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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리뷰 [책 속의 클래식]

리뷰 2019년 4월호 -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빵가게를 습격하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by zoiworld 2019.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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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4번째로 소개해 드렸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그리고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에서도 다뤄보았던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1949~)는 프란츠 카프카 상 (2006), 예루살렘 상 (2009), 스페인 예술 문학 훈장 (2009), 안데르센 문학 상 (2016) 등을 받은 명실상부 아시아의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 1987), 해변의 카프카 (2002), 태엽감는 새 (1995), 1Q84 (2010), 기사단장 죽이기 (2017) 등의 소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재즈 카페를 운영했던 경험 등 다양한 삶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쓴 또 하나의 재즈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등의 수필집을 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재즈, , 클래식 음악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1935-)와의 대화를 토대로 쓴 책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2011)의 내용 자체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집한 LP판을 오자와 세이지와 함께 들어보며 녹음을 하였을 때의 지휘자의 모습이나 상황 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굉장한 클래식 애호가이며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방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클래식 작품은 그저 스쳐가는 하나의 배경 음악이 아닌 어떤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요.

상실의 시대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좋아하는 여주인공의 성격이 브람스 교향곡 4번의 음악적 성격과 쓰여졌던 당시의 작곡가의 상황들과 겹쳐진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또 추후에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에서 다뤄볼 예정인 기사단장 죽이기, 태엽감는 새 등의 소설 속에도 등장 인물들이 자주 듣는 작품 등을 통하여 그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듯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클래식 작품은 그 작품과 연관이 된 인물의 성향과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 활동 초기에 쓴 빵가게를 습격하다32세의 나이였던 1981, 와세다 문학 10월호에 실었던 단편소설입니다. 원초적인 본능에 대한 내용을 다룬 이 단편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작은 배고픔으로 시작된 공복, 극심한 가난으로 인하여 그 공복은 주인공과 파트너의 이성을 정복하고 사고력을 상실시킵니다.

주인공과 파트너는 결국 부엌칼을 들고 빵가게를 털기로 결심합니다. 상가 안에 위치한 빵가게의 유일한 손님이었던 할머니가 빵을 고르고 다시 놓고를 반복하며 느릿느릿하게 행동하자 주인공과 파트너는 그냥 칼로 할머니와 빵가게 주인을 모두 찔러서 죽여버릴까라는 충동을 느낄 정도로 배고픔과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윽고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 할머니가 빵가게를 떠나고 그들은 부엌칼을 들이밀고 빵가게 주인에게 빵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놀란 기색도 없이 그냥 자신이 매장 안에 틀어놓고 있던 바그너의 음악을 귀담아 들어준다면 빵을 마음껏 먹도록 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빵은 마음껏 먹을 수 있지만 저주를 하겠다는 이상한 대답을 합니다. 결국 주인공과 파트너는 빵을 실컷 먹는 대신 바그너의 음악을 들었고, 빵가게 주인은 흘러나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설명을 해줍니다.

 

리뷰의 2019 3월호에 실린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30번째 글의 주인공이었던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46세의 나이였던 1859년에 작곡한 그의 8번째 오페라이자 바그너의 가장 위대한 오페라라고 꼽고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는 서곡이 없이 3막으로 이뤄져있으며 1865년에 뮌헨에서 초연된 약 4시간의 오페라입니다. 중세 유럽, 켈트족의 전설에서 유래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2006년 미국에서 영화화되기도 하였으며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중세 독일 시인인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Gottfried von Strassburg, ?-1215년경)가 쓴 소설 트리스탄 (Tristan)을 토대로 대본이 쓰여졌습니다.

 

중세 소설 트리스탄과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조만간 책 속의 클래식에 등장할 예정이기에 줄거리는 짧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일랜드의 왕녀 이졸데의 사촌오빠이자 약혼자였던 모롤트를 적으로 만나 죽이고 자신도 부상을 당한 트리스탄은 자신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신비한 의술로 소문이 난 탄트리스를 찾아갑니다. 사실 탄트리스는 이졸데가 사용하고 있었던 가명이었으며, 이졸데는 트리스탄을 치료하던 중 모롤트의 부러진 칼끝을 트리스탄 몸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콘월의 왕 마르케와 결혼을 하게 된 이졸데, 마르케 왕의 조카인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수행하게되었고 이졸데는 트리스탄에게 독약을 먹여 복수하려 합니다. 시녀 브란게네는 독약 대신 사랑의 묘약으로 바꿔치기를 하였으며, 트리스탄에게 독약을 먹이고 자신도 독약을 먹고 죽으려 했던 이졸데는 서로 사랑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장장 4시간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왜 하필 빵가게를 습격했을 때 나온 음악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였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설적인 그룹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 (John Winston ono Lennon, 1940-1980)이 당시 유명세를 타고싶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있던 20대의 젊은 경비원 마크 채프먼 (Mark David Chapman, 1955-)에게 살해당한 직후에 그 당시 삭막하고 죄의식이 없는 채프먼의 모습과 어둡고 공허한 사회 분위기에 감흥을 받아 이 단편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육체적인 공복감과 공허한 감정이 합쳐진 배고픔이 겹쳐져 범죄를 죄의식없이 저지르려 하는 소설 빵가게를 습격하다 속 주인공과 파트너, 그리고 애증과 복수심, 그리고 잘못된 시작이었으나 그렇기에 더 완벽한 사랑에 빠져버린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본능을 따른다는 같은 선상에 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쪽을 택한 빵가게 2인조 도둑들과 사랑하였으나 오페라 속에서 잘못된 사랑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선을 넘지 않은 두 주인공을 동일시한 것일 수도 있지요.

 

197929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소설 빵가게를 습격하다1985다시 빵가게를 습격하다라는 단편 소설과 함께 엮어 독일의 일러스트레이터 카트 멘쉬크 (Kat Menschik, 1968-)의 감각적인 그림과 함께 출판되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아내와 함께 다시 한번 빵가게를 습격하는 내용을 다룬 다시 빵가게를 습격하다를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함께 감상해보면 난해하다고 평가받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들을, 육체적인 공복감과 감정적인 공허함에 대한 작가의 심경과 소설 속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한 오페라 속 해소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한 바그너를 이해하기 쉬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