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번째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빵가게를 습격하다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짧게 다뤄보았던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뿌리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는 원래 유럽 전역의 음유 시인들에 의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전설로 그 원작자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영국 콘월에 6세기 경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트리스탄의 비석’에 ‘여기에 쿠노모루스의 아들인 드루스타누스가 잠들어 있다’란 묘비명의 드루스타누스가 트리스탄과 관련된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여 이 이야기가 고대 켈트족의 전설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또한 아시아나 게르만 문화로부터 흘러왔을 것이란 추정도 있습니다.
영국 왕실에 소속되었던 프랑스 시인으로 알려진 ‘브리튼의 토마스 (Thomas d’Angleterre)’가 1155년~1160년 사이에 중세 서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큰 권력을 지녔던 여성이자 프랑스 왕 루이7세의 왕비이자 이혼 후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와 결혼한 ‘알리에노르 다키타니아 (Alienor d’Aquitania, 1122-1204)’ 여공작을 위하여 소설을 쓴 것이 여태 남아있는 가장 오래 된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관련된 문서입니다.
브리튼의 토마스의 이 소설을 바탕으로 13세기 초, 중세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Gottfried von Strassburg, ?-1220?)’가 운문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운문 소설’이란 일정한 규칙이나 운율이 있는 시의 형식으로 쓴 소설을 뜻하며, 슈트라스부르크가 집필한 운문 소설 ‘트리스탄 (Tristan)’은 1210년-1215년 사이에 집필하기 시작한 대작으로 알려져 있죠. 집필 도중 건강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 슈트라스부르크는 전체 이야기의 절반 정도만 완성하고 사망하였으며, 그가 죽기 전 쓴 소설 부분을 1부, 후에 다른 작가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후반부를 2부, 또는 속편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슈트라스부르크의 ‘트리스탄’은 1000년에 가까운 그 오래된 역사만큼 소실이 많이 되어서 현재는2/3 정도인 20,000개 정도의 구절의 필사본만이 남아있습니다. 브리튼의 토마스의 작품에서 줄거리를 따라가긴 하지만 인물에 대한 표현이나 내용의 해석은 슈트라스부르크 자신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구사한 ‘트리스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트리스탄은 콘월에 있는 자신의 삼촌이자 콘월의 왕 마크의 궁전에서 용맹한 청년으로 자랍니다. 어느 날 마크 왕은 참새에게서 얻게 된 황금 머리카락의 주인인 여자를 찾아내 자신의 신부로 맞이할 수 있게 데려오라는 명령을 트리스탄에게 내리는데요. 이 황당한 명령에도 트리스탄은 좌절하지 않고 황금 머리카락의 주인을 찾으러 아일랜드 왕의 왕궁에 다다르게 되었고, 여기서 황금빛 머리카락의 주인이자 아일랜드 왕의 딸 이졸데를 만나 삼촌 ‘마크’의 이름으로 구혼을 하게 됩니다. 아일랜드 왕의 허락으로 이졸데를 데리고 콘월로 돌아가는 항해를 하던 도중,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마크 왕과 이졸데를 위해 준비된 사랑의 묘약을 실수로 마셔버리고 금지된, 그러나 영원한 사랑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마침내 콘월에 도착하여 이졸데는 마크 왕과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으나, 비밀리에 트리스탄을 만나며 간통을 계속하게 됩니다. 꼬리가 길어 결국 모든 것이 탄로가 나버리고, 궁에서 쫓겨나버린 두 사람 역시 결국은 이별을 택하게 됩니다. 이졸데는 마크에게 돌아가 화해를 하고, 콘월을 떠나야 한 트리스탄은 방황을 하면서도 영원히 이졸데를 그리워 합니다.
슈트라스부르크의 트리스탄은 매우 아름답고 서정적이면서도 깔끔한 문장 처리를 보여주며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관련된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중세 독일의 또다른 서사 시인 ‘루돌프 폰 엠스 (Rudolf von Ems, 1200?-1254?)’가 자신의 대표작 ‘선인 게어하르트 (Der guote Gerhart)’에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는 트리스탄의 작가로, 슈트라스부르크의 대표작 트리스탄은 나의 이 책 게어하르트에 큰 영향을 주었다’라고 밝히는 등 슈트라스부르크를 롤모델로 삼는데 큰 영향을 미친 소설이 바로 이 ‘트리스탄’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트리스탄’은 그 당시 작가,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후세의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까지도 중세 문학과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역시 1855년, 슈트라스부르크의 소설 ‘트리스탄’을 토대로 3막의 대본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857년에 대본을 완성하여 1859년까지 2년간 작곡을 하여 1859년 오페라를 완성하였는데, 이 오페라가 바로 4시간의 연주시간을 자랑하는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입니다.
이 작품은 1862년부터 2년간 70회가 넘는 리허설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올려질 수 없는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초연이 무산되고 말았는데, 이는 작곡 당시의 이 곡과 바그너의 사생활에 대한 스캔들 역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그너는 스위스의 부유한 상인의 부인이자 시인이었던 ‘마틸데 베젠동크 (Mathilde Wesendonck, 1828-1902)’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빚더미에서 자신을 구해준 상인의 부인과 간통을 한 것 뿐만 아니라 사랑의 편지가 자신의 부인 ‘크리스티네 민나 바그너 (Christine Wilhelmine ‘Minna’ Wagner, 1089-1866)’에게 들키며 22년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마틸데와도 결별을 하게 된 바그너는 마틸데와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계기로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죠.
1865년, 오페라가 작곡되고 무려 6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당시 바이에른의 국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의 지원으로 뮌헨에서 초연이 되었는데요. 이 초연을 지휘한 19세기 가장 위대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 (Hans Guido Freiherr von Buelow, 1830-1894)’ 역시 바그너와 트리스탄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1863년, 한스 폰 뷜로의 부인이자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리스트 (Franz Liszt, 1811-1886)’의 딸 ‘코지마 폰 뷜로 (Francesca Gaetana Cosima Liszt에서 결혼 후 Cosima von Buelow, 바그너와의 재혼 후에는 Cosima Wagner, 1837-1930)’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1865년 4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초연 2개월 전에 코지마는 바그너의 딸을 낳았습니다. 한스 폰 뷜로는 자신의 아내와 자신이 지휘해야하는 곡의 작곡가가 불륜도 모잘라 아이까지 낳았음에도 초연에 지휘를 하였습니다. 또 이혼 후 코지마와 바그너가 1870년 결혼을 하였음에도 한스 폰 뷜로는 평생 바그너를 존중하며 그를 지지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불륜 스캔들이 2번이나 생긴 오페라임에도 불구하고, 또 이 스캔들과도 연결되어지는 불륜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음악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슈트라스부르크의 운문 소설 ‘트리스탄’과 비슷하지만 결말이 완전히 달라지는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콘월의 마르케 국왕의 조카이자 기사 ‘트리스탄’은 아일랜드의 사령관인 모롤트를 결투 끝에 죽였으나 자신도 모롤트의 칼에 묻어있던 독 때문에 부상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트리스탄은 모롤트의 약혼녀이자 사촌동생이었던 치료사 ‘이졸데’에게 신분을 숨긴 채 치료를 받습니다. 트리스탄의 상처에서 모롤트 칼의 파편을 발견한 이졸데는 언젠가 복수를 하겠다 맹세를 하고칼을 겨누지만 둘은 사랑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트리스탄은 콘월 왕 마르케의 부인으로 뽑힌 이졸데를 수행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콘월을 향해 가던 항해 도중 트리스탄과 결혼이 아니라 마르케 왕과 결혼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거절로 독약을 먹으려 하고, 이를 알게 된 시종이 독약 대신 사랑의 묘약으로 바꿔치기 한 약을 트리스탄과 함께 나눠 먹게 됩니다. 마르케 왕의 궁전에서 결국 밀회 장면을 들키게 된 트리스탄과 이졸데, 트리스탄은 마르케 왕의 칼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되고 고향의 성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이졸데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사랑의 묘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허락과 용서를 위해 찾아온 마르케 왕 역시 트리스탄의 부하 쿠르베날의 칼에 목숨을 잃게되고 이졸데 역시 트리스탄의 시신을 껴안고 숨을 거두게 됩니다.
잘못된 사랑의 비참한 결말을 겪은 작곡가가 중세 시대 최고 작가 슈트라스부르크의 대표 문학 작품 ‘트리스탄’을 원작으로 쓴 비극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아온 전설을 아름다운 클래식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현재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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