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칼럼 #78.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쇼팽 장송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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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던 ‘프레데리크 쇼팽 (Frederic Francois Chopin, 1810-1849)’는 21개의 녹턴, 58개의 마주르카, 18개의 폴로네이즈, 27개의 연습곡, 26개의 전주곡, 20개의 왈츠, 4개의 즉흥곡, 4개의 스케르초 등 수많은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며 피아노 명곡을 많이 남긴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는 단 3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였는데, 그 중 ‘피아노 소나타 1번 (Piano Sonata No.1 in c minor, Op.4)’은 쇼팽이 18세의 나이였던 1828년에 작곡한 작품으로 아직 미숙함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 현재는 자주 연주되고 있지 않는 작품입니다.

그에 반해 피아노 소나타 2번과 ‘피아노 소나타 3번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은 그 높은 완성도 덕분에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또 쇼팽이 29세의 나이였던 1839년에 완성한 ‘피아노 소나타 2번 (Piano Sonata No.2 in v flat minor, Op.35)’은 1840년에 초판이 발행되었으며 4개의 악장으로 이뤄져 있는 작품입니다.

 

1악장 ‘그라베 (Grave-Doppio movimento)

2악장 ‘스케르초 – 피우 렌토 (Scherzo-Piu lento)

3악장 ‘장송 행진곡 (Marche Funebre)’

4악장 ‘피날레 (Finale, Presto)

 

이렇게 4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쇼팽의 2번째 피아노 소나타는 유명한 3악장의 제목을 따라 ‘장송 행진곡’, 또는 ‘장송 소나타’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제목을 따게 된 3악장 ‘장송 행진곡’은 쇼팽이 1837년에 이미 완성한 곡으로 단독으로도 매우 많이 연주되는 작품입니다. 점령과 굴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조국 폴란드를 애도하는 듯한 분위기의 3악장은 매우 비장하면서도 진중한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에 포함된 3악장 ‘장송행진곡’은 다양한 대중 매체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인데요. 2008년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나 1982년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 (Fanny and Alexander)’, 1991년 쇼팽 전기 영화 ‘쇼팽의 푸른 노트 (La Note bleue)’ 등에 등장하였습니다. 이 곡은 우리나라 독립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에서도 등장하였는데요, 바로 2020년에 개봉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입니다.

 

영화 ‘하하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등을 연출한 감독 ‘김초희 (1975-)’가 연출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2019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며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요. 특히 영화 ‘미나리’를 통하여 한국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1947-)’이 노개런티로 출연하여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 드라마 ‘오징어게임’, ‘리갈하이’, ‘옷소매 붉은 끝동’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 ‘강말금 (1979-)’가 영화 프로듀서인 주인공 찬실 역을 맡은 이 영화는 40이 될 때까지 함께 일하던 감독 밑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만 하던 찬실이 술자리에서 감독이 과음으로 갑자기 사망하고 나자 살길이 막막해지며 시작됩니다.

 

결국 이태원의 산동네로 이사를 가서 ‘할머니 (윤여정 분)’의 하숙집에서 살게 된 찬실은 돈을 벌기 위하여 친한 배우 ‘소피 (윤승아 분)’의 집에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됩니다. 소피의 불어 선생님이자 후배인 ‘김영 (배유람 분)’에게 마음을 품게 되며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 찬실 앞에 환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흰색 러닝셔츠 바람의 ‘장국영 (김영민 분)’은 찬실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이었으며 그는 아무 때나 그녀 앞에 나타나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찬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한편 70이 넘은 나이에 고지서의 글을 읽기 위해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할머니를 보며 찬실은 불혹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이나 제약의 굴레에 휩싸이지 않고 꿈과 이상을 실행하기 위하여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본 영화에서 주인공인 ‘찬실’의 틀을 깨어버리는 사건인 감독이 술자리로 돌연사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배경음악이 바로 쇼팽의 ‘장송 행진곡’입니다.

 

관현악 편곡으로 연주되는 이 장면은 감독의 사망과 어울리는 곡이기도 하지만 여태 갇혀있던 찬실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곡이기도 합니다.

 

쇼팽의 장송 행진곡이 다양한 의미로 울려 퍼지는 우리나라의 독립 영화 ‘찬실이는 복을 많지’ 함께 감상하며 밝은 기운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