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46. 푸쉬킨의 대서사시 '황금 수탉',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금계'
우리에게는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Should this life sometimes deceive you, 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로 잘 알려져있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이자 시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Alexander Sergejewitsch Pushkin,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1799-1837)’은 러시아 5인조 중 한명인 작곡가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림스키 코르사코프 (Nikolai Andreyevich Rimsky-Korsakov, 1844-1908)’와 가치관과 인생이 많이 닮아있습니다.
푸쉬킨의 어머니는 러시아 제국의 황제 표트르 대제가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 출신의 흑인 장군 ‘하니발 장군 (Ibrahim Petrovich Gannibal, 1696-1781)’의 손녀였습니다. 지중해의 피가 흐르는 검은 피부와 곱슬 머리를 지녔던 푸쉬킨은 다른 이들과 다름에 대하여 자랑스러워 하던 소년이었으며, 영특함을 자랑하며 10세에 이미 프랑스어로 시를 쓰고, 귀족 가문의 영재들을 위한 엘리트 학교에서 6년간 수학하였습니다.
20세의 청년이 된 푸쉬킨은 러시아 왕정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체제를 반대하거나 풍자하는 시와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831년 소설 ‘벨킨 이야기 (The Tales of the late Ivan Petrovich Belkin, По́вести поко́йного Ива́на Петро́вича Бе́лкина)’, 1834년 단편 소설 ‘스페이드 여왕 (The Queen of Spades, Пиковая дама)’, 1836년 소설 ‘대위의 딸 (Captain’s Daughter, Капитанская дочка)’, 1820년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 (Ruslan and Ludmila, Русла́нъ и Людми́ла)’, 1831년 발표된 ‘예브게니 오네긴 (Eugene Onegin, Евгений Онегин)’ 등 푸쉬킨의 작품들은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줘 교향시, 오페라 등으로 완성되었는데, 그 중 푸쉬킨의 러시아 황제와 체제에 대한 풍자가 가장 신랄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푸쉬키이 1834년에 완성하여 1835년에 잡지 ‘독서를 위한 도서관 (Biblioteka dlya Chteniya)’에 연재한 서사시 ‘황금 수탉/황금 닭의 동화 (The Tale of the Golden Cockerel, Сказка о золотом петушке)’입니다.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쿠이, 발라키레프와 함께 ‘러시아 5인조’의 한명이었던 림스키 코르사코프 역시 귀족 집안 출신이었으나 러시아의 체제에 반감을 샀던 음악가였습니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으나 높은 신분의 부모님의 뜻을 따라 해군 학교를 들어가 러시아 해군에 입대하였던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발라키레프에게서 음악의 기초와 작곡을 배워 러시아인 최초로 교향곡을 작곡하여 발표하였습니다. 무소르그스키와 보로딘이 사망한 후 그들의 작품들을 정리하고 출판하거나 편곡하기도 하였던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1871년, 27세의 나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작곡 교수가 되어 글라주노프,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을 가르쳤습니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교수로, 또 화성학과 관현악법에 대한 이론서를 쓰는 음악학자로 살아가던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러시아 왕정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된 사건은 1905년에 일어납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불평등한 삶을 살아가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와 당시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의 초상, 그리고 성모마리아 상이나 초상같은 성상을 손에 쥐고 비폭력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황제 뒤에서 비선실세로 권력을 휘두르던 라스푸틴은 경찰과 군인들에게 명령을 내려 수백명의 사람들을 죽이고 수천명의 부상자를 내며 유혈 진압을 가했습니다. 후에 러시아 혁명의 시초가 된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은 러시아의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렸으며, 수많은 학생들은 니콜라이 2세 황제와 라스푸틴, 그리고 정부를 비판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를 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학생들도 이에 동참하였으며,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해 보내진 군대를 막고 학생들과 학교를 보호하였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교수직에서도 해직당하고 러시아 내에서 자신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도 금지되었던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러시아 왕정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료 교수들의 탄원으로 인하여 다시 복직하게 된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3년간 전념하여 하나의 오페라를 완성하게 되는데, 이 작품이 바로 푸쉬킨의 서사시 ‘황금닭’을 토대로 완성한 3막의 오페라 ‘금계/황금 수탉 (The Golden Cockerel. Золотой Петушок)'입니다.
국경을 공격하는 적들을 진압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는 무능한 늙은 왕 ‘도돈 황제 (Tsar Dodon)’의 앞에 점성술사가 나타나 위협이 나타날 때마다 우는 마법의 힘이 깃든 황금닭을 도돈 황제에게 바칩니다. 기뻐하는 황제에게 점성술사는 황금닭이 도움이 되었다면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들어달라는 조건을 달았으며 황제는 그 소원을 꼭 들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황금 닭의 울음 소리를 들은 황제는 자신의 두 아들을 출정시킵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도돈 황제의 군대는 크게 패하고 맙니다. 황금 닭이 두번째로 울자, 황제는 자신이 직접 남은 병사들과 함께 출정을 합니다. 전쟁터에서 두 왕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 도돈 황제는 왕자들이 ‘셰마하 여왕 (Tsaritsa of Shemakha)’을 차지하려 서로 결투를 벌이다 죽은 것을 알고 분노해 공격을 명령하지만 젊고 아름다운 매력적인 여왕의 모습에 한눈에 반해버려 모든 것을 잊고 그녀에게 청혼합니다.
도돈 황제와 셰마하 여왕의 결혼식장에 나타난 점성술사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 황제에게 요구합니다. 황제는 원하는 것을 말하라 이야기하고 점성술사는 ‘셰마하 여왕’이라 대답합니다. 분노한 황제는 점성술사를 죽여버리고 황금 닭이 갑자기 황제를 공격하여 부리로 황제의 머리를 쪼아 죽여버립니다. 셰마하 여왕의 비웃음 소리와 함께 막이 내립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테너인 점성술사가 등장하여 이 동화를 통하여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자신과 셰마하 여왕을 제외한 나머지를 믿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라는 이야기를 아리아로 들려주는 이 오페라는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작곡한 15개의 오페라 중 가장 마지막에 작곡된 오페라로, 오페라 ‘술탄 황제 이야기 (The Tale of Tsar Saltan)’의 대본을 맡았던 ‘블라디미르 이바노비치 벨스키 (Wladimir Iwanowitsch Belski, 1866-1946)’가 각본을 썼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검열로 인하여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오페라 ‘금계’가 무대에 올려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사망하고 1년이 지난 1909년에야 초연이 되었습니다.
‘황금 수탉 (Le Coq d’Or)’이란 제목의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1941년 파리 무대에 올라 큰 성공을 거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금계’, 현재는 대부분 러시아어로 무대에 올려지고 있습니다. 셰마하 여왕이 도돈 왕자를 유혹할 때 부르는 ‘태양의 찬가 (Hymn to the sun, Ответь мне, зоркое светило)’가 특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금계는 그림 동화로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는 푸쉬킨의 ‘황금 수탉’과 함께 현재까지도 그들의 정신을 잘 반영한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