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과 멸시를 받으며 하녀처럼 비참하게 살아가며 재투성이란 별명으로만 불리우던 여주인공이 착한 마녀의 도움으로 왕자가 배우자를 간택하는 무도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되고, 12시에는 풀려버리는 마법 때문에 신발 한짝만을 남겨둔 채 도망치듯 사라져버리지만, 결국 그 신발 덕분에 왕자와 재회하고 왕자비가 되는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구전 동화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콩쥐 팥쥐’가 있으며, 신데렐라와 비슷한 설화 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기원전 1세기 이집트의 ‘로도피스 (Rhodopis) 설화’에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스트라보 (Strabonis, 기원전 63/64년-기원후 24년)’가 집필한 17권의 ‘지리학 (Geographica)’라는 역사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 9세기 중국 당나라 시절의 구전 이야기를 묶은 책인 ‘유양잡조’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도 신데렐라와 동일한 이야기인 ‘예 시안 (Ye Xian)’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 17세기 이탈리아 시인인 ‘잠바티스타 바실레 (Ciambattista Basile, 1566-1632)’가 유럽 설화를 수집하여 정리한 ‘펜타메로네 (Pentamerone, 1634-1636)’에도 ‘체네렌톨라 (Cenerentola)’란 이름으로 이 신데렐라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천일야화’ 속 ‘판디트와 하리잔 여인’의 줄거리 역시 신발이 맞는 신부를 찾는 내용이 신데렐라와 동일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유치한 내용이라는 인식만을 가지고 있던 ‘동화’를 하나의 새로운 문학의 장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진 이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동화 작가 ‘샤를 페로 (Charles Perrault, 1628-1703)’는 ‘빨간 망토’,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장화 신은 고양이’, ‘푸른 수염’, ‘엄지 공주’와 같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대표적인 동화들을 쓴 작가입니다. 그는 빨간 망토,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신데렐라와 같이 오래 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설화들을 동화로 각색한것 뿐만 아니라 장화 신은 고양이, 푸른 수염과 같이 자신만의 동화를 그려내기도 하였습니다. 부르조아 귀족 가문 출신의 페로는 1687년 ‘근대 시인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인보다 뛰어나다’라는 시를 발표하여 30년간 프랑스 문학계에 논쟁을 일으키게 만든 ‘신구문학논쟁 (Quarrel des Anciens et des Modernes)’의 문을 연 인물이었습니다. 격동의 시절을 보낸 그는 노년에 이르러 아내 ‘마리 페로 (Maire Guichon-Perrault, 1653-1678)’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자신의 남은 아이들에게 헌신하고자 동화 집필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697년 샤를 페로는 ‘교훈이 담긴 옛날 이야기 또는 콩트 (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e, avec des moralites)’라는 동화 모음집을 발표하게 되었는데요. 원제보다 부제인 ‘어미 거위 이야기 (Contes de ma mere l’Oye)’로 더 유명한 이 모음집에는 당나귀 가죽, 푸른 수염, 장화신은 고양이 등 10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신데렐라’는 ‘상드리옹 또는 작은 유리신 (Cendrillon ou la petite pantoufle de verre)’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동화 작가 형제인 ‘그림 형제 (Jacob Grimm, 1785-1863 & Wilhelm Grimm, 1786-1859)’은 1812년,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를 독일어로 각색하여 ‘아셴푸텔 (Aschenputtel)’이란 이름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재투성이’란 각각의 언어로 번역되어진 이 ‘신데렐라’ 이야기는 디즈니 만화나 영화로도 큰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나 발레의 소재로도 자주 쓰이곤 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쥘 마스네 (Jule Emile Frederic Massenet, 1842-1912)’의 1899년 오페라 ‘상드리옹 (Cendrillon)’, 영국의 작곡가 ‘홀스트 (Gustav Theodore Holt, 1874-1934)’의 1902년 오페라 ‘신데렐라 (Cinderella)’, 러시아의 작곡가 ‘프로코피에프 (Sergei Sergeyevich Prokofiev, 1891-1953)’의 발레 ‘신데렐라 (Cinderella, Op.87)’ 등 많은 신데렐라와 관련된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의 1817년 오페라 ‘라 체네렌톨라’입니다.
베르디, 푸치니, 벨리니, 도니체티 등과 함께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명인 ‘로시니 (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는 1816년 자신의 대표작인 ‘세비야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iviglia)’, 1813년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L’Italiana in Algeri)’, 1818년 ‘이집트의 모세 (Mose in Eggito)’, 1819년 ‘호수의 여인 (La donna del lago)’ 등 40곡에 가까운 오페라를 작곡한 음악가입니다. 1829년 37세에 작곡한 ‘빌헬름 텔 (Guglielmo Tell)’을 마지막으로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숨을 거둘 때까지 더이상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은 로시니가 한창 오페라 작곡에 열중하고 있던 1817년,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극작가 ‘자코포 페레티 (Jacopo Ferretti, 1784-1852)’의 대본을 바탕으로 작곡한 2막 6장의 오페라가 바로 ‘라 체네렌톨라 (La Cenerentola)’입니다.
로시니가 세비야의 이발사의 대성공 후에 작곡한 ‘라 체네렌톨라’는 발표되던 당시에 이 작품은 세비야의 이발사만큼 큰 사랑을 받았으며, 현재까지도 북미 지방에서는 무대에 많이 올려지고 있는 오페라 작품이며 ‘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체네레 (Cenere)’에 ‘~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톨라 (Tola)’를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인 ‘재투성이’란 뜻의 ‘체네렌톨라’란 제목이 붙여졌습니다. 자코포 페레티는 샤를 페로의 동화를 바탕으로 내용을 변형시켜 대본을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마법이나 마술을 싫어하던 현실주의자였던 로시니의 의사가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원작에 등장하는 계모 대신 계부가 의붓딸인 체네렌톨라를 괴롭히고, 신데렐라를 돕는 요정이나 마술사 대신 왕자의 스승이자 철학자인 ‘알리도로’가 등장합니다. 또 유리구두 대신 팔찌를 통하여 왕자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인 체네렌톨라를 찾는 등 로시니의 오페라 ‘라 체네렌톨라’는 샤를 페로의 동화와의 여러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에서 ‘변장’은 가장 중요한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원작에도 등장한 체네렌톨라가 변장을 하여 무도회를 가는 것 뿐만 아니라, 철학자가 거지로 변장한 채 라 체네렌톨라를 처음 만나고, 또 그녀가 무도회를 가는 것을 돕게 되거나, 자신의 신분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시종과 옷을 바꿔입고 신부를 찾아나서는 왕자 등 극 중에서는 변장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의 39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변형되어 퍼져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구체화시켜
자신만의 동화로 완성시킨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 ‘상드리옹 또는 작은 유리신’, 그리고 샤를 페로의 동화를 토대로 새로운 내용의 오페라로 탄생시킨 로시니의 오페라 ‘라 체네렌톨라’는 서로 닮았지만 다른 이란성 쌍둥이처럼 각각의 매력을 뽐내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