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67. 천일야화 중 '칼라프 왕자와 중국 공주 이야기',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아라비안 나이트 (Arabian Night)’라고도 불리는 <천일야화 (One Thousand and One Night)>는 1001일 간의 이야기란 의미의 중동 문학 책입니다. 여성에 대한 불신이 깊어 처녀와 하룻밤을 보낸 후에 처형을 하는 샤리아르 왕의 학살을 막기 위하여 대신의 딸인 셰헤라자드가 샤리아르 왕과 결혼하여 1001일 간 280편에 가까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살인을 막고 왕의 신뢰를 얻게 되어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셰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구전되어오던 이야기들과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영향을 받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알라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신밧드의 모험’와 같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스토리들이 이 천일야화에서 셰헤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며, 이 이야기들에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Turandot)’의 소재가 된 ‘칼라프 왕자와 중국 공주 이야기 (Die Geschichte des Prinzen Kalaf und der Prinzessin von China)’도 들어 있습니다.
타타르 국의 왕자 ‘칼라프’는 내란을 피하여 중국까지 피신하게 됩니다. 고대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남자들을 혐오하고 있어 자신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고 맞추지 못하면 참수를 시켜버리고 있었습니다. 칼라프 왕자는 아버지 ‘티무르’와 칼라프를 연모하던 노예 ‘류’의 만류에도 이 세가지 수수께끼에 도전합니다.
첫 번째 수수께끼 ‘이것은 어두운 밤을 가르며 무지개 빛으로 날아다니는 환상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며 아침이 되면 사라졌다가 밤마다 새로 태어난다. 이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희망’이라 맞춘 칼라프 왕자는 두 번째 수수께끼인 ‘불꽃처럼 타오르나 불꽃은 아니며, 생명을 잃으면 차가워지고 승리를 꿈꾸면 뜨거워지며, 그 색은 석양처럼 빨갛다’의 답인 ‘피’ 역시 맞추며 시민들의 환호를 받습니다.
투란도트 공주는 불안해하며 마지막 수수께끼인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이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그대는 노예가 되고, 그대를 노예로 삼으면 그대는 왕이 된다. 이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하고, 칼라프는 확신을 갖고 ‘투란도트’라 대답합니다.
이렇게 칼라프 왕자는 모든 수수께끼를 풀었지만 투란도트 공주는 인정하지 못하고, 이러한 공주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칼라프 왕자는 다음날 아침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추면 결혼을 포기하고 떠나겠다고 합니다.
1762년, 이탈리아의 극작가 ‘카를로 고치 (Carlo Gozzi, 1720-1806)’는 천일야화 속 ‘칼라프 왕자와 중국 공주 이야기’를 5막의 희극으로 만듭니다. 또 1802년,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는 ‘투란도트 공주 (Prinzessin Turandot)’란 제목의 대본으로 개작합니다. 그리고 1920년, 마침내 ‘푸치니’가 고치와 실러의 대본을 기초로 오페라를 만들고자 마음을 먹고 이탈리아의 극작가 ‘주세페 아다미 (Giuseppe Adami, 1878-1946)’,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레나토 시모니 (Renato Simoni, 1875-1952)’와 함께 이탈리아어 대본을 작업하게 됩니다.
‘자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는 주세페 베르디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로 연말에 사랑받는 오페라 ‘라 보엠 (La Boheme, 1896)’, 토스카 (Tosca, 1900)’, 아리아 ‘어느 맑개 개인 날’로 잘 알려진 오페라 ‘나비 부인 (Madame Butterfly, 1904)’, 마농 레스코 (Manon Lecaut, 1895)’, ‘잔니 스키키 (Gianni Schicchi, 1918)’ 등의 작품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푸치니의 아리아들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나비 부인의 ‘어느 맑게 개인 날 (Un bel di Vedremo)’, 잔니 스키키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O mio babbino caro)’와 함께 푸치니의 3대 오페라 아리아로 손꼽히는 작품이 바로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네순 도르마 (Nessun Dorma)’입니다.
인후암으로 투병 중이던 푸치니는 1924년, 미완성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남기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푸치니와 절친한 사이였던 위대한 지휘자 ‘토스카니니 (Arturo Toscanini, 1867-1957)’는 제자가 없던 푸치니를 대신하여 투란도트를 완성하기 위하여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프랑코 알파노 (Franco Alfano, 1876-1954)’에게 의뢰를 하고 1926년 초연을 올립니다.
‘투란의 딸’이란 뜻의 ‘투란도트’를 제목으로 한 이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만큼 공이나 탐탐, 종과 같은 악기들과 아시아 음악의 특징인 5음계를 사용하는 과감한 시도를 한 작품이자 완성도가 높은 오페라입니다. 특히 ‘공주는 잠 못 들고’로 알려져 있는 아리아 ‘네순 도르마’는 3막에서 칼리프 왕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면 혼인을 취소하겠다는 장면에서 부르는 아리아로, 원래 뜻은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란 의미입니다.
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
Nessun Dorma! Nessun Dorma!
Tu pure, o, Principessa,
Nella tua fredda stanza,
Guardi le stelle
Che tremano d’amore
E di speranza.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 그 누구도 잠들지 못하리!
그대 역시도 공주여,
그대는 차가운 방에서 별을 바라보네.
사랑으로 떨고 희망으로 떠네
Ma il mio mistero e chiuso in me,
Il nome mio nessun sapra!
No, no, sulla tua bocca lo diro
Quando la luce splendera!
하지만 비밀은 내게 있으니
아무도 나의 이름을 모르지.
아니, 아니, 내 입으로 당신에게 말하게 되리라
빛으로 환해질 때에
Ed il mio bacio sciogliera il silenzio
Che ti fa mia!
내 키스는 고요함을 깨고
당신을 내 것으로 만드리라..
Dilegua, o note!
Tramontate, stelle!
Tramontate, stelle!
All’alba vincero!
Vincero, vincero!
사라져라 밤아!
희미해져라 별아!
새벽이 되면 나는 이기리!
천일야화 속 ‘칼라프 왕자와 중국 공주 이야기’, 카를로 고치와 쉴러의 대본, 그리고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결말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칼라프 왕자와 중국 공주 이야기’에서는 칼라프를 연모하던 노예 ‘류’가 애초에 투란도트 공주가 칼라프 왕자에게 보낸 하녀로 나옵니다. 원래 다른 나라의 공주였던 하녀는 칼라프 왕자와 함께 도망치려고 그를 유혹하여 이름을 알아내고 투란도트에게 알려줍니다. 다음날 아침 투란도트 공주는 칼라프 왕자의 이름을 맞추고 약속대로 떠나려는 왕자를 붙잡고 결혼을 하고, 하녀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카를로 고치는 해피엔딩으로 만들고자 하녀가 자살하는 대신 자유를 얻게 되고, 투란도트도 남성을 혐오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으로 결말을 냅니다.
쉴러는 남성을 죽이는데 즐거움을 찾는 혐오자가 아닌 남성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있던 여성으로 투란도트 공주를 그리며, 이러한 복수심을 칼라프 왕자의 사랑으로 극복하게 되는 것으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푸치니는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 공주에게 붙잡혀 와서 강요당하지만 사랑하는 칼라프 왕자를 위하여 목숨을 끊는 ‘류’를 통하여 투란도트 공주에게 헌신의 사랑을 알려줍니다. 류를 통하여 참회한 투란도트 공주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떠나려는 칼라프 왕자를 붙잡으며 오페라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다른 대부분의 오페라 작품들과 달리 행복하게 끝납니다.
현재 카를로 고치의 원작이 소설로 번역되어 출판된 ‘투란도트’와 함께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를 감상하면 그 차이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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