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씨 이야기(Die Geschichte des Herrn Sommer), 향수(Das Parfum), 사랑을 생각하다(Ueber Liebe und Tod) 등의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독일의 작가 파트릭 쥐스킨트 (Patrick Suesskind, 1949-)는 34세가 되던 1984년 한 극단의 제의로 쓰게 된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가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가 1985년 발표한 장편 소설이자 2006년 영화화가 된 작품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냄새로 사람을 현혹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 그르누이가 완벽한 향기를 만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매혹적인 스토리로 3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며 그가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화는 되지 않았으나 독일어권 및 우리 나라에서도 연극 무대에 올려지며 많은 남자 배우들이 도전하고 싶어하는 모노 드라마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작품이 바로 오늘 다룰 작품이자 파트릭 쥐스킨스의 데뷔 작품인 “콘트라베이스(Kontra Bass)”입니다.
국립 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주인공인 이 작품은 주인공이 홀로 무대에서 담담하게 음악과 그 속에서 빠지지 않고 꼭 들어가 있으나 드러나지 않는 존재인 더블베이스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 또 드러나지 않는 소시민일 뿐인 자신에 투영하며 자신보다 한참 어리지만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자신과 영원히 어울릴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소프라노 세라”에 대한 짝사랑을 덤덤하게, 또 격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더블베이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클래식 작품들이 끊임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작품의 처음에 등장하는 브람스 교향곡 2번,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등 더블베이스가 빠져서는 안되지만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는 오케스트라 작품들,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 등의 오페라, 드보르작 5중주, 베토벤 8중주, 슈베르트 5중주 “숭어” 등의 실내악 작품까지…
이 작품은 “콘트라베이스 가이드북”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더블베이스에 대한 구조나 역사, 연주 주법, 작품 등에 대한 설명을 연주자의 입을 통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독어로는 콘트라바쓰(Kontra Bass), 영어로는 더블베이스(Double Bass)라 불리우는 현악기군 중 가장 낮은 음을 내며 가장 큰 악기이기도 한 이 악기는 우리 나라에서는 독어와 영어가 교묘하게 섞인 “콘트라베이스”로 더 많이 불리우게 되었으면 이 작품 역시 그런 이유로 “콘트라베이스”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자신의 악기에 비유하며 오케스트라, 사회 속에서 없어서는 안되지만 드러나지 않는 소시민, 군중의 일부분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 군중 속에서의 고독, 드러나는 빛에 대한 갈망, 안정적이나 정체되며 잊혀져버린 자신의 세계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모두의 주목을 받을만한 존재인 소프라노 세라라는 희망에 대한 갈망과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보여주며 현대인의 방황하는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주인공 콘트라베이시스트가 들려주는 많은 작품 중 유일하게 더블베이스가 솔리스트로 주목을 받는 작품이 바로 “디터스도르프 (Karl Ditters von Dittersdorf, 1739-1799)”의 더블베이스 협주곡 2번 마장조 (Double Bass Concerto No.2 in E Major, Kr.172)”입니다.
디터스도르프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작곡가이긴 하지만 오스트리아 출신의 바이올리스트이자 작곡가였으며 1765년 하이든의 후계자로 후원을 받고, 1770년 로마 교황으로부터 황금박차훈장, 1773년 귀족 칭호를 받는 등 유럽 전역의 사랑을 받았던 작곡가입니다.
그의 작품 “비올라와 더블베이스를 위한 이중협주곡”, 오라토리오 “에스터 (Esther, 1773)” 등을 작곡하며 빈 고전악파의 초기 작곡가 중 한명으로 18세기 음악의 주요 작곡가 중 한명이 되었으며 특히 1786년 작곡한 디터스도르프의 오페라 “의사와 약제사 (Dokter und Apotheker)”는 독일의 징슈필 형식의 토석이 되며 그를 징슈필의 창시자로 음악사에 기억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클래식 악기군 중 가장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으며 앞으로 나서는 악기인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디터스도르프는 아이러니하게도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두드러지지 않는 더블베이스를 솔로로 내세운 더블베이스 협주곡을 2곡이나 작곡하였는데 그 중 두번째 작품인 마장조 작품번호 172번은 더블베이스 독자적인 테마의 연주는 물론 더블베이스의 카덴차까지 등장시키며 “더블베이스”란 악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 Allegro Moderato, 2. Adaio, 3. Allegro 이렇게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설 “콘트라베이스”에서는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과 짧지만 강렬한 더블베이스의 카덴차로 5분의 연주시간을 채우고 있는 1악장이 등장합니다.
“…언제나 그 모양이니까 콘트라베이스 독주는 비록 150년 전 이후부터 기술이 월등하게 발전하였다고는 하더라도, 비록 콘트라베이스와 솔로 소나타와 모음곡을 위한 콘서트가 있기는 하지만, 콘트라베이스 독주회를 갖는 다는 것은 너무나 멍청한 바보짓일 수 밖에 없습니다…
…. 자, 그럼 제가 이제 여러분께 이른바 콘트라베이스를 위해서 작곡된 곡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어떤 의미에서는 콘트라베이스의 즉위식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의 정수를 선보여 드리겠습니다..”
오케스트라 속에서 절대적으로도 필요한 악기지만 구조상으로도, 음역상으로도 절대적으로 드러나서도 튀어서도 안되는 알아주지 않는 악기가 전면으로 나서는 디터스도르프의 이 작품을 소설 속 주인공은 “콘트라베이스의 즉위식”이라고 표현합니다. 군중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그저 하나의 부분일 뿐인 존재가 모두의 주목을 받고 전면에 나선다는 것은 그저 사회의 일원일 뿐인 현대인들이 한번쯤 꿈꿔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모노 드라마 “콘트라베이스”는 오케스트라 속 제일 뒤의 콘트라베이스들 틈에서 모두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순간에 자신의 심장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큰 목소리로 외칠 것이라는 세라의 이름을 외칠 것이라는 그의 마지막 다짐, 그리고 슈베르트의 오중주 숭어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연주회장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오픈 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이 모노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오랜 시간 더블베이스의 역할이었던 브람스 협주곡 2번 속의 소시민의 삶을 선택하며 마음 속으로만 또다시 꿈을 꾸게 될까요, 아니면 디터스도르프의 더블베이스 협주곡처럼 그의 모든 것을 걸고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세라의 이름을 외치게 될까요?
모든 문학상을 거절한 채 사진을 찍히는 일조차 피하며 은둔의 생활을 하며 스스로 “콘트라베이스”의 주인공이 되길 선택한 작가 파트릭 쥐스킨트 자신은 이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요?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잃고서라도 모두의 주목을 받는 자리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어떻게보면 바보같은 결심을 해야하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안정된 현재일까요 아니면 모든것을 건 위험한 변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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