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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리뷰 [책 속의 클래식]

리뷰 2022년 12월호 -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유일한 단행본 시집 <서동시집>, 가인의 서 중 '현재의 과거 속에서'

by zoiworld 202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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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74.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유일한 단행본 시집 <서동시집> - '가인의 서' 중 '현재의 과거 속에서'

 

1814,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남긴 단 한 권의 단행본 시집인 서동 시집 (West-Oesterlicher Divan)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노시인의 통찰과 잠언의 결집이라 할 수 있는 역작이죠, 그 세 번째로 다뤄볼 시들은 12개의 () 중 첫 번째 서인 가수/가인 (歌人)의 서에 수록된 현재의 과거 속에서 (Im gegenwaertigen Vergangenes, D.710)입니다.

 

지금 여기에 옛 일이라고도 많이 번역되는 이 시 현재의 과거 속에서17개의 시로 구성된 가인의 서의 열두 번째 시로, 독일 바이마르에서 멀지 않은 아이제나흐 (Eisenach)에 위치하고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 (Schloss Wartburg)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기사들이 노래 경연을 펼쳤던 곳이자,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가 신약성서를 번역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과 그 일대의 경치를 바라보며 멀리 이국적인 동방의 공통점을 찾아 교차로 그리는 창조와 생명주기와 같은 이전의 시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과거의 모습들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것에 대한 조언까지 남기고 있습니다.

 

 

현재의 과거 속에서 (Im gegenwaertigen Vergangenes)

Ros und Lilie morgenhaulich

Blueht im Garten meiner Naehe;

Hinten an, bebuscht und traulich,

Steigt der Felsen in die Hoehe;

Und mit hohem Wald umzogen,

Und mit Ritterschlos gekroenet,

Lenkt sich hin des Gipfels Bogen,

Bis er sich dem Thal versoehnet.

 

Und da duftets wie vor Alters,

Da wir noch von Liebe litten,

Und die Saiten meines Psalters

Mit dem Morgenstrhl sich stritten;

Wo das Jagdlied aus den Bueschen,

Fuelle runden Tons engauchte,

Anzufeuern, zu erfrischen

Wies der Busen wollt und brauchte.

 

Nun die Waelder weig sprossen,

So ermuthigt euch mit diesen,

Was ihr sonst fuer euch genossen

Laesst in andern sich geniessen,

Niemand wird uns dann beschreien

Dass wirs uns alleine goennen,

Nun in allen Lebensreihen.

Muesset ihr geniessen koennen.

 

Und mit diesem Lied und Wendung

Sind wir wieder bei Hagisen,

Denn es ziemt des Tags Vollendung

Mit Geniessern zu geniessen.

 

장미와 백합이 아침 이슬에 젖어

나의 가까이에 있는 정원에 피고

그 뒤에는 아늑하게 덤불이 지고

바위는 높게 솟아 오른다.

그리고 높은 숲으로 둘러싸여

그리고 기사의 성으로 왕관이 쓰여

산 능선에 굽이지네.

마침내 골짜기와 화해할 때까지.

 

그리고 과거의 향이 나네.

우리가 아직 사랑으로 힘들어 할 때에

또 나의 찬미가를 연주하던 현들이

아침을 밝히던 햇살과 다투던 때에;

덤불 속에서 들려오던 사냥의 노래

가득 찬 음들의 충만함을 깨뜨리며

가슴이 원하고 필요하던 대로

불을 붙이고, 생기를 불러일으키던 때.

 

이제 숲들이 영원히 싹을 틔운다.

그러니 너희도 숲과 함께 용기를 내자.

이전에 너희가 스스로 누려왔던 것.

이제 다른 이들도 누리게 하여라.

그러면 그 누구도 우리가 독차지한다고

소리지르지 않을 것이니.

이제는 우리의 모든 삶의 단계에서

너희는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노래와 함께, 이 마무리로

우리는 다시 하피스의 곁에 있다.

하루의 완벽한 마무리를 위하여

즐기는 자와 함께 즐기는 것이 마땅하기에.

 

 

다시 한번 시인 하피스를 동경하고 있는 괴테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이 4연의 시를 가곡으로 옮겨낸 작곡가는 현재까지 단 한 명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입니다.

슈베르트는 미완성 교향곡을 비롯한 13편의 교향곡과 현악사중주 13로자문데 (Rosamunde), 14죽음과 소녀 (Der Tod und das Maedchen)를 비롯한 15개의 현악사중주, 21개의 피아노 소나타, 6개의 악흥의 순간 (Moments Musicaux) 31세의 짧은 생애 동안 수많은 명곡을 우리에게 남긴 작곡가입니다. 특히 그는 600여곡의 가곡을 작곡하며 19세기 독일 리트의 창시자로 불리며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는데요. 그는 괴테의 서사시를 가곡으로 만든 마왕을 비롯하여, 피아노 오중주곡으로도 작곡하게 된 송어, 아베마리아, 보리수 등 클래식이나 가곡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멜로디의 가곡을 많이 작곡하였습니다. 특히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겨울나그네, 백조의 노래 등은 현재도 많은 성악가들이 독창회 테마로 많이 부르는 가곡집들입니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슈베르트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비단 독창곡들뿐만이 아니었는데요. 그는 당시 유행하던 남성 합창곡들도 많이 작곡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의 아름다운 멜로디들은 괴테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시인 요한 마이어호퍼 (Johann Baptist Mayrhofer, 1787-1836)나 스위스의 작가 요한 가우덴츠 (Johann Gaudenz von Salis-Seewis, 1762-1834), 독일의 시인 고트프리트 뷔르거 (Gottfried August Buerger, 1747-1794) 등의 시를 가사로 하여 더욱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새로 탄생하였습니다.

 

괴테의 서동시집 속 시 현재의 과거 속에서 역시 이러한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피아노 반주 위에 하나씩 쌓아가는 슈베르트의 마법과 같은 선율들 덕분에 더욱 힘있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 곡은 테너의 솔로로 시작되는데 첫 번째 연이 끝날 때까지는 단순한 피아노의 진행 위에 솔로 테너의 노래로만 이뤄져 현재의 아이제나흐 성과 근방의 풍경이 간결하게 그려집니다.

알레그레토로 조금 빨라지는 중반부에서는 시의 두 번째 연을 두 개의 파트로 나눠진 테너들이 나눠서 캐논으로 부르며 아름다운 화음을 쌓아갑니다. 알레그로 모데라토의 세 번째 파트에서는 4성부 모두가 세 번째 연을 부르며 마치 찬송가 연상되는 듯한 단순한 화음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마지막 연은 안단티노 (Andantino quasi Allegretto)로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이 연상되는 피아노 반주와 함께 테너의 독창으로 시작되어 제1베이스, 2테너, 2베이스 파트가 차례로 추가되며 화려한 합창으로 끝맺음을 맺습니다.

 

슈베르트의 치밀한 구성을 통하여 더욱 그 의미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괴테의 서동시집 속 시 현재의 과거 속에서장미와 백합으로도 불리는 슈베르트의 남성합창곡 현재의 과거 속에서는 지리적, 시기적인 교차를 그리는 명작시를 어떻게 가곡이나 합창으로 재창조해야 할 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답을 주고 있는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