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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 영화 이야기’, 그 세번째로 다뤄볼 영화는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카핑 베토벤 (Copying Beethoven)’ 입니다.
지금은 컴퓨터와 시벨리우스, 앙코르, 뮤즈스코어와 같은 악보 프로그램, 그리고 프린터 덕분에 쉽게 악보를 복사하거나 사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런 ‘첨단’ 시스템이 발전하기 전, 악보를 기록하고 사보를 쓰는 일은 인쇄의 역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는 미술과 문학도 동일한데요. 기원 전 4000년의 수메르 문명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카피스트 (Coypist)’, 필경사는 손으로 직접 원본을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베껴서 만들어간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직업이었습니다. 목판 활자 인쇄법, 나아가 금속활자의 탄생, 그리고 ‘구텐베르크 (Johannes Gutenberg, 1398-1468)’가 고안해낸 인쇄기의 탄생으로 15세기 이후에는 대량 인쇄가 가능하게 되며 점차 필경사의 입지는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19세기 타자기와 컴퓨터의 탄생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진 필경사. 악보 전문 필경사 역시 16세기 이탈리아의 출판업자 ‘오타비아노 페트루치 (Ottaviano Petrucci, 1466-1539)’가 악보를 위한 금속활자인쇄술을 개발해내었으며, 이러한 사보의 인쇄 기술 혁명은 악보와 음악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는데 일조를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쇄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에는 그 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전문 필경사들은 꽤 오랜 시간 악보, 시, 소설 등의 각각의 분야에서 그 역할을 해내었다고 합니다.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계약론, 에밀 등의 저서로 잘 알려져있는 ‘장 자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역시 필경사로 평생을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음악에서는 모차르트의 제자였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인 레퀴엠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프란츠 쥐스마이어 (Franz Xavier Suessmayr, 1766-1803)’나 리스트의 필경사 ‘아우구스트 콘라디 (August Conradi, 1821-1873)’는 각각 작곡가와 오르가니스트라는 본업이 있으면서도 악보 필경사로 겸업을 하였던 인물입니다. 또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안나 막달레나 바흐 (Anna Magdalena Bach-Wilcke, 1701-1760)’ 역시 소프라노였으나 바흐 작품들의 사보를 그리는 일을 도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악보 필경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오케스트라나 앙상블의 스코어를 보고 각 파트의 악보를 만들거나, 연주할 때 악보를 보기 편하게 마디나 줄을 정렬해서 쓰거나 하는 등 현재 컴퓨터의 악보 프로그램들이 하는 일을 수작업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토벤의 필경사는 원래 베토벤의 제자였던 작곡가 ‘페르디난트 리스 (Ferdinand Ries, 1784-1838)’로 알려져있습니다. 리스의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프란츠 안톤 리스 (Franz Anton Ries, 1755-1846)’로 베토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준 교사였습니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는 페르디난트 리스 대신 가상의 인물 ‘안나 홀츠’가 등장하여 베토벤의 악보 필경사가 되며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1993년 영화 ‘비밀의 화원’, ‘스푸어’ 등의 영화를 통하여 사실주의와 여성주의를 그리는 여성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는 폴란드 태생의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Agnieszka Holland, 1948-)’가 메가폰을 잡은 ‘카핑 베토벤’에서 베토벤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영화 트루먼쇼, 설국열차, 뷰티풀 마인드, 더 록 등 수많은 영화에서 매력적인 인상을 남긴 미국의 배우 ‘에드 해리스 (Edward Allen ‘Ed’ Harris, 1950-)’가 맡고 있습니다. 또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 배우였으며 현재는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트로이, 내셔널 트레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언노운 등으로 헐리우드에서도 그 입지를 굳힌 ‘디아네 크루거 (Diane Kruger, 1976-)’가 베토벤의 필경사 안나 홀츠 역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직전에 다뤘던 ‘베토벤이 위층에 살아요’의 배경이 되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는 시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위층에 살아요’가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초연을 하는 시기까지를 그렸다면, ‘카핑 베토벤’은 합창 교향곡이 완성된 후부터 초연을 하고 베토벤이 죽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합창 교향곡의 초연을 앞둔 베토벤은 자신의 악보를 연주를 할 수 있는 각 파트와 지휘자를 위한 악보로 카피해줄 필경사를 찾고 있습니다. 귀가 거의 들리지 않은 이유로 혼자만의 세계에서 괴랄한 성격을 표출하던 베토벤는 비엔나 음대의 유능한 작곡가였던 ‘안나 홀츠’를 소개받았으나, 당시에는 매우 드물었던 여성 음악가 안나 홀츠가 탐탁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이 실수로 잘못 써놓은 음까지 고쳐 넣어둔 악보를 보고 그녀를 인정하고 점점 둘은 음악적인 교감을 나눠가기 시작합니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6번, 9번 ‘라주모프스키’, 14, 15, 16번, 바이올린 소나타 7번, 피아노 소나타 5번, 32번, 현악 사중주 대푸가, 피아노 협주곡 4번, 디아밸리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교향곡 7번 등 수많은 베토벤의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합창 교향곡’ 역시 영화 속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위층에 살아요’에서 합창 교향곡의 지휘를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과 함께 했던 인물이 크리스토프의 외삼촌 쿠르트였다면, ‘카핑 베토벤’에서는 안나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이렇듯 실존하는 인물들을 대신하여 가상의 인물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조금씩 변형되어 있는 것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할텐데요. 다음 시간에는 ‘카핑 베토벤’ 베토벤을 죽음으로 몰고간 작품으로 등장하는 현악사중주 ‘대푸가’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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