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신체의 질병은 빠른 속도로 완치가 가능해지고 있는 반면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인 질병, 우울증이나 자폐 등에 고통받는 현대인들의 수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 출신의 작가 엘리자베스 문 (Elisabeth Moon, 1945~)의 장편 소설 “어둠의 속도”는 태아의 상태나 영유아 시기에 자폐증을 비롯, 모든 신체나 정신적인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멀지 않은 미래를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엘리자베스 문은 역사학을 공부하고 해병에서 기술병으로 일한 후 텍사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다양한 방면에 지식이 풍부한 소설가입니다. 또한 교사, 합창단 지휘자, 구급 대원 등 여러 직종에 종사하기도 하며 쌓은 지식을 그녀의 소설에 녹여내며 판타지 소설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작품으로는 잔여 인구 (Remnant Population), 부활의 왕관 (Crown of Renewal), 위험 속의 거래 (Trading in danger) 등이 있으며, 엘리자베스 문이 실제로 발달 장애를 겪은 아이를 입양해 키우며 느낀 점을 토대로 2003년에 발표한 이 소설 “어둠의 속도”는 2004년 그녀에게 네뷸러 상 “최우수 장편상”을 안겨주며 그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소설 “어둠의 속도”의 주인공 루 애런데일은 어렸을 때 장애를 치료하는 시기를 놓쳐 “장애인”으로밖에 살아가야하는 자폐인입니다. 루는 패턴을 이해하는 방법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반복되는 상황에서 패턴을 인식해 그 패턴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루는 그 때문에 반복,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과 기억력이 굉장히 좋으며 그 특별한 패턴 분석 능력을 살려 대기업의 “A분과”라는 특수 부서에서 제품의 안정성을 찾는 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루의 상관 “크렌쇼”는 자폐인 직원들에게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성인을 위한 자폐증 치료 실험에 직원들을 참여시켜 그들의 능력은 그대로 살린 채 그들을 정상인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의외의 돌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대응할 수 없는 혼란을 겪고 싶지 않아 했던 루와 그의 “A분과” 동료들은 “정상인”으로 치료되기 위한 실험에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자폐인으로 남들과 다른 사람으로 인식되어 살아갈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어둠의 속도”는 자폐인 주인공 “루”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기에 자폐아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한 각도에서 서술됩니다. 특히 사회의 문제가 되는 집단을 자폐아들이 아닌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편경 속에서 폭력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다수의 사람들로 보여주며 “장애”와 “정상”의 경계가 무너지며 그 경계의 모호함 속에 우리가 생각하던 옳고 그름의 생각이나 구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패턴이 무너지고 혼란에 빠지게 될 때 루는 바흐, 모차르트 등과 같은 일정한 형식이 갖춰져 있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다시 안정을 되찾게 됩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되는 클래식 작품이 바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토대로 편곡된 어니스트 길로우드의 오케스트라 작품 “카르멘 모음곡”입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조르주 비제 (Georges Bizet, 1838-1875)가 1875년 작곡한 오페라 “카르멘”은 현재까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며 사랑받는 오페라입니다.
1820년 경의 스페인 세비야의 담배 공장에서 일하는 집시 여인 “카르멘”, 용기병 하사관 “돈 호세”, 투우사 “에스카미요”의 삼각관계를 다루는 이 작품은 초연 당시에만 해도 악평을 받으며 실패한 작품으로 평가되었으며 비제 자신은 초연 3개월 후 이 오페라의 성공을 보지도 못한 채 36세의 나이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미국 뉴올리언스 출생의 프랑스 작곡가이자 생상과 비제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었던 작곡가 어니스트 길로우드 (Ernest Guiraud, 1837-1892)는 오페라 카르멘을 오케스트라 모음곡으로 편곡을 하였으며 이렇게 탄생하게 된 작품이 바로 관현악곡 “카르멘 모음곡 1번 (Carmen Suite No.1)”과 “카르멘 모음곡 2번 (Carmen Suite No.2)”입니다.
모음곡 1번과 2번은 각각 6곡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모음곡은 오페라 서곡, 간주곡 등을 모아 작품이며 제2모음곡은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집시의 노래 등의 아리아들을 모아 편곡한 작품입니다.
카르멘모음곡 제1번의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서곡 (Prelude) : 2부분으로 나눠진 서곡 중 뒷부분에 해당하는 곡으로 오페라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아라고네즈 (Aragonaise) : 4막의 간주곡으로 스페인 아라곤 지방의 춤곡 선율을 차용하였습니다.
3. 간주곡 (Intermezzo) : 원래 아를의 여인을 위해 비제가 작곡했던 작품이나 3막의 간주곡으로 삽입한 곡으로 목관악기와 하프의 어우러짐이 인상적인 곡입니다.
4. 세기디야 (Seguedille) : 1막에서 체포된 카르멘이 돈 호세를 유혹하는 곡입니다.
5. 알카라의 용병 (Les Dragons d’Alcala) : 2막의 간주곡으로 돈 호세의 “군인의 노래” 아리아를 주선율로 한 곡입니다.
6. 투우사 (Les Toreadors) : 1막 전주곡으로 투우사 에스카미요의 “투우사의 노래” 아리아를 테마로 한 곡입니다.
카르멘모음곡 제2번의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밀매업자의 행렬 (Marche des Contrebadiers) : 제3막에 등장하는 밀매업자들의 행진곡입니다.
2. 하바네라 (Habanera) : 오페라 카르멘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유혹의 아리아를 주 선율로 한 곡입니다.
3. 야상곡 (Nocturne) : 3막에서 돈 호세를 찾아온 처녀 미카엘라가 부르는 조용한 아리아를 토대로 만든 곡입니다.
4. 투우사의 노래 (Chanson du Toreador) : 하바네라와 함께 가장 유명한 아리아로 2막에서 에스까미요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5. 경비대의 교체 (La Garde Montante) : 1막에서 보초병들이 교대를 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곡을 주 선율로 만든 곡입니다.
6. 보헤미안의 춤 (Danse Boheme) : 2막의 집시의 노래를 토대로 만든 곡으로 점점 격앙되는 집시의 춤을 그리는 작품입니다.
소설 “어둠의 속도” 속에서 주인공 루가 선택한 작품이 이 두 모음곡 중 어떤 곡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르멘 모음곡”을 통해 작가 엘리자베스 문은 두가지 정반대의 구분인 “정상과 비정상”, “작용과 반작용”, “앎과 무지”, “패턴과 혼란” 등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양면성이 공존하는 루의 마음과 세상의 시각을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만약 치료가 성공한다면, 어쩌면 나는 단지 그 생각만 해도 나는 기쁨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나는 움직여야 한다. 일어서서 기지개를 켜지만 충분하지 않다…..
…나는 맞는 느낌이 올 때까지 기능항들을 훝는다. [카르멘 관현악 모음곡], 이거다. 이런 격정이 필요하다. 폭발하는 음이 필요하다. 나는 자유낙하로의 황홀한 열림을 느끼며 높이 더 높이 뛰어 오른다. 이어서 똑같이 황홀한 압박감, 관절의 조임, 나를 더 높이 밀어 올리려는 근육들의 움직임을 느낀다. 반대항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같은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 중력- 나는 중력의 반대항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트램폴린의 탄력성이 하나 만들어낸다. 숫자와 패턴들이 생겨나고, 깨어지고, 다시 생겨나며 마음 속을 달린다…”
자폐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다룬 소설 “어둠의 속도”는 우리에겐 잊혀진 클래식 작곡가인 “어니스트 길로우드”의 손으로 재탄생된 작품 “카르멘 모음곡”을 통해 빛이 아닌 어둠의 눈, 약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또다른 모습과 소수의 다양성을 통한 또다른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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