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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리뷰 [책 속의 클래식]

리뷰 2022년 9월호 -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템페스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

by zoiworld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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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71.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템페스트>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함께 인류의 보물이라 칭할 수 있는 수많은 명작을 남긴 위대한 극작가이자 시인입니다. 셰익스피어는 36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 (Sonett,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14행시)’를 우리에게 남겼는데, 그 중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한 여름 밤의 꿈>, <오텔로>, <맥베스>, <리어왕>과 같은 작품들은 연극 무대에 단골로 오르는 것은 물론, 베르디, 구노, 벤자민 브리튼과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져 현재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나 드보르자크, 로시니, 멘델스존과 같은 작곡가들은 이 희곡들을 서곡이나 극음악으로 작곡하기도 하였습니다.

영국의 평론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 (Thomas Carlyle, 1795-1881)’이 “영국은 언젠가 인도를 잃을 것이지만, 셰익스피어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평하며 마틴 루터, 루소 등과 함께 인류의 유산 중 한 명으로 꼽은 셰익스피어, 그는 정말 실존한 한 명의 사람이 맞는 것인가란 음모론까지 나올 정도로 다작을 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단독으로 쓴 마지막 희곡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 작품이 바로 그가 1610년에서 1611년 사이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템페스트’입니다.

 

태풍, 폭풍우란 뜻을 지닌 ‘템페스트 (The Tempest)’는 사실 셰익스피어가 온전히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조합하여 연극을 위한 대본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영향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1523년 출판된 네덜란드 출신의 기독교 신학자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로테로다무스 (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1466-1536)’의 대표작 ‘대화집 (Familiarium colloquiorum formulae)’ 중 난파된 배에 대한 이야기와 이탈리아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 (Ludovico Ariosto, 1474-1533)’가 에라스무스의 대화집 속 난파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1516년에 쓴 서사시 ‘올란도 퓨리오소 (Orlando Furioso)’입니다.

 

마법에 빠져있는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의 동생 ‘안토니오’는 나폴리의 왕 ‘알론소’와 함께 음모를 꾸며 프로스페로와 그의 딸 ‘미란다’를 추방해버립니다. 프로스페로의 충신인 ‘곤잘로’의 도움으로 식량과 마법책을 챙겨 간신히 한 섬에 도착한 프로스페로는 이 섬을 지배하고 있던 사악한 ‘칼리반’을 무너뜨리고 그와 요정 ‘에이리얼’의 주인이 되었고, 12년간 복수를 꿈꾸며 강력한 마법을 익혀 위대한 마법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섬 앞을 지나는 배 한 척에 자신의 동생 안토니오와 알론소 왕이 함께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한 프로스페로는 분노에 휩싸여 마법으로 폭풍을 일으키고 칼리반과 에어리얼에게 이들을 잡아오게 명령합니다. 배가 난파되며 뿔뿔이 흩어진 안토니오와 알론소 일행에는 프로스페로의 충신 곤잘로와 알론소 왕의 아들 페르디난드 왕자도 있었습니다. 홀로 섬에 당도한 페르디난드 왕자는 미란다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프로스페로의 굴 앞에 모이게 되고, 예전 밀라노 공작의 모습으로 변신한 프로스페로는 안토니오와 알론소 왕을 질책합니다. 결국 모두를 죽일 수 있었던 프로스페로는 이들을 용서하고 화합을 하며 막이 내립니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으로 평가되는 ‘템페스트’는 다른 명작들처럼 많은 음악가들에게도 영감을 줬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과 함께 템페스트에 대한 환상 서곡을 작곡하였습니다. 또한 시벨리우스는 서곡과 2개의 모음곡을 묶어 부수음악을 완성하였으며, 이 곡은 연주회 용으로 연주되었습니다. 그리고 ‘템페스트’로 가장 잘 알려진 클래식 작품은 바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일 것입니다.

 

독일 ‘본 (Bonn)’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 (Wien)’에서 사망한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가 귓병으로 인하여 ‘하일리겐슈타트 (Heiligenstadt)’로 요양을 가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가 쓰여졌던 시기에 함께 작곡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라단조 (Piano Sonata No.17 in d minor, Op.31-2)’는 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작성하며 표명한 작곡가로서의 새롭고 혁신적인 도전을 통한 개척 의지가 여실히 들어있는 작품입니다. 3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묶어 발표한 작품번호 31번 중 두 번째로 수록되었지만 16번과 18번보다 더 먼저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곡은 1악장 ‘라르고-알레그로 (Largo-Allegro)’, 2악장 ‘아다지오 (Adagio)’, 3악장 ‘알레그레토 (Allegretto)’ 모두가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된 것이 매우 독특합니다.

 

베토벤이 제자였던 ‘줄리에타 귀차르디’와의 사랑도 실패로 끝나고, 귓병도 악화되는 매우 힘든 상황에서 쓰여진 소나타 17번 ‘템페스트’의 제목은 원래 베토벤이 붙인 것은 아닙니다. 베토벤의 제자이자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 (Anton Felix Schindler)’가 이 곡을 듣고 감명을 받아 베토벤에게 “이 소나타를 더욱 심오하게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주세요”란 부탁을 하였고, 이 때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시게”라고 답한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후에 음악학자들은 쉰들러의 주장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며 큰 연관은 없을 것이라 보고 있지만, 베토벤이 사망하였을 때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희곡이 유품에 있었을 정도로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와 템페스트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또 ‘태풍’, ‘폭풍우’란 의미의 템페스트가 이 피아노 소나타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템페스트란 제목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잔잔함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표현으로 폭풍이 멀리에서 몰려오는 느낌을 주는 1악장과 잔잔하고 부드러운 2악장, 그리고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픈, 그러나 그치지 않고 휘몰아치는 음들의 3악장으로 구성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를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템페스트’와 함께 읽는다면 프로스페로의 절망과 베토벤의 절망,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의지와 희망, 분노와 용서까지도 함께 겹쳐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