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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삼성 7기 칼럼(完)

2014년 7월 #2. 파가니니, 악마가 선택한 바이올리니스트

by zoiworld 201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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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 파가니니, 악마가 선택한 바이올리니스트

 

https://www.familysamsung.com/nonmember/familycolumn_show/17511?page=26&perPage=10&sort=id&order=desc#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쏘냥~입니다.

오늘은 저희 강아지 소개를 먼저 드리며 칼럼을 시작해볼까해요^^

 

 

 

오른쪽은 파니”, 왼쪽은 가니인데요.

 

어딜 가니? 왜 이걸 파니? 놀림도 당할법한 이런 특이한 이름을 지은 이유는 바로

오늘의 주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란 별명으로 불리는 니콜로 파가니니에게서 이름을 따왔기 때문이예요.

(사실 파가니니로 이름을 지으려고 했지만 수컷의 이름인 파가는 어딘가 모르게 일본의 욕과 비슷한 어감 때문에 결국 파니와 가니로 이름을 짓게 된거랍니다^^;;;)

 

 

너무나도 정복(?!)하기 어려운 곡들을 작곡해 많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숱한 좌절을 안겨주는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 그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가니니 - 출처: http://niccolopaganiniilmaestro.wordpress.com>

 

파가니니는 정말 악마의 재림,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일까요?

그런 별명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요?

만약 그가 정말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악마였다면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리스트가 자신은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수많은 작곡가들이 파가니니가 작곡한 곡들을 다양하게 편곡해서 연주를 하고 지금까지 사랑받게 되었을까요?

 

그런 별명을 얻게된 이유는 3가지가 있다고 저는 생각한답니다.

 

 

<파가니니의 곡 중 가장 많이 편곡된 카프리스 24번의 테마>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신체적인 특징 때문인데요.

 

1782 10 27일에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난 파가니니는

선천성 질병인 엘러스-단로스 증후군(Ehlers-Danlos Syndrome)” 환자였는데요.

이 병은 피부 조직이 늘어나고 관절이 물렁물렁해져서 쉽게 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잘 휘는 손가락을 가지게 되었고

현대의 바이올린 연주자도 완벽히 연주하기 힘든 이른바 초절기교를 갖게 된거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병이 손가락뼈뿐만 아니라 넙적하게 부드러운 쇄골과 어깨뼈, 팔의 뼈도 유연하게 만들어

바이올린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어주긴 했지만 꼬챙이처럼 깡 마른 몸에,

당시 마녀, 마귀의 상징이기도 했던 매부리코,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을 갖게 되어

청중들이 오해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파가니니의 손 - 출처: http://niccolopaganiniilmaestro.wordpress.com), 기괴한 용모의 파가니니-출처: http://cantgobacknow.wordpress.com>

 

이 질병이 류머티즘, 신경 장애, 폐결핵 등의 병을 유발해 각종 루머와 함께 파가니니를 괴롭게 했지만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기교들을 연주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답니다^^

 

 

파가니니가 악마로 오인 받았던 두번째 이유는 당시엔 듣도 보도 못한 특이한 기교와 천재적인 연주 때문인데요.

 

파가니니는 5살 때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처음 배웠는데,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연습을 했다고 해요.

이미 8살 때 자신이 연주하기도 힘든 소나타를 작곡하기도 했으니 엄청난 천재이자 노력가였던거죠.

물론 5살때는 강압적이고 완벽주의자였던 아버지의 노력이 더 컸겠지만요..ㅎㅎ

 

11세때 처음으로 연주회를 가졌던 파가니니는 무명이였던 그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부터

그 후 연주회 표 값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관객들에게 사자나 새소리 같은 동물 울음 소리나

바이올린 한대로 오케스트라 소리를 내 흥미를 유발하고 당시에 없었던 손으로 현을 쥐어뜯거나(피치카토)

현을 누르듯이 튕기고 (왼손 피치카토) 빠르게 미끄러지는 (글리산도) 기교를 선보이며 청중들을

강렬히 사로잡았고 그로 인해 전 유럽이 떠들석해졌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펄만이 연주한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CD 표지의 파가니니

- 출처 :http://pianosheetmusiconline.com/24-caprices-caprice-no-1-niccolo-paganini/>

 

오죽하면 슈만은

나는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었다. 정말로 놀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마치 먼 곳 어디에선가 다가오는 음악 같으면서도 침대 위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는 음악 같기도 하다

라는 표현을 하였으며, 소설가 스탕달은

그가 연주할 때 발 밑에서 악마가 꿈틀대든 것을 보았다

라고 말을 했을까요?

 

물론 스타 곁에는 팬들과 추종자들이 따르는 법!

파가니니의 곁에는 늘 많은 여성팬들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였는데요.

엘리자는 파가니니가 연주할 때마다 실신하기 일쑤였고 그에 대해 집착을 할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파가니니는 나쁜 남자 스타일이 아니였는지 귀부인, 성가대원,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여성 편력을 지니면서도

그녀들에게 원망을 받지 않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음악계의 카사노바였다고 하네요.

 

 

 <G선으로만 연주되는 파가니니의 모세 판타지 테마>

 

 

유명세를 타면 탈수록 질투와 시기, 모함을 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법,

연주회 직전에 파가니니를 질투한 누군가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에 4현 중 가장 낮은 음인 솔(G)현을 제외한

나머지 3현을 다 끊어버린 사건이 있었답니다.

 

연주가 불가능할 거란 우려와 달리 파가니니는 그 자리에서 로씨니의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의 테마를 가지고 모세 판타지를 작곡해 G현으로만 연주했는데 위의 동영상은 모세 판타지의 첫 테마를 연주한 것이예요.

 

그 이후로 파가니니는 가장 낮은 G현과 가장 높은 미(E)현 두 줄만 연결한 바이올린을 가지고

낮고 묵직한 G현은 남성, 높고 갸냘픈 E현은 여성으로 비유하며

사랑과 춤을 추는 연인을 표현하는 연주를 하며 사모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도 하는 등

청중들의 넋을 잃게 만들었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음악가라 불리였던 이유는 바로 그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었답니다.

 

16세때 이미 유명한 인사가 된 파가니니는 음악도 사랑도 인생도 극적이였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극적인 승부를 원하는 도박에 빠지게 되서 가진 모든 돈을 탕진한 것은 물론

자신의 밥줄인 바이올린과 심지어 여자친구까지 저당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이였던 과리네리 델 제수 - 출처: http://niccolopaganiniilmaestro.wordpress.com>

 

 

또한 숱한 여성 편력 때문에 매독을 얻게 되서 그 치료로 인한 수은 중독,

도박빚을 갚기 위한(..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아들을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더군요)

무리한 연주 일정으로 건강을 일찍 망치게 되었어요.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서 작곡한 수많은 작품들을 악보로 출판하기 꺼려했고

자신의 기교의 비법이 알려질까봐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조차 공연 직전에 악보를 나눠주고

연주 직후 다 거둬 가져가버리는 그의 행동들이 악마가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악마의 재림이라 오해받기 딱 좋았던 것이죠.

 

또 말년에 큰 한방을 노렸던 도박장 파가니니의 실패한 파가니니는 설상가상 후두결핵을 앓게 되어

요양을 위해 니스로 갔고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그가 공개하기 꺼려했었던 그의 음악들을

악보에 쓰는 작업을 했답니다.

 

 

이 세가지 이유로 파가니니는 사후에도 고통을 받았는데요.

그는 콜레라로 인한 죽음 직전 그에게 병자성사를 해주려 찾아온 신부가

집요하게 바이올린의 비밀과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서 불가능한 음악이 그에게서는 가능했는지를 물어봤다고 해요.

 

 

<출처 :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5/2013042501972.html>

 

 

 

아무래도 아파죽겠는데 짜증나게 계속 물어보니 파가니니는

그 속에 악마가 숨어있었다!!고 말해버렸답니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그가 죽기 전에 고해 성사는 못할 망정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자

아무래도 유언장에 교회를 위한 기부금이 일원 한푼도 없음에 불만이 가득했던 니스의 교주는

악마의 재림인 파가니니를 성스러운 이 땅 속에 매장할 수 없다고 거부를 했고

1840년부터 무려 36년간!!! 파가니니의 시신은 방부처리 된 채 이리저리로 옮겨 다니게 되었답니다.

 

6년간 니스의 별장에 방치되었던 그의 시체는 그의 유일한 아들인 아킬레스의 노력으로

제네바 근처의 마을에 매장되었지만,

1853년 다시 파헤쳐져 파가니니가 생전에 기사수도회 기사로 임명되었던 파르마 성모교회에 안치가 되었어요.

 

하지만 1876년에 다시 파헤쳐져 그가 악마인지 아닌지 확인 후 묻혔다가

... 1893년에 파헤쳐졌다가 1896, 그가 죽은 지 56년만에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되었답니다.

1940년 고향 제노바로의 이장이 거론 되었지만 2차 세계 대전 등의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하네요.

 

 

<파가니니의 자필 악보, 카프리스 10번 - 출처 : http://www.ricordicompany.com/>

 

많은 사람들은 그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다라는 표현을 하지만

그는 정말 악마에게 영혼을 판 괴팍하며 기행을 일삼았던 인물일 뿐이였을까요?

바이올린 케이스 가득 금은보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돈을 쓰지 않았던 파가니니,

수전노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뒤로 몰래 가난에 허덕이는 작곡가 베를리오즈에게 큰 돈을 기부하거나

아들 아킬레스의 탄생 후 방탕했던 생활을 벗어나 아들의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던

그는 가슴 속에 사랑과 아름다운 예술혼을 지닌 시대를 앞서나간,

그저 음주가무를 사랑했던 고독한 천재가 아니였을까요?

 

 

 

 

 

 

위의 음악은 그가 그저 기교만을 보여줬던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아름다운 멜로디와 사랑을 표현하던 음악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12 Op.3 중 1악장입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가로 더 잘 알려져있는 곡이기도 하죠^^

 

 

얼마전 영화로 파가니니: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개봉했는데요.

실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데이빗 가렛이 파가니니로 나와 우르바니라는 가상의 인물과의 갈등과 스캔들에 대한 내용을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 파가니니: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中 - 출처 : http://www.maximkorea.net/cms/contents_view.php?contents_uid=4416&contents_cate=>

 

 

죠셉 줄리네크의 소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보시면 파가니니라는 음악가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추천드립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우는 파가니니에 관해 조금더 깊숙하게 까발려보는 시간을 가져봤는데요.

다음 칼럼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사랑의 스캔들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쏘냥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로 살아가는 모습, 연주 영상, 연주 일정 등은 www.soipark.net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