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문호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1797~1856)’의 ‘노래의 책 (Buch der Lieder)’ 속의 시들을 토대로 작곡된 많은 작품들 중 아홉번째로 다뤄볼 작품은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의 6개의 노래,
작품번호 13입니다.
2019년은 ‘클라라 슈만 (Clara Josephine Wieck-Schumann, 1819—1896)’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미 9세의 나이에 무대 위에서 한명의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았으며, 당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로 사랑받았던 클라라 슈만, 그러나 그녀가 작곡한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남편이었던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의 작품들만큼 유명하거나 많이 연주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클라라 슈만은 16세가 되던 1835년에 직접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반주, 그리고 멘델스존의 지휘와 함께 솔로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의 첫 ‘피아노 협주곡 작품번호 7번 (Piano Concerto in a minor, Op.7)’을 초연하여 호평을 받는 등 당시엔 작곡가로서도 피아니스트로의 명성만큼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16세의 나이에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비크 (Johann Gottlob Friedrich Wiek, 1785-1873)’의 제자였던 9살 연상의 로베르트 슈만과 사랑에 빠져 1840년, 21세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된 클라라는 슈만이 결혼하던 해에만 무려 138곡이라는 방대한 양의 가곡을 작곡할 수 있게 음악적 영감과 힘을 실어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덕분에 1840년은 로베르트 슈만의 ‘가곡의 해’라 불리고 있으며, 이 시기에는 클라라 슈만 역시 로베르트 슈만의 영향을 받아 피아니스트로서의 왕성한 활동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결과 클라라 슈만은 자신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피아노 독주를 위한 3개의 로망스 작품번호 11번 (Trois Romances pour le pianoforte, Op.11)’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1931년, 12세의 나이에 가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던 클라라 슈만은 로베르트 슈만과 결혼한 후 가곡을 작곡하는 일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작곡을 시작하여 25세가 되던 1844년 완성하여 초판이 발행된 작품이 바로 ‘피아노 반주가 있는 6개의 노래, 작품번호 13번 (Sechs Lieder mit begleitung des pianoforte, Op.13)’입니다.
클라라 슈만의 6개의 노래는 덴마크의 왕비 ‘슐레스비크, 홀슈타인, 존더부르크, 아우구스텐부르크의 카롤리네 아말리에 공주 (Caroline Amalie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Augustenburg, 1796-1881)’에게 헌정된 작품입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이었던 ‘크리스티안 8세 (Christian VIII, 1786-1848)’는 자신의 사촌이자 첫번째 부인이었던 ‘샤를로테 프레데리카 (Charlotte Frederica)’와 4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하고 1815년, 카롤리네 아말리에 공주와 두번째 결혼을 하였습니다. 2명의 아들 중 한명을 잃었으나 왕위를 물려줄 수 있는 한명의 아들을 크리스티안 8세에게 안겨줬던 샤를로테와 달리 카롤리네 아말리에 왕비는 슬하에 자식이 없었기에 크리스티안 8세가 10명의 혼외자를 두는 것을 감내해야만 하였습니다.
20여년의 세월을 인내하며 살아온 중년의 카롤리네 아말리에 왕비에게 젊은 클라라 슈만이 헌정한 6개의 노래는 3명의 독일 시인의 시에 작곡을 한 곡들의 모음집입니다.
클라라 슈만은 3번 ‘사랑은 나이팅게일처럼 앉아 있었다. (Die Liebe sass als Nachtigall)’, 4번 ‘달이 왔다 조용히 사라졌다 (Der Mond kommt still gegangen)’, 그리고 6번 곡인 ‘조용한 연꽃 (Die stille Lotosblume)’에 시인 ‘엠마누엘 가이벨 (Emanuel Geibel, 1815-1884)’의 시를 가사로 썼으며, 5번 곡 ‘나는 네 눈 속에 있다 (Ich hab’ in deinem Augen)’은 시인 ‘프리드리히 류케르트 (Friedrich Rueckert, 1788-1866)’의 시에 작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번째와 2번째 곡이 바로 하이네의 ‘노래의 책 (Buch der Lieder)’ 속의 시를 가사로 쓴 가곡입니다.
‘노래의 책’의 세번째 연작인 ‘귀향 (Die Heimkehr)’의 93편의 시 중 23번째 시 ‘나는 어두운 꿈 속에 서서 (Ich stand in dunkeln Traemen)’는 1823년에서 1824년 사이, 26세의 하이네가 쓴 이별의 시로 클라라 슈만은 하이네 시 ‘나는 어두운 꿈 속에 서서’의 구절처럼 몽환적이면서도 서글픈 멜로디를 완성하여 잔잔하면서도 애처로운 이별의 슬픔을 그리고 있습니다.
[나는 어두운 꿈 속에 서서 (Ich stand in dunkeln Traeumen)]
Ich stand in dunkeln Traeumen und starrte ihr Bildniss ans,
Und das geliebte Antlitz, Heimlich zu leben began
나는 어두운 꿈 속에 서서 그대의 초상을 응시하였네.
내가 사랑하던 그 얼굴이 점점 살아나기 시작하였네.
Um ihre Lippen zog sich, Ein Laecheln wunderbar,
Und wie von Wehmuthsthraenen, Erglaenzte ihr Augenpaar.
그녀 입가에 경이롭게 웃음 한 조각 서리고,
슬픈 눈물이 맺힌 듯 두 눈이 반짝였네.
Auch meine Traenen flossen, Mir von den Wangen herab.
Und ach, ich kann es nicht glauben, dass ich dich verloren hab’!
그리고 나의 눈물도 뺨을 타고 흘러내렸네.
아.. 난 믿을 수가 없다네, 내가 당신을 잃었다는 것을!
클라라 슈만의 ‘6개의 노래’ 중 두번째 곡 역시 하이네의 ‘노래의 책’의 세번째 연작 ‘귀향’의 시를 가사로 쓴 곡입니다. 33번째 시이자 역시 하이네가 26세에 쓴 시인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지만 (Sie liebten sich beide)’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의 감정을 알지 못한 채 헤어지고 죽을 때까지도 알지 못하였다는 안타까운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클라라 슈만은 공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곡을 짧고도 간결하게 작곡하였는데, 애잔한 두 남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마치 카롤리네 아말리에 왕비와 크리스티안 8세의 엇갈림처럼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지만 (Sie liebten sich beide)]
Sie liebten sich beide, doch keener wollt’ es dem andern gestehn;
Sie sahen sich an so feindlich, und wollten vor Liebe vergehen.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지만 아무도 고백하려 하지 않았네.
서로를 증오하듯 바라봤지만, 사랑 때문에 죽을 것 같았지.
So trennten sich endlich und sah’n sich, nur noch zuweilen im Traum;
Sie waren laengst gestorben, und wussten es selber kaum.
결국 그 둘은 헤어졌고, 가끔 꿈 속에서만 다시 만났지.
그들은 죽은지 이미 오래이고, 그 두사람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네.
이 두 시는 하이네의 노래의 책 속에서 23번째와 33번째의 시이긴 하지만, 마치 연결되어 있는 듯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클라라 슈만은 카롤리네 아말리에 왕비를 위로하기 위하여 하이네의 ‘나는 어두운 꿈 속에 서서’와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지만’ 뿐만 아니라 가이벨과 류케르트의 시 ‘사랑은 나이팅게일처럼 앉아 있었다.’, ‘달이 왔다 조용히 사라졌다’, ‘나는 네 눈 속에 있다’, 그리고 ‘조용한 연꽃’을 연작시처럼 작곡하였습니다.
인내의 삶을 살아온 중년의 왕비를 위로하기 위한 젊은 여성 음악가가 선물한 6개의 노래는 하이네의 노래의 책 속의 담담하지만 처절한 이별과 그리움의 시를 클라라 슈만의 고요하고도 부드러운, 하지만 그 속의 강인함을 담아낸 메시지로 그려낸 매우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쏘냥의 클래식 칼럼 > 리뷰 [책 속의 클래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 2019년 7월호 - 가곡의 교과서 독일 시인 하이네의 '노래의 책', 아이빈 알네스의 5개의 노래 (0) | 2020.05.04 |
---|---|
리뷰 2019년 6월호 -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 플로베르의 '살람보', 에르네스트 레이예의 오페라 '살람보' (0) | 2019.06.23 |
리뷰 2019년 4월호 -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빵가게를 습격하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0) | 2019.06.23 |
리뷰 2019년 3월호 - 가곡의 교과서, 독일 시인 하이네의 '노래의 책' 08. 바그너 '두 사람의 척탄병' (0) | 2019.06.23 |
리뷰 2019년 2월호 -조반니 베르가의 소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마스카니의 단막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0) | 2019.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