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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브런치 클래식 매거진

브런치 칼럼 #72. 영화 <박쥐> - 바흐의 칸타타 '나는 이제 만족하나이다'

by zoiworld 2021.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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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주소는 https://brunch.co.kr/@zoiworld/183 입니다~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로 화려한 장편 상업 영화 감독 데뷔 이후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으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2013년 미국 드라마 <스토커>, 그리고 2016년 영화 <아가씨> 등으로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청룡영화상 등 국내 최고의 상은 물론 칸 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등 세계적인 상을 휩쓴 박찬욱 감독, 그는 그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클래식 음악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특유의 미장센을 완성하는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2009년 메가폰을 잡고 그의 뮤즈인 송강호를 비롯하여 김옥빈, 신하균, 김해숙 등 우리 나라 최고의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완성한 영화 <박쥐>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포함 수많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빛낸 작품입니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가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어서 일어나는 일을 매우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약 10년만에 각본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인 에밀 졸라 (Emil Zola, 1840-1902) 1867년에 쓴 소설 테레즈 라캥 (Therese Raquin)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카톨릭 신부 현상현 (송강호 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는 연구소에 지원하여 파견을 가게 되고, 이 곳에서 원치 않게 피를 마셔야 살 수 있는 흡혈귀가 되고 맙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종교와 자신의 본질에 대한 고뇌에 시달리게 되며 최대한 살생을 하지 않고 피를 취하려 하지만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날, 현상현은 초등학교 동창생 강우 (신하균 분)와 만나게 되고 그의 초대로 강우의 집에 방문해 그의 가족들을 만나게 됩니다. 강우의 아내 태주 (김옥빈 분)은 강우의 어머니 라 여사 (김해숙 분)에게서 어릴 적부터 키워진 고아였으나, 그들에게 학대를 받고 있었습니다. 현상현은 태주에게 묘한 연민과 성적인 그리고 피를 갈구하는 욕구를 느끼게 되고 결국 그는 욕망에 무릎 꿇고 태주와 사랑을 나누게 되고, 태주 역시 흡혈귀로 만들게 됩니다.

 

영화 <박쥐>는 금지된 것들에 대한 사랑을 다루고 있는 스릴러이자 로맨틱 영화이기 때문에 매우 에로틱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중 영화 초반 현상현 신부가 연구소에서 리코더를 부르는 곡이자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영원한 사랑을 꿈꾸던 두 흡혈귀 상현과 태주와 함께하는 곡이 바로 바흐의 작품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음악의 아버지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1727년 베이스 독창을 위하여 작곡한 칸타타 82<나는 이제 만족하나이다> (Cantata BWV.82 <Ich habe genug>)는 굽은 나팔이란 뜻의 코랑글레 (Coranglais)로도 불리는 사냥 오보에란 뜻의 오보에 다 카치아 (Oboe da caccia), 오보에나 플루트 그리고 현악기와 통주저음으로 구성된 교회 칸타타입니다.

 

1.     아리아 <나는 이제 만족하나이다> (Aria <Ich habe genug>)

2.     레치타티보 <나는 이제 만족하나이다> (Recitativo <Ich habe genug>)

3.     아리아 <잠들어라, 무딘 눈들이여> (Aria <Schlummert ein, ihr matten Augen>)

4.     레치타티보 <오 주여! 아름다운 그때가 온다면: 그렇다면!> (Recitativo <mein Gott! Wenn koemmt das schoene: Nun!>)

5.     아리아 <나는 나의 죽음에 기뻐합니다> (Aria <Ich freue mich auf meinen Tod>)

 

 

3개의 아리아와 2개의 레치타티보가 번갈아가며 나오는 5개의 곡으로 구성된 교회 칸타타인 바흐의 칸타타 82는 죽음을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하여 영원한 안식으로 그리며 동경하는 내용입니다. 그 중 영화 <박쥐>에 등장하는 첫 번째 아리아는 성경 속 누가복음 225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구절에서 가사를 썼습니다.

 

Ich habe genug,

Ich habe den Heiland, das Hoffen der Frommen,

Auf meine begierigen Arme genommen;

Ich habe genug!

Mein Glaube ha jesu ans Herze gedrueckt;

Nun wuensch ich, noch heute mit Freuden

Von hinnen zu scheiden

 

나는 이제 만족하나이다,

저는 믿는 자들의 희망되신 구세주를 두 팔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그를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으로 껴안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기꺼이 이 기쁨으로 이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옵니다.

 

 

죽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의 이 칸타타와 아리아의 내용은 죽었지만 죽지 않은 흡혈귀 주인공들이 이룰 수 없는 꿈이자 지상낙원을 그리고 있으며, 끝없이 타락하던 주인공들이 도착한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며 특히 번민에 휩싸인 현상현 신부의 선택이 그를 구원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성과 종교의 선에서 번뇌하던 주인공의 손에서 시작되어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마지막을 장식해주는 영화 <박쥐>의 모든 것을 그린 곡이 바로 바흐의 칸타타 82<나는 이제 만족하나이다>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