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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리뷰 [책 속의 클래식]

리뷰 10월호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

by zoiworld 2017.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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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5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며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1949~)는 일본 와세대 대학 문학부 연극과에 입학해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커피점이자 저녁에는 재즈바를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집필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던 1986~1989년까지는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즈, 클래식, 여행, 위스키 등에도 조예가 깊어 그에 관한 에세이집으로 내거나 영문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로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군상지 신인문학상 (1979), 노마문예 신인상(1982), 다니자키 문학상(1985) 등 일본의 많은 문학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프란츠 카프카 상(2006), 프랭크 오코너 국제 문학상(2006), 카탈로니아 국제상(2011) 등의 세계 문학상을 휩쓸며 2015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들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양을 쫓는 모험(1982), 태엽감는 새(1995), 해변의 카프카(2002), IQ84(2010) 등의 대표 작품들이 있으나 그의 입지를 넓히며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 속에 비중있게 자리잡을 수 있게 만든 작품이 바로 상실의 시대(1987)입니다.


 


상실의 시대의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만 600만부가 넘는 판매 기록을 세운 소설로 2009년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조사 결과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 1위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남자 주인공 나, 와타나베 10대의 어린 시절 기즈코, 나오코 두사람과 우정을 쌓습니다. 오랜 시절 남녀간의 사랑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함께 하는 운명의 연인이었던 기즈코와 나오코, 어느날 아무런 이유도 알리지 않은 채 자살이란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 기즈코를 대신해 나오코를 달래주던 와타나베는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나오코 역시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었으나 나오코는 기즈코와의 하룻밤을 보낸 후 심한 정신 질환으로 인해 요양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와타나베는 멀리에 있는 사랑하는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미도리라는 활달한 또다른 여인과의 관계를 갖게 되는데 미도리 역시 남자친구가 있으나 와타나베에게 호감을 가지며 마음을 털어놓게 됩니다.


그러던 중 자신을 찾아와달라는 나오코의 편지를 받은 와타나베는 요양원에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지내는 3일간 나오코의 룸메이트인 레이코와 나오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지게 됩니다.


 


도쿄로 돌아간 와타나베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미도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고 그 동안 나오코는 증상이 심해져 요양원을 나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와타나베를 더욱 상심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던 어느날 나오코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레이코의 편지를 받고 좌절 속에서 무전취식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와타나베는 8년만에 요양원을 벗어나 그를 찾아온 레이코와 하룻밤의 사랑을 나눈 후 헤어지게 되고 와타나베는 근처의 공중전화에서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며 소설은 끝나게 됩니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상실을 겪으며 좌절하고 아파하는 영혼들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인물들은 항상 세명이 엮여있는데 와타나베와 나오코와 기즈코/기즈코의 흔적, 와타나베와 나오코와 미도리, 와타나베와 나오코와 레이코, 와타나베와 미도리와 미도리의 남자친구, 와타나베와 미도리와 미도리의 아버지.. 그들은 상실 속에서 서로의 미묘한 관계 속에 아파하고 타인에게 의지하고 상실감에 빠지거나 서로를 보담아줍니다.


 


소설 속에서 남자주인공인 와타나베의 플라토닉적인 사랑의 주인공이자 죽은 기즈코의 영혼에 사로잡힌 여성인 나오코가 매우 좋아하는 작품으로 나오는 음악은 아이러니하게도 브람스 교향곡 4번 작품번호 98입니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삼각관계를 대표하는 인물은 바로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hams, 1833~1897)일 것입니다.


 


로베르트 슈만의 제자였던 브람스, 로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 40년간 홀로 지내던 클라라 슈만과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며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브람스는 묘하게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속 와타나베를 연상하게 합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을 택한 소설 속 기즈코와 심각한 정신 질환과 싸우다 세상을 떠난 로베르트 슈만, 로베르트의 환영과 브람스의 중간에서 외롭게 투쟁을 하던 클라라와 기즈코의 기억 속에 갇힌채 현실과의 유일한 연결 고리였던 와타나베를 끝내 져버린 나오코 역시 묘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속에서 요양원으로 떠나기 전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함께 가려했으나 다른 이유로 가지 못했던 연주회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풀어놓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날 콘서트의 초대권 두 장을 고생 끝에 입수해서 나오코와 함께 가려했던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나오코가 매우 좋아하는 브람스의 심포니 4번을 연주하기로 돼 있어서, 그녀는 그거슬 기대하고 있었다..


 


브람스가 52세가 되던 1885년에 작곡한 이 교향곡 4번은 그가 작곡한 마지막 교향곡이기도 합니다.


당시 비평가들에게 비탄적이고 어두운 작품이라 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한 이 교향곡은 바흐에서부터 이어진 베토벤의 고전주의와 슈만의 낭만주의 음악의 가운데에서 고뇌하던 브람스의 음악적 기복을 특히나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우수와 체념, 그리고 그의 고독으로 가득차 가을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1악장은 자신의 교향곡 3번에서와 같은 힘차고도 웅대한 느낌이, 2악장은 1번 교향곡에서 보여주던 어둡고도 비극적인 레퀴엠의 느낌을, 3악장은 신나고 기쁜 밝은 느낌의 2번 교향곡의 느낌을 지니며 앞서 썼던 3개의 교향곡을 함축시켜 3개의 악장에 정리하듯 표현시켜 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악장은 바흐의 칸타타 작품번호 150, 주님 당신은 나의 소망이기 때문(Cantata, BWV.150, Nach dir, Herr, verlanget mich)의 샤콘느 주제를 따와 변주곡 형태로 작곡되었습니다.


 


사모했던 한 여자죽은 그녀의 남자의 그늘 속에서 일생을 홀로 지내며 고독과 체념으로 가득찬 인생의 가을을 쏟아부어 완성한 브람스의 교향곡 4, 그리고 죽은 한 남자와 그의 그늘에 갇혀버린 한 여자를 사랑한 한 남자가 사랑하는 그 여자가 좋아하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위해 마련한 콘서트 티켓에 대해 서술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이 두 작품은 우수에 젖은 작곡가와 그 배경을 치밀하게 접목시킨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접하였을 때 더욱더 빠져들 수 있는, 깊어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책과 그 속에 스며든 클래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