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쏘냥의 클래식 칼럼/[브런치스토리] 클래식 매거진

영화를 살린 클래식 #11. 음악 영화 이야기 19. 마리아 <1> 마리아 칼라스와 오페라

by zoiworld 2025. 5. 6.
728x90

 

브런치 주소는 https://brunch.co.kr/@zoiworld/796 입니다~

 

2024년 개봉한 영화 <마리아 (Maria)>는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1923-1977)가 약물 과다로 자신의 프랑스 파리의 아파트에서 사망하기까지의 일주일을 다룬 전기 영화입니다. 다이애나 비의 전기를 다룬 영화 <스펜서>와 재클린 케네디의 전기를 다룬 영화 <재키>를 연출한 칠레 출신의 감독 파블로 라라인 (Pablo Larrain Matte, 1976-)가 감독을 맡았으며, 세계적인 배우 안젤리나 졸리 (Angelina Jolie, 1975-)가 마리아 칼라스 역을 맡으며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이며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 경쟁후보작에도 오른 작품이 바로 이 영화 <마리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마리아 칼라스의 삶의 마지막 순간만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그녀의 삶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에 우선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짧게 이해한 후에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스계 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마리아 칼라스의 본명은 마리아 아나 소피아 케킬리아 칼로예로풀루 (Maria Anna Cecilia Sophia Kalogeropoulos)입니다. 약사였던 아버지와 성악가를 꿈꾸었으나 좌절한 어머니 아래에서 그리 행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마리아는 13세가 되던 해이자 부모님이 이혼한 해인 1937년부터는 어머니와 함께 그리스로 돌아가 그리스 음악원에서 성악을 전공하게 됩니다. 그리스에서 지내는 동안 어머니와의 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후에 2차 세계대전 중에 어머니가 생계를 위하여 자신과 언니인 재키를 군인들에게 접대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는데요. 이는 영화에서도 강렬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리스의 국립 오페라의 조연을 맡으며 힘든 시기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었으며, 점차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주역을 맡는 등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1945, 드디어 미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재회하고 어머니와의 연을 끊은 그녀는 이탈리아로 넘어가 베로나에서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조콘다>의 주역 오디션에 합격하며 지금도 야외 오페라 공연으로 유명한 아레나에서 주역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 마리아는 부유한 사업가 조반니 메네기니를 만나 1949년 결혼을 하고 10년간의 결혼 생활을 이어갑니다.

 

이탈리아의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의 눈에 든 마리아는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 (I Puritani)>엘비라 역할을 맡았던 소프라노가 병에 걸려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되자 세라핀의 요청으로 6일만에 무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같은 극장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의 브륀힐데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큰 이슈가 되었고, 마리아는 이 두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부정적으로 보던 시각들조차 모두 종식시키며 세계적인 소프라노의 입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1953, 체중 문제로 인하여 발성과 배역 소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마리아는 40kg에 가까운 몸무게를 감량하였고 그 몸매를 평생 유지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체중감소로 인하여 그녀의 목소리에 이상이 생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여러 스캔들에 얽히게 되었습니다. 1957년 그리스의 재벌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의 불륜과 1959년 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악화된 목소리로 인하여 그녀는 점점 대중들에게서 외면받게 되었고, 1965, 오페라 <토스카>의 주역을 끝으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8, 그가 마리아 대신 재클린 케네디와 오나시스가 결혼을 하게 되자 프랑스 파리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은둔생활을 이어가던 마리아는 1975, 오나시스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우울증과 불면증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렇게 수면제와 다른 약들을 의사 처방없이 과다 복용하던 마리아는 결국 53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마리아 칼라스는 은둔 생활 중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재기에 성공하기 위하여 몰래 연습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영화 <마리아>에서는 이러한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을 화려했더 지난 날들과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7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오페라 아리아를 익히는 훈련을 받으며 인생 최고의 연기를 보였다는 평을 받은 안젤리나 졸리는 마리아 칼라스의 의상을 재현한 다양한 의상들과도 찰떡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마리아의 죽음에서 시작하는데요. 그렇게 시작부터 마리아가 혼심의 힘을 다한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숨을 거두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실제 마리아 칼라스가 불렀던, 그리고 그녀가 기록으로 남겼던 수많은 오페라의 아리아들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녀가 극장 안에서 몰래 노래 연습을 할 때 부르는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1918년 단막 오페라 <잔니 스키키 (Gianni Schicchi)> 중 아리아 오 나의 아버지 (O mio Babbino)가 대표적입니다. 카탈라니 (Alfredio Catalani, 1854-1893)1892년에 작곡한 4막 오페라 <라 왈리 (La Wally)> 중 아리아 그럼, 나 멀리 떠나리 (Ebben, Ne andro lontana) 역시 깊은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되었지만 마리아 칼라스가 이탈리아어로 번역하여 부른 것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케루비니 (Luigi Cherubini, 1760-1842)17973막의 오페라 <메데아 (Medee/Medea)>당신 앞에 있는 당신 아이들의 어머니 (E che? Lo son Medea!)가 빠지만 아쉽겠죠.

 

, 마리아 칼라스의 녹음 중 가장 유명한 아리아라 할 수 있는 도니제티 (Domenico Gaetano Maria Donizetti, 1797-1848)1830년에 작곡한 2막의 비극 오페라 <안나 볼레라 (anna bolena)> 광란의 아리아 (Qui la voce sua soave) 역시 영화에 등장하여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프라노의 아리아 외에도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Il Trobatore)> 대장간의 합창 (Anvil Chorus)나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허밍 코러스 (Humming Chorus)와 같은 합창들도 파리 에펠탑이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마리아가 마주친 사람들이 부르는 환영이나 비가 내리는 극장 밖에서 오케스트라와 어린 아이들의 합창의 장면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남은 4회 동안 영화 <마리아>의 주요 장면에 등장한, 또 마리아 칼라스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오페라인 <오텔로>, <노르카>, <나부코>, <토스카>를 함께 만나보려 하니 많은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