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문호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1797~1856)’의 ‘노래의 책 (Buch der Lieder)’ 속의 시들을 토대로 작곡된 많은 작품들 중 일곱번째로 다뤄볼 작품은 1월호에 다뤄본 슈만의 ‘두 사람의 척탄병’과 같은 해에 출판된 독일을 대표하는 또 한명의 작곡가 바그너의 동명의 작품 ‘두 사람의 척탄병’입니다.
1821년 하이네의 첫 출판 시집인 ‘시집 (die Gedichte)’에 실린 후 1827년 ‘노래의 책 (Buch der Lieder)’의 첫 연작인 ‘젊은 날의 아픔 (Junge Leiden)’ 중 세번째 연작시 ‘로망스 (Romanze)’의 여섯번째 시로 수록된 ‘두 사람의 척탄병 (die beiden Grenadiere)’는 월간 리뷰 1월호에 실린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28. 가곡의 교과서 독일 시인 하이네의 ‘노래의 책’ – 07. 슈만 ‘두 사람의 척탄병’>에서도 언급하였듯 혈기왕성한 젊은 자유주의자였던 청년 하이네의 영웅이자 혁명과 개혁을 상징하던 ‘나폴레옹 (Charles Louis Napoleon Bonaparte, 1808-1873)’에의 존경심을 표출한 시입니다.
브람스와 함께 독일 낭만 음악을 완성시킨 쌍두마차로 인정받으면서도 ‘반유대주의’를 꾸준하게 주장해온 민족주의자, 나치주의자라는 굴레 때문에 현재에도 작품 자체를 거부당하고 있는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는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그리고 수필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였습니다.
바그너가 1839년에서 1840년 사이에 바리톤과 피아노를 위하여 작곡하여 슈만의 ‘두 사람의 척탄병’이 출판된 해와 동일한 해인 1840년에 세상에 선보이게 된 가곡 ‘두 사람의 척탄병’은 의외로 불어로 번안된 가사로 출판되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과 ‘호프만의 이야기’의 원작자로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작가 겸 작곡가 ‘호프만 (E. T. A. Hoffman)’와 하이네의 소설이나 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였던 프랑스 번역가이자 역사가 ‘아돌프 프랑소와 뢰베-베마르 (Adolph Francois Loeve-Veimars, 1801-1854)’가 번역한 가사에 곡을 입힌 바그너의 ‘두 사람의 척탄병 바그너 작품번호 60 (Les deux grenadiers, Wagner Werkverzeichnis 60)’은 7분에 가까운 매우 긴 가곡이며 하이네의 시와 동일한 가사가 아닌 개사된 부분이 있습니다.
Longtemps captifs chez le Russe lointain, Deux Grenadiers retournaient vers la France;
Déjà leurs pieds touchent le sol germain; Mais on leur dit: Pour vous plus d'espérance;
L'Europe a triomphé, vos braves ont vécu! C'en est fait de la France, et de la grande armée!
Et rendant son épée, l'Empereur est captif et vaincu!
러시아에 포로로 잡혀있다 풀려난 두 척탄병들이 프랑스로 돌아가고 있다;
독일 영지에 도착하였을 때 그들은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용감한 사람들에 의해 유럽이 승리하였고 프랑스와 위대한 군대가 정복당했다고!
황제가 그 칼 아래 포로로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Ils ont frémi; chacun d'eux sent tomber des pleurs brulants sur sa mâle figure.
« Je suis bien mal » ... dit l'un, « je vois couler des flots de sang de ma vieille blessure! »
« Tout est fini,
» dit l'autre, « ô, je voudrais mourir! Mais au pays mes fils m'attendent, et
leur mère,
qui mourrait de misère! J'entends leur voix
plaintive; il faut vivre et souffrir! »
이 비통한 소식에 두 사람의 척탄병은 서로의 눈물을 느끼며 흐느껴 울었다.
“너무나 괴로워.” 한명의 척탄병이 말을 하였다. “내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제 끝났어”.. 다른 한명이 말을 하였다. “아, 나는 죽고 싶어. 하지만 내 아들들과 그들의 어머니는 내가 없으면 비참하게 죽을 것이야! 우리는 살아남아야하고 이 고통을 견뎌야 해!”
«Femmes, enfants, que m'importe! Mon coeur par un seul voeu tient encore à la terre.
Ils mendieront s'ils ont faim, l'Empereur, il est captif, mon Empereur! ...
“아내와 아이들, 그게 내게 무슨 상관있겠나? 한가지 소원만이 내 마음을 붙들고 있을 뿐이네.
그들은 구걸을 하러 가면 될 것이야. 하지만 나의 황제가 포로가 되다니! 나의 황제께서!!
Ô frère, écoute-moi, je meurs! Aux rives que j'aimais, rends du moins mon cadavre, et du fer de ta lance, au soldat de la France creuse un funèbre lit sous le soleil français!
Fixe à mon sein glacé par le trépas la croix d'honneur que mon sang a gagnée;
dans le cerceuil couche-moi l'arme au bras, mets sous ma main la garde d'une épée;
오 나의 형제여 내 말을 듣게나, 내가 죽게 된다면, 최소한 내 시체를 내가 사랑하는 해안으로 가져와주게. 프랑스 군인으로서 프랑스의 태양 아래에 내 시체를 뉘일 곳을 만들어주게!
내 피로 물든 명예의 십자가를 죽음으로 얼어붙은 가슴 위에 얹어주고;
관 속의 내 팔에 소총을 안겨주고, 내 손에 칼을 쥐어주게!
De là, je prêterai l'oreille au moindre bruit, jusqu'au jour, où, tonnant sur la terre ébranlée,
l'écho de la mêlée m'appellera du fond de l'éternelle nuit!
Peut-être bien qu'en ce choc meurtrier, sous la mitraille et les feux de la bombe,
mon Empereur poussera son coursier vers le gazon qui couvrira ma tombe.
Alors je sortirai du cerceuil, tout armé; et sous les plis sacrés du drapeau tricolore,
j'irai défendre encore la France et l'Empereur, l'Empereur bien aimé. »
거기에서, 나는 흔들리는 땅에서 청둥과 같은 소리가 들리는 날, 총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무하는 근접전의 메아리가 영원한 밤의 심연에서 나를 부를 때까지 보초처럼 가장 사소한 소리조차 들을 것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총과 폭탄의 불꽃 아래에서 나의 황제와 그의 마차가 내 무덤을 넘어갈 때에는 난 성스러운 삼색기 아래에서 프랑스와 황제를, 사랑하는 나의 황제를 호위하기 위하여 무장한 채 관에서 나올 것이야!”
바그너의 ‘나치적인 성향’을 봤을 때 하이네의 ‘두 사람의 척탄병’이 하이네의 오리지널 독어 가사가 쓰이지 않고 뢰베-베마르의 프랑스어 번역 가사가 쓰여진 것이 의아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로 현재까지도 바그너의 음악의 연주를 꺼려하거나 그의 사상이 들어간 작품들의 감상조차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구요.
작가이기도 하였던 바그너가 1850년 쓴 수필 ‘음악 속 유대주의 (Das Jundenthum in der Musik)’에서부터 이 논란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1878년 ‘독일이란 무엇인가? (Was ist deutsch?)’와 같은 글을 통하여 꾸준하게 유대인, 특히나 유대인 작곡가가 독일에 득이 되지 않는 요소라는 비난을 퍼부었는데, 이는 동시대 위대한 음악가였으며 경쟁과 비교 대상이었던 ‘멘델스존 (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나 ‘지아코모 마이어베어 (Giacomo Meyerbeert, 1791-1864)’부터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로 이어지는 유대인 작곡가들의 음악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컸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왜곡된 사상, 또는 견해에 불과하였던 바그너의 반유대주의가 바그너가 사망한지 6년이나 지난 후에 탄생한 ‘히틀러 (Adolf Hitler, 1889-1945)’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음악보다도 더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그너가 사망한지 약 50년이 지난 후인 1930년 대에 이르러 바그너 음악의 신봉자였던 히틀러는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적 사상과 나치의 민족우월주의, 영웅주의를 바그너의 음악과 함께 대대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의 ‘바그너 음악=나치’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적인 사상이 정치적인 이유였는지 음악적인 견해 차이에서 시작된 오해가 커진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왜곡된 사상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는 그의 마지막 오페라인 ‘파르지팔 (Parsifal)’의 초연 지휘를 맡은 유대인 지휘자 ‘헤르만 레비 (Hermann Levi, 1839-1900)’와 같은 유대인 동료나 친구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가졌던 것으로 보아, 나치와 현재의 시각이 바그너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이네의 영웅에 대한 존경심과 자유주의 사상이 뒤틀린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바그너의 반유대주의 사상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바그너의 반유대주의가 표면적으로 나타나기 무려 10여년 전에 작곡된 ‘두 사람의 척탄병’은 미나란 애칭으로 불리우던 배우 ‘크리스티네 플라너 (Christine Wilhelmine ‘Minna’ Planer)’와 결혼 후 현재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Riga)’에서 생활하며 많은 빚을 지게 되어 영국으로 야반 도주를 하여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간신히 돌아오기 직전의 시기에 쓰여진 곡입니다.
프랑스어로 쓰여졌으며 슈만의 두 사람의 척탄병과 동일하게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의 멜로디를 차용한 바그너의 ‘두 사람의 척탄병’은 20대 중반, 젊고 혈기왕성한 아직은 왜곡된 사상에 물들지 않고 그저 평생을 따라다닌 막대한 빚의 압박에 시달릴 뿐이었던 순수한(?) 그의 음악적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하이네의 ‘노래의 책’ 속의 ‘두 사람의 척탄병’ 시와 슈만의 독일어 가곡 ‘두 사람의 척탄병’, 그리고 뢰베 베마르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가사를 사용한 바그너의 ‘두 사람의 척탄병’을 함께 감상해보면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의 감상이 더욱 흥미진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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