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69.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의 시집 - 후고 볼프의 '미켈란젤로 시집'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 (Michelna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는 ‘다비드’ 조각상과 ‘피에타’ 조각상, 하나님이 ET처럼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드는 장면을 표현한 ‘아담의 창조’를 비롯한 ‘천지창조’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조각가이자 화가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를 화려하게 수놓은 3대 화가로 손꼽히는 미켈란젤로는 다른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처럼 노래나 언어유희와 같은 다양한 예술 방면에 재능이 많았는데 특히 수백 편의 소네트를 쓴 시인이기도 하였습니다. 황혼에 접어든 1546년 이후에는 시집 출판에도 관심을 기울여 다양한 동시대 작곡가들이 그의 시를 가사로 하여 당시 유행하던 세속 성악곡인 ‘마드리갈 (Madrigal)’을 작곡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위대한 미술 작품들만큼 인기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린 시절 부러져 비뚤어진 코에 대한 콤플렉스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로 인하여 괴팍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평생 독신으로 예술 활동에만 전념하는 금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57세가 되던 1532년, 23세의 귀족 청년 ‘토마소 카바리에리 (Tommaso dei Cavalieri, 1509-1587)’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300편이 넘는 소네트와 다양한 드로잉 작품들을 선물하였습니다. 당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평생의 사랑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야 했었고, 죽기 직전 자신의 곁을 지키던 토마소에게조차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는 대신 종교적인 유언을 남겼을 뿐입니다.
독신인 미켈란젤로의 유산은 모두 조카였던 ‘레오나르도 부오나로티 (Leonardo Buonaroti)’에게 상속되었으며, 미켈란젤로가 사망하고 60년이 지난 1623년, 레오나르도의 아들이 유품들 속에서 미켈란젤로가 토마소에게 남긴 시들을 발견하고 이를 묶어 시집으로 출간하려 합니다. 성소수자가 가문의 수치로 여겨지던 그 당시 분위기를 감안하여 시집은 모두 여성에게 바치는 시로 바껴서 출간되었고, 250년 영국의 작가 ‘존 애딩턴 시몬스 (John Addington Symonds)’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생애 (The Life of Michelangelo Buonarrot)’가 출간하기 전까지 미켈란젤로의 사랑의 시들은 모두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미켈란젤로의 뮤즈 ‘비토리아 콜로나 (Vttoria Colonna)’에게 쓰여진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뫼리케 가곡집>, <괴테 가곡집>, <뤼케르트 가곡집>, <아이헨도르프 가곡집> 등 후기 낭만 독일 가곡을 주로 작곡한 오스트리아 작곡가 ‘후고 볼프 (Hugo Wolf, 1860-1903)’는 오페라 ‘지방판사 (Der Corregidor)’, 교향시 ‘펜테실레이아 (Penthesilea)’ 등을 작곡하였으며 비평가로서도 오랜 시간 활동하였습니다.
1888년부터 2년간 160편이 넘는 가곡을 작곡하며 자신을 불태웠던 후고 볼프는 1892년부터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곡을 하지 못하며 기나긴 슬럼프에 빠졌었던 음악가였습니다. 1896년 <이탈리아 가곡집> 2권을 완성하여 재기에 성공하는가 싶었으나 1897년 미켈란젤로의 시를 가사로 한 가곡들을 작곡하다 결국 발작으로 인하여 더 이상 작곡 활동을 하지 못하고 1902년 정신병원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젊은 시절에 걸렸었던 매독 때문에 발작을 일으켰고, 결국 죽음으로 이끌고 간 것으로 알려진 후고 볼프의 유작이 된 <미켈란젤로 가곡집 (Michelangelo Lieder)>는 단 세 곡만이 남겨져 있는데, 친구에게서 ‘발터 로베르트 토르노브 (Walter Heinrich Robert-Tornow, 1852-1895)’가 번역한 미켈란젤로의 시집을 선물받았으며, 그 중 인간의 고난과 회고를 그리고 있는 시를 골라 곡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 곡인 ‘나는 가끔씩 지나간 과거를 생각한다 (Wohl denk ich oft an mein vergangnes Leben)’에 대하여 후고 볼프는 “음악은 울적하게 시작하고 점점 기운을 되찾아 마치 미켈란젤로의 동시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승리의 팡파레처럼 활기차게 끝이 난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곡은 미켈란젤로에 자신을 빗대어 무명의 시간을 지나 큰 명성을 얻은 음악가로서의 자신을 노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곡입니다.
나는 종종 지나간 과거를 생각해보네 (Wohl denk ich oft an mein vergangnes Leben)
Wohl denk ich oft an mein vergangnes Leben,
Wie es vor meiner Liebe fuer dich war;
Kein Mensch hat damals Acht auf mich gegeben,
Ein jeder Tag verloren fuer mich war;
Ich dachte wohl, ganz dem Gesang zu leben,
Auch mich zu fluechten aus der Menschen Schar.
Genannt in Lob und Tadel bin ich heute,
Und, dass ich da bin, wiessen alle Leute!
나는 종종 지나간 과거를 생각해보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전은 어땠는지..
그 땐 아무도 내게 관심 주지 않았고,
나는 매일매일 길을 잃었었네.
나는 아마 노래만을 부르며 살아볼까도 생각했었어요.
또한 사람들의 무리에게서 도망치려고도 했어요.
지금의 나는 칭찬과 비난을 받고 있고
그리고, 내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어요.
두 번째 곡인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Alles endet, was entstehet)’는 세 곡 중 가장 드라마틱한 곡으로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에 대한 허무함과 냉혹한 현실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후고 볼프가 존경하였던 작곡가 브람스의 죽음 직후에 작곡된 이 곡은 브람스가 자주 사용한 음악 형식인 A-B-A 형식을 따르고 있는 것에서 그를 추도하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끝을 맞으니 (Alles endet, was entstehet)
Alles endet, was entstehet
Alles, alles rings vergehet,
Denn die Zeit flieht, und die Sonne
Sieht, dass alles rings vergehet,
Denken, Renden, Schmerz, und Wonne;
Und die wir zu Enkeln hatten
Schwanden wie bei Tag die Schatten,
Wie ein Dunst im Windeshauch.
Menschen waren wir ja auch,
Froh und traurig, so wie ihr,
Und nun sind wir leblos hier,
Sind nur Erde, wie ihr sehet.
Alles endet, was entstehet.
Alles, alles rings vergehet.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끝을 맞으니
모든 것,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
시간과 태양이 흘러가기에.
보라,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음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 고통, 그리고 행복.
그리고 우리가 괴로워하던 것들 역시
낮에 그림자가 줄어들듯이 사라지리라
바람에 몸을 맡긴 안개처럼..
우리도 사람이기에,
당신들처럼 행복하고 또 슬퍼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여기에 생명 없이
그들이 보는 보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흙이 되었구나.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끝을 맞으니
모든 것,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
마지막 곡인 ‘내 영혼이 동경하던 신의 빛을 느끼네 (Fuehlt meine Seele das ersehnte Licht)’는 모든 것이 사라진 후 세상에의 작별을 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의 곡입니다. 마치 후고 볼프는 이 가곡집을 작곡하고 5개월만에 정신질환에 무너져 내릴 것을 짐작한 듯한 죽음과 그 이후의 영원함을 노래한 심오한 작품입니다.
내 영혼이 동경하던 신의 빛을 느끼네 (Fuehlt meine Seele das ersehnte Licht)
Fuehlt meine Seele das ersehnte Licht
Von Gott, der sie erschuf? Ist es der Strahl.
Von andrer Schoenheit aus dem Jammertal,
Der in mein Herz Erinnerung weckend bricht?
Ist es ein Klang, ein Traumgesicht,
Das Aug und Herz mir fuellt mit einem Mal
In unbegreiflich glueh’nder Qual,
Die mich zu Traenen bringt? Ich Weiss es nicht.
Was ich ersehne, fuehle, was mich lenkt,
Ist nicht in mir: sag mir, wie ich’s erwerbe?
Mir zeigt es wohl nur eines Andren Huld;
Darein bin ich, seit ich dich sah, versenkt.
Mich treib ein Ja und Nein, ein Suess und Herbe-
Daran sind, Herrin, deine Augen Schuld.
내 영혼이 동경하던 신의 빛을 느끼네.
그들을 창조하신 신으로부터인가?
눈물의 골짜기로부터 온 또 다른 아름다운 빛인가?
내 마음 속의 기억을 깨우는 빛인가?
그것은 울림인가, 꿈 속의 얼굴인가,
내 눈과 마음은 단번에 가득 차 버리네.
이해할 수 없는 빛나는 고통 속에서..
이것이 내게 눈물을 안겼던 고통인가? 나는 알 수 없네.
내가 원하는 것, 나를 인도하는 것을 느끼고,
그것은 내 안에 없으니. 말해다오. 내가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내게 너그러운 다른 호의를 한 번만 보여다오.
내가 그대를 보고 난 후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예와 아니오가, 달콤함과 씁쓸함이 나를 몰아가니,
그 속에 있는 여인이여, 당신의 눈이 그 책임이구나.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화가이자 시인 미켈란젤로 사랑과 종교 사이에서의 깊은 고뇌로 완성된 시, 그리고 그 시를 가사로 죽음과 소멸에 대한 고찰의 가곡으로 완성한 후고 볼프의 <미켈란젤로 가곡집>은 시간을 거슬러 명곡으로 기억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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