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야’와 같은 문학 작품으로 러시아 문학의 최고봉에 서있는 ‘도스토예프스키 (Fyodor Mikhailoovich Dostoevsky, 1821-1881)’가 ‘예술 작품으로서 이 작품은 완전무결하며, 유럽의 현대 문학 중에 이 소설에 견줄만한 소설은 없다’라는 극찬을 남긴 소설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도입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레프 톨스토이 백작 (Lev Nicolayevich Tolstoy, 1828-1910)’은 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품을 쓰며 셰익스피어, 괴테 등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명으로 손꼽히고 있는 러시아의 작가입니다. 그는 백작 가문에서 태어나서 법학대학교를 다니다 중퇴하였으며, 1848년 자신의 영지를 떠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전전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 1862년, 34세의 나이에 자신보다 16세 어린 ‘소피아 베르스 (Sophia Andreyevna Tolstaya Behrs, 1844-1919)’와 결혼하였습니다. 소피아는 독일 출신의 내과 의사이자 톨스토이의 친구였던 ‘안드레이 베어 (Andrey Evstafievich Behrs, 1808-1868)’의 딸이었으며, 톨스토이와 소피아는 48년간의 결혼 생활을 함께 하며 13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소피아와의 관계는 톨스토이가 작가로서 성장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합니다. 톨스토이의 3대 장편 소설 ‘전쟁과 평화 (1869)’, ‘안나 카레니나 (1877)’, 그리고 부활 (1899)를 비롯하여 ‘참회록 (1880)’, ‘인생론 (1887)’, ‘예술이란 무엇인가 (1898)과 같은 철학서와 에세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86)’, ‘크로이처 소나타 (1890)’과 같은 소설들이 모두 소피아와의 결혼 이후에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1877년에 쓰여진 장편 소설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는 톨스토이가 1875년에 펜을 들어 2년간의 집필 작업 끝에 탄생시킨 문학 작품으로 그저 단순한 귀족 여성의 불륜 이야기를 뛰어넘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대담하기 그지없는 주제에 당시 러시아의 계급 사회와 도덕,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섬세한 묘사와 생동감 넘치는 각각의 인물 표현을 통하여 심도깊게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1870년대 5월의 어느날, 러시아 모스크바의 기차역에서 한 여인이 기차에 몸을 던지는 장면으로 시작되며 줄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중심에 있는 아름답고도 발랄한 ‘안나 카레니나’는 20세에 가까운 나이 차이가 나는 고위 각료 ‘카레닌’의 부인이자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귀족 부인입니다. 화려하지만 공허한 인생을 살아가던 안나는 어느 날, 바람을 피워서 결혼 생활에 위기를 처한 오빠 ‘스티바 (스테판 오블론스키)’와 부인 ‘돌리 (돌리니카)’ 가정을 지키는데 돕기 위하여 오빠 부부가 있는 모스크바로 떠나게 됩니다. 모스크바에서 우연히 젊고 매력적인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에 빠진 안나는 그의 치명적인 매력에서 도망치기 위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지만, 브론스키는 안나를 찾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따라오게 됩니다.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사랑에 빠지기 전 돌리의 여동생인 ‘키티 (카테리나)’에게 작업을 걸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브론스키와 달리 수수하며 내면을 중시하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고 브론스키의 유혹에 마음을 열었던 키티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에 큰 충격을 받게 되지만, 결국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청혼한 레빈의 사랑을 받아들여 남은 생을 행복한 부부의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한편, 오랜 시간 브론스키의 불같은 사랑을 거부하던 안나는 결국 브론스키와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게 되고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결국 안나는 남편 카레닌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이혼을 요구하지만 카레닌은 이를 거부합니다. 결국 딸을 낳은 후 산욕열에 의하여 사경을 헤매는 안나를 측은하게 여긴 카레닌이 그녀를 용서하고 묵인하는 상황에서 안나는 회복을 위하여 딸과 브론스키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었으나, 결국은 러시아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 때 러시아 사교계의 꽃이었던 안나는 사교계에서 배척당하고 고립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안나는 점점 브론스키에게 집착을 하게 되고, 사실 이 모든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던 브론스키는 결국 안나에게서 마음이 떠나버립니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와 처음 마주쳤던 기차역에 몸을 던져 세상을 져버리고, 카레닌은 안나의 딸을 키우고 브론스키는 실의에 휩싸여 군에 복귀하여 전쟁터로 향합니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에 자신을 투영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은 ‘나의 생활 전체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과 상관없이, 매 순간순간이 이전처럼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1911년 러시아에서 영화화를 한 것에서 시작하여 1947년 비비안 리, 1997년 소피 마르소, 2012년 키이라 나이틀리까지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안나 카레니나 역을 맡으며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연극과 뮤지컬로도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또 ‘야나체크 (Leos Janacek, 1854-1928)’. ‘이지노 로비아니 (Igino Robbiani, 1884-1966)’. ‘이아인 해밀튼 (Iain Hamilton, 1922-2000)’과 같은 수없이 많은 오페라 작곡가들이 이 작품을 오페라로 시도하였습니다. 또 2014년 스위스 취리히 발레단의 ‘크리스티안 슈푹 (Christian Spuck)’이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와 ‘’루토슬라브스키 (Witold Roman Lutoslawski, 1913-1994)’의 곡들로 새롭게 구성한 발레 ‘안나 카레니나’는 2017년 국립 발레단이 아시아 초연으로 한국 무대에 선보이며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그 중 헝가리의 작곡가 ‘후바이 (Jeno Hubay, 1858-1937)’의 오페라 ‘카레니나 안나 (Karenina-Anna)’와 미국의 작곡가 ‘데이빗 칼슨 (David Carlson, 1952)’의 오페라 ‘안나 카레니나’는 그 작품성을 크게 평가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부다페스트 음악원의 교수를 역임하였던 후바이는 헝가리의 민족적 특색이 가득한 4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하여 수많은 바이올린 소품들과 앙상블 작품, 가곡들을 작곡한 음악가입니다. 뿐만 아니라 후바이는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제작자 (A cremonai hegedus)’, ‘방랑자의 마을 (A falu rossza)’, ‘가면 (Az alarc)’ 등 8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그 중 1914년에 작곡된 3막의 오페라가 바로 ‘카레니나 안나’입니다.
후바이의 오페라 ‘카레니나 안나’는 프랑스의 극작가 ‘에드몽 귀로 (Edmond Guiraud, 1879-1961)’가 1907년에 각색한 극본을 바탕으로 작곡, 1932년에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입니다. 기존의 헝가리 민족 음악적인 특징 외에 후바이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멘델스존, 브람스를 잇는 낭만 음악의 특징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이 오페라는 바이올린의 애수 깊은 소리가 연상되는 아름다운 아리아들과 극적인 장면들이 안나 카레니나의 심리 변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그리고 있는 오페라가 있는데, 바로 미국의 작곡가 ‘데이빗 칼슨 (David Carlson, 1952-)’가 오페라 감독이자 극작가인 ‘콜린 그레이엄 (Colin Graham, 1931-2007)’의 대본에 작곡을 한 2막의 오페라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원래 콜린 그레이엄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A streetcar named desire, 1951)’,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 (Postman always rings twice, 1981)’와 같은 영화의 오페라 제작을 위하여 대본을 쓰거나 감독을 맡으며 55편의 오페라의 세계 초연을 감독한 사람입니다. 그레이엄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오페라 대본을 완성한 후에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 (Edward Benjamin Britten, 1913-1976)’에게 작곡을 부탁하였습니다. 당시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으로부터 안나 카레니나의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았던 벤자민 브리튼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 모든 것을 철회하는 바람에 그레이엄은 미국의 신진 음악가 데이빗 칼슨과 함께 플로리다 그랜드 오페라가 플로리다 ‘지프 발레 오페라 하우스 (Ziff Ballet Opera House)’의 개관 기념 작품으로 ‘안나 카레니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2007년 4월의 초연을
위하여 무대 감독을 맡고 있었던 그레이엄은 초연이 올려지기 1주일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데이빗 칼슨의
오페라 ‘안나 카레니나’의 무대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데이빗 칼슨은
초연 후에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였으며, 격정적인 프롤로그와 시종일관 휘몰아치는 목관 악기와 금관 악기들을
통하여 안나의 심리적인 불안 상태를 그리고 있습니다. 또 중간 중간,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아름다운 현의 멜로디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이빗 칼슨의 ‘안나
카레니나’는 후바이의 오페라 ‘카레니나 안나’와는 또다른 관점에서 톨스토이의 위대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해석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기는 오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