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66.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유일한 단행본 시집 <서동시집> 1. '가인의 서' 중 '창조와 생명주기'
1814년,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남긴 단 한 권의 단행본 시집인 ‘서동 시집 (West-Oesterlicher Divan)’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노시인의 통찰과 잠언의 결집이라 할 수 있는 역작이죠, 그 첫번째로 다뤄볼 시는 12개의 ‘서 (書)’ 중 첫 번째 서인 ‘가수/가인 (歌人)의 서’에 수록된 ‘창조와 생명주기 (Erschaffen und Beleben)’입니다.
12개의 시로 구성된 ‘가인의 서’는 ‘스무 해를 보내며/내게 주어진 것을 누렸노라. 더없이 아름다웠던 세월이었노라. 바르메크 일족의 시대처럼 (Zwanzig Jahre lies ich gehn/ Und genoss, was mir beschieden. Eine Rehe voellig schoen. Wie die Zeit der Barmekinden)’이라는 짧은 서문으로 시작됩니다. 스무 해의 시간은 괴테가 37세였던 1786년, 불쑥 이탈리아로 떠난 시기부터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혼란에 휩싸인 1805년 사이를 뜻하는데요. 유럽 전역의 혼란과 조국인 신성로마제국이 1000년의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던 시기이자 괴테 자신도 괴로움에 가득 차 있던 시기에 동방의 자유로움과 이국적인 문화에 눈을 돌렸던 괴테가 시인 하피스와 동방의 풍물을 동경하고 그리고 있는 시들의 모음이 바로 가인의 서입니다.
‘가인의 서’ 중 8번째에 수록된 시 ‘창조와 생명주기 (Erschaffen und Beleben)’은 이슬람과 카톨릭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흙으로 빚어 탄생하는 최초의 인간’에 대한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특히 흙으로 빚어낸 최초의 인간을 ‘철수’나 ‘영수’처럼 독일의 가장 흔한 이름인 ‘한스’를 붙인 ‘한스 아담’으로 그려내었는데요. 괴테는 최초의 인간을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아둔하게 표현하여 이러한 설화들을 해학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창조와 생명주기 (Erschaffen und Beleben)
Hans Adam war ein Erdenkloss
Den Gott zum Menschen machte,
Doch bracht era us der Mutter Schoss
Noch vieles Ungschlachte.
Die Elohim zur Nas hinein
Den besten Geist ihm bliesen,
Nun schien er schon was mehr zu sein,
Denn er fing an zu niesen.
Doch mit Gebien und Glied und Kopf
Blieb er ein halber Klumpen,
Bis endlich Noah fuer den Tropf
Das Wahre fand, den Humpen.
Der Klumpe fuehlt sogleich den Schwung,
Sobald er sich benetzet,
So wie der Teig durch Saeuerung
Sich in Bewegung setzet.
So, Hafis, mag dein holder Sang,
Dein heiliges Exempel
Uns fuehren, bei der Glaseser Klang,
Zu unsres Schoepfers Tempel.
한스 아담은 흙덩어리였는데
신이 인간으로 만들었다.
어머니 대지의 품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아직 부족한 면이 많았다.
엘로힘이 그의 코 안에
최상의 영혼을 불어 넣어주니
이제 벌써 훨씬 나아 보였다.
그러자 그는 재채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뼈에 팔다리와 머리가 달려있어도
아직 절반은 흙덩어리였다.
이 얼간이를 위하여 마침내 노아가
진짜를 찾아내었다. 커다란 술잔을.
술로 적셔지자마자
이 흙덩어리는 금방 흥을 느낀다.
밀가루 반죽에 술을 부어놓으면
부풀어 오르듯이.
그렇게, 하피즈여, 당신의 아리따운 노래,
당신의 신성한 본보기가
우리를 인도하리라, 술잔을 부딪히는 소리 속에서
우리 창조주의 성전으로.
인간과 신이 직접 교류하던 에덴을 그리는 ‘순수한 근원의 동방’에 등장한 인간의 창조 설화와 성경에서도 그려지는 인간의 창조가 동일하게 그려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를 무겁게 그리는 것이 아닌 익살스러운 시로 표현하고, 특히 이슬람 문화에서 금지된 술로 완성된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괴테의 해학적인 시 ‘창조와 생명주기’는 2명의 작곡가가 가곡으로 만들었는데, 그 작곡가는 바로 ‘후고 볼프’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입니다.
‘후고 볼프 (Hugo Wolf, 1860-1903)’는 후기 낭만주의 가곡의 끝을 장식하고 있는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입니다. 그는 미완성 오페라 ‘마누엘 베네가스 (Manuel Venegas)’를 비롯한 2곡의 오페라와 1곡의 피아노 소나타, 현악사중주 1곡 등을 작곡하였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시인 ‘뫼리케 (Eduard Friedrich Moerike, 1804-1875)’의 시를 가사로 한 가곡 모음집인 ‘뫼리케 가곡집 (Moerike-Lieder)’, 독일의 시인이었던 ‘아이헨도르프 남작 (Joseph von Eichendorff, 1788-1857)’의 시를 가사로 한 ‘아이헨도르프 가곡집 (Eichendorff-Lieder)’, 독일의 시인인 ‘뤼케르트 (Friedrich Rueckert, 1788-1866)’의 시를 가사로 쓴 ‘뤼케르트 가곡 (Rueckert-Lieder)’ 등의 가곡집을 비롯한 300여곡의 가곡을 작곡하였으며, 그 중 많은 가곡들이 현재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후고 볼프는 괴테의 시를 가사로 한 가곡 모음집을 작곡하여 발표하였는데, 바로 1888년부터 2년간 작곡한 51개의 가곡 모음집 ‘괴테 가곡집 (Goethe-Lieder)’입니다. 이 시기는 후고 볼프가 하루에 2~3곡씩 작곡하며 황금기라 불리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하프 연주자 (Harfenspieler)’, ‘미뇽 (Mignon)’과 같은 괴테의 대표적인 시들에 아름다운 선율을 붙인 가곡들이 수록되어 있는 괴테 가곡집, ‘창조와 생명주기’는 이 괴테 가곡집의 33번째 곡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곡은 마치 바그너의 아리아처럼 중후한 느낌으로 묵직하게 진행되지만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공존하고 있는 매우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우리에게는 1896년 작곡한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Op.30)’로 익숙한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Georg Strauss, 1864-1949)’는 자신의 첫 오페라 ‘군트람 (Guntram)’을 비롯한 오페라 ‘살로메 (Salome, Op.54)’, ‘장미의 기사 (Der Rosenkavalier)’, 교향시 ‘돈 후앙 (Don Juan, Op.20)’, 교향적 환상곡 ‘이탈리아에서 (Aus Italien in G Major, Op.16)’ 등의 명곡을 남기며 독일의 후기 낭만파의 마지막을 풍성하게 만든 작곡가입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929년 ‘베이스와 피아노를 위한 4개의 노래 (4 Gesaenge fuer hoehen Bass und Klavier, Op.87)’를 발표하였는데요. 1922년 작곡된 두 번째 곡인 ‘창조와 생명주기 (Erschaffen und Beleben)’를 제외한 나머지 3곡은 ‘뤼케르트’의 시를 가사로 하고 있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창조와 생명주기’는 전형적인 낭만시대 독일 가곡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매우 아름다운 곡입니다. 저음의 베이스 목소리가 진중하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려주는 ‘창조와 생명주기’는 후고 볼프의 곡의 익살스러운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곡입니다. 가사를 모르면 그저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듯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괴테의 서동시집의 첫번째 서 ‘가인의 서’에 수록된 시 ‘창조와 생명주기’를 가사로 한 후고 볼프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상반되는 두 가곡을 비교하면서 들어보면 작곡가들이 표현하고자 하였던 독일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시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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