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를 든 철학자 (Philosopie mit
dem Hammer)’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896년에 작곡한 동명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의 원작
소설을 쓴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니체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는 바로 ‘신은 죽었다 (Gott ist tot)’일 것입니다. 그가 남긴 이 말과 1895년 책 ‘안티 크리스트 (Antichrist)’, 그리고 니체의 여동생이자 인종주의자이며 히틀러의 지지자였던 ‘엘리자벳 니체 (Elisabeth Foerster-Nietsche, 1846-1935)’가 니체의 사후에 그의 글들을 조작하여 1901년에 출간한 ‘힘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 등으로 인하여 그의 사상이 꽤 오랜 시간 왜곡되어 알려져 있었습니다.
니체는 현생을 사랑할 것을 주장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동생 엘리자벳과 독일 민족주의자들의 의지와 달리 민족주의나 반유대주의를 반대하였으며, 죽음 이후의 영원을 부정하였습니다. 사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니체의 사상은 3가지의 단어로 압축시킬 수 있습니다. 바로 앞서 이야기하였던 ‘신의 죽음’, ‘허무주의’, 그리고 ‘초월적 인간’입니다.
신과 신앙이 상실됨으로서 절대 가치가 사라진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니힐리즘 (Nihilismus)’라 불리는 허무주의가 출현하는데, 약자들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피하고 향락에 빠지거나 퇴폐한 삶에 빠져 공허함을 채워보려는 ‘수동적인 허무주의 (Der Passive Nihilismus)’가 아닌 적극적으로 허무의 현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질서나 가치가 상징하는 절대적인 권위들을 없애려 하는 ‘능동적인 허무주의 (Der Aktive Nihilismus)’를 추구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바로 니체의 중심 사상입니다.
이렇게 수동적인 허무주의에 빠져 현실에 안주하거나 죽음 이후의 삶만을 추구하는 ‘인간 말종 (Der letzte Mensch)’과 반대되는 인간인, 모든 도덕과 신앙을 뛰어 넘어 새롭게 창조의 길을 걷는 이가 바로 ‘초월적 인간 (Uebermensch)’이며, 이 초월적 인간이 바로 니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서양의 전통적인 기독교적 사상과 문화를 깨부수려던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사실 생전에는 철학자로서보다 문헌학자로 더욱 인정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리스 음악극 (Das griechische Musikdrama, 1870)’, ‘호메로스와 고전 문헌학 (Homer und die klassiche Philologie, 1869)’와 같은 문헌서를 남긴 니체는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oedie aus dem Geiste der Musik, 187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3-1885), ‘도덕의 계보학 (Zur Genealogie der Moral, 1887)’,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해설서인 ‘선악의 저편: 미래 철학의 전주곡 (Jenseit von Gut und Boese: Vorspiel einer Philosophie der Zukunft, 1886)’ 등의 철학서를 남겼습니다.
니체는 1878년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 1879년 ‘혼합된 의견들과 잠언들 (Vermischte Meinungen und Sprueche)’, 1880년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Der Wanderer und sein Schatten)’를 출판하였는데, 후에 이 세권의 책을 하나로 묶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이란 이름의 2권의 책으로 다시 출판하였습니다.
1권과 2권에 각각 646, 756개의 단편, 총 1411개의 짤막한 글들로 이뤄진 서적인 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신앙과 언론의 자유를 외쳤던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볼테르 (Voltaire/본명 Francois-Marie Arouet, 1694-1778)’의 서거 100주기를 기념하기 위하여 니체가 바친 글입니다.
국가나 종교, 남녀간의 사랑, 가족, 도덕, 형이상학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방대하게 담겨진 니체의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서 니체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 역시 서술하였는데요.
‘지극히 선한 사람들과 결합할 수 있는 천재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하이든은 그 천재성을 지니고 있던 인물이다.’, ‘베토벤을 연주자의 이상적인 청중이라 불러도 된다면 슈베르트는 스스로 이상적인 연주자로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이다.’ 등 바흐, 하이든,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 슈만의 음악 세계와 특성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서술한 글들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권의 149번째 글부터 169번째 글까지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 중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클래식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이 바로 쇼팽의 뱃노래입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쇼팽 (Frederic Francois Chopin, 1810-1849)’에 대해 니체는 159번째 글에서 ‘레오파르디 (Leopardi)처럼 아름다움을 관조하고 숭배했던 최후의 근대 음악가인 폴란드인 쇼팽, 모방할 수 없는 쇼팽-그 이전의 또 그 이후에 오는 어떤 사람도 이러한 수식어를 받을 자격이 없다…’처럼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160번째 글에서 특별하게 쇼팽의 뱃노래에 대한 글을 따로 서술할 정도로 쇼팽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있는데요.
‘피아노의 시인’이란 별명을 가진 쇼팽은 200여곡의 작품 중 대부분을 피아노를 위한 곡을 작곡한 음악가입니다. 쇼팽은 1846년, 자신이 사망하기 3년 전에 피아노 독주를 위하여 ‘뱃노래 (Barcarolle Op.60 in F sharp Major)’를 작곡하여 출판하였는데, 이 곡은 무려 58곡의 마주르카, 21개의 녹턴, 26개의 프렐류드, 27개의 연습곡 등의 많은 작품들과 달리 쇼팽이 작곡한 유일한 뱃노래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곤돌라 사공들의 노래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6/8박자의 바카롤, 즉 뱃노래, 쇼팽은 이 뱃노래를 6/8박자가 아닌 12/8박자로 작곡하여 그 느리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을 더욱 우아하게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니체는 쇼팽의 뱃노래에 대해 아래와 같이 남겼습니다.
‘거의 모든 상태와 생활 방식에는 하나의 축복된 순간이 있다. 훌륭한 예술가들은 그것을 찾아내는 법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바닷가에서의 생활, 가장 소란스럽고 가장 욕심 많은 천민들 가까이에서 전개되는 그렇게 권태롭고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삶에도 축복된 순간이 있다; - 쇼팽은 이 축복된 순간을, 신들조차도 긴 여름밤 작은 배에 누워 이 음악을 듣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뱃노래에서 음악으로 들려주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긴 곤돌라 위에 앉은 듯 부드럽게 흔들리는 리듬만큼 뱃사공의 노고도 심할텐데요. 물살을 헤치며 노를 젓는 뱃사공처럼 피아니스트에게 테크닉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작품인 쇼팽의 뱃노래는 세계적인 피아노 콩쿨이기도 한 쇼팽 국제 콩쿨에서도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이기도 합니다.
쇼팽의 뱃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니체의 철학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가 표현하였듯 길고 긴 여름날에 우리도 신이 된 듯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곤돌라 위에서 뱃사공, 또는 피아니스트의 노력으로 탄생한 음악으로 축복되어지는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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