 달리 쇼팽의 사후에 출판된 4곡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녹턴이 들어간 19~21번의 작품은 쇼팽이 폴란드에 있을 때 작곡된 작품들로 1번보다 작곡 시기는 앞선 작품들입니다.

 

이 녹턴은 현재까지도 독주 피아노 작품으로 자주 연주회에서 연주되는 매우 완성도가 높은 곡들로, 거의 대부분 A-B-A의 세도막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중 쇼팽 20번은 실제로 슈필만이 독일인 장교 호젠펠드 앞에서 연주를 했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그 장면은 자서전에서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건반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손가락들이 경련을 일으켰다.

어쨌든 난 지금 피아노를 쳐서 몸값을 치뤄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거의 2년 반 동안이나 연주를 하지 못했다. 손가락은 뻣뻣했고, 켜켜이 때로 덮여 있었으며, 은신해 있는 건물에 불이 나는 바람에 손톱도 깎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유리창도 없는 방 안에 방치된 피아노는 기계 장치가 습기로 팽창되어 건반이 아주 뻑뻑하였다. 나는 쇼팽의 야상곡 내림다단조를 쳤다. 제대로 조율도 안 된 피아노 줄의 탁한 울림이 텅 빈 집과 계단을 지나 길 건너편에 있는 빌라의 폐허에 부딪쳐 맥 빠지고 우울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연주를 끝내자 그 침묵은 전보다 한층 더 음울하고 괴괴했다. 거리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에서 쇼팽의 야상곡 20번이 아닌 쇼팽의 발라드 1 (Chopin Balldae No.1 in g minor, Op.23)” 을 연주합니다.

쇼팽의 발라드는 역시나 세도막 형식을 따르는 피아노 독주곡이나 4곡만이 작곡되었고, 당대 폴란드의 낭만 시인이자 애국 시인이었던 아담 미츠키에비치 (Adam Bernard Mickiewicz, 1798~1855) 1828년 서사시 콘라드 월렌로드 (Konrad Wallenrod)를 읽고 감명을 받아 작곡한 작품입니다.

 

발라드는 이야기가 있는 노래란 뜻으로 14, 15세기에는 춤곡의 일종으로 쓰였으나 18세기에는 서정적인 특징을 지닌 기악곡으로 발전되었으며 쇼팽은 콘라드 월렌로드에서 영감을 받아 폴란드에의 애국심과 민족 음악적 특징을 잔뜩 가미해 이 발라드 1번을 작곡하였습니다.

 

단순하고도 여린 도입부로 극적이게 발전한 후에 서정적이고도 애절한 테마가 흐르고 그 후에 다시 격정적인 절정으로 치닫고 그 후에 좌절하고 분노를 거듭하다 결국 자유로이 해방되는 음악적 흐름을 지닌 발라드는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독일 장교 앞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현실과 비합리적이고도 야만적인 삶에 희망과 좌절과 그리고 목숨을 갈구하는 유대인 피아니스트, 폴란드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판단하였고, 그 결과 이 영화의 가장 인상깊은 장면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 슈필만이 연주했던 쇼팽의 녹턴 역시 영화 피아니스트 속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등장합니다. 그가 초반 폴란드 라디오 방송국에서 라이브 중계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나 모든 악몽이 끝난 후에 연주되며 주인공에게 닥칠 재앙과 학살의 기억들의 폭풍전야와 폭풍이 지나간 후의 폐허 속의 희망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견뎌낸 한 음악가를 그려낸 영화 피아니스트, 그 음악가의 평화와 처절한 비극을 그려낸 폴란드 작곡가 쇼팽의 피아노 작품 야상곡 20번과 발라드 1번이 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 26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