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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리뷰]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리뷰 2020년 9월호 - 김지연의 추리소설 '모차르트 살인',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by zoiworld 202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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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48. 김지연의 추리소설 '모차르트 살인',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쉽게 읽는 클래식 도서 내가 부르는 노래를 그대가 들을 수만 있다면 (2000), 남쪽여자 북쪽남자 (2010)와 같은 책을 출간한 김지연은 한양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성악가 출신의 착가입니다. 그녀가 2008년 출판한 추리 소설 모차르트 살인20094The Mozart Murdes란 제목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80년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큰 인기를 누리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미모의 하이틴 스타 장숙진이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장숙진이 살해된 그녀의 집 식탁에는 붉은 립스틱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 KV.492)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아리아 ~ 모두 행복해 (Ah, Tutti Contenti)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서초 경찰서 형사과 과학수사팀의 민노준 형사는 서초 경찰서 수사과 지능범죄 수사팀에 소속된 안서욱 형사와 함께 사건을 맡게 됩니다. 경찰서 내에서 모차르트 귀신이라는 별명으로 소문난 모차르트 덕후 안 형사는 장숙진이 시체로 발견된 당시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집에서 울렸다는 이웃의 증언 덕분에 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민 형사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신과 아버지를 버렸다는 깊은 상처를 지닌 채 조용하고 냉철한 형사로만 보여지는 민 형사와 함께 장숙진 살인 사건의 수사를 시작합니다.

유력한 용의자로 장숙진의 두번째 전남편 사업가 마동구를 수사해 나가던 중 마동구가 호텔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한 두 형사는 호텔 방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돈 지오반니 (Don Giovanni, KV.527)1막에 등장하는 아리아 때려줘요, 때려줘요, 오 사랑하는 마제토 (Batti, Batti, O bel MAsetto)가 흐르는 것을 듣게 됩니다. 2명을 살인한 사람은 장숙진의 첫번째 남편이었던 나이트 클럽 사장 현정승인걸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이 있는 것일까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Die Zauberfloete, KV. 620), 돈 지오반니 속 아리아, 피아노 소나타 11 (Piano Sonata No.11 in A Major, KV. 331), 피아노 협주곡 24 (Piano Concerto No.24 in c minor, KV.491), 교향곡 25 (Symphony No.25 in g minor, KV.183), 40 (Symphony No.40 in g minor, KV.550), 현악5중주 3 (String Quintet No.3 in C Major, KV.515), 작은별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12 Variations on Ah, vous dirai-je, Maman) 등 모차르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소재로 쓰여진 김지연의 대표작 모차르트 살인의 시작은 독특하게도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생상스의 작품으로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피아니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 지휘자였던 카미유 생상스 (Charles Camille Saint-Saens, 1835-1921)14곡으로 이뤄진 관현악곡 동물의 사육제 (Le Carnaval des animaux-Grande fantaisie zoologique), 교향시로 시작하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비르투오소 작품으로 편곡된 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 in g minor, Op. 40),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Introduction et Rondo capriccioso in b minor, Op. 28), 첼로 협주곡 (Cello Concerto No.1 in a minor, Op. 33), 바이올린 협주곡 3(Violin Concerto No.3 in b minor, Op. 61) 등 수많은 명곡들을 작곡한 작곡가였습니다.

1883년에 초연된 헨리 8 (Henry VIII)를 비롯하여 5막의 그랜드 오페라 아스카니오 (Ascanio, 1890), 단막 오페라 엘레네 (Helene, 1904), 은방울 (Le timbre dargent, 1877) 13개의 오페라를 작곡한 생상스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작품이자 김지연의 소설 모차르트 살인에 등장하는 오페라가 바로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의 몰락을 그리고 있는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Samson et Dalila, Op. 47)입니다.

 

태양과 동일하다는 뜻의 이름을 지닌 이스라엘의 판관이자 영웅 삼손필리스티아 (Philistines, 블레셋으로도 불리는 고대 가나안 지방의 민족 집단)의 여성 데릴라와 사랑에 빠집니다. 삼손의 엄청난 힘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알아내면 큰 돈을 주겠다는 필리스티아 제후들의 말에 매수 당한 데릴라는 삼손에게 계속 힘의 원천이 어딘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세번이나 거짓으로 대답하였던 삼손, 하지만 매일같이 조르는 데릴라에게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 (Nazarite)이기 때문에 머리털을 자르면 힘이 빠져나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해진다라는 자신의 비밀을 밝힙니다. 결국 비밀을 알아낸 데릴라는 삼손이 잠든 사이 필리스티아 병사들을 집으로 들이고, 병사들에 의하여 삼손은 머리카락을 잘리고 힘을 잃은 채 끌려갑니다.

 

팜므파탈 (Femme Fatale), 즉 치명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여성의 대명사가 된 악녀 데릴라로 인하여 결국 눈을 찔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삼손이라는 영웅을 그린 이야기 삼손과 데릴라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본가 페르디낭 르메르 (Ferdinand Lemaire, 1832-1879)의 손에서 프랑스어 대본으로 재탄생합니다. 생상스는 르메르의 대본을 토대로 3막의 그랜드 오페라로 완성하였으며, 1877년 초연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김지연의 추리 소설 모차르트 살인에서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라이트모티프 (Leitmotiv)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라이트모티프는 오페라, 교향시나 표제 음악 등에 중간 중간 반복적으로 들어가 주인공이나 사물, 인물들의 특별한 감정 등을 표현해주는 짧은 주제나 동기를 뜻하는 말입니다.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는 소설 모차르트 살인에서 라이트모티프란 이름이 붙여진 챕터는 5번 등장합니다. 5개의 라이트모티프 중 삼손과 데릴라는 첫 3개의 라이트모티프에 등장합니다.

이 소설의 처음이자 첫번째 라이트모티프 삼손과 데릴라 1의 시작은 삼손이 데릴라를 사랑했을까?라는 여자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소설 속 첫번째 피해자인 여배우 장숙진으로 추정되는 여자와 남자는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속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Mon Coeur souvre a ta voix)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첫번째 라이트모티프와 사랑을 나누는 두번째 라이트모티프 삼손과 데릴라 2에 등장하며 남자가 누구일지 궁금증을 지어내게 합니다. 세번째 라이트모티프 데릴라의 고백에서 장숙진은 자신의 과거사를 독백으로 풀어냅니다.

 

소설 모차르트 살인에서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는 장숙진과 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악녀가 되어야 했던 장숙진은 자신을 데릴라와 같은 운명인 것으로 생각하며 그를 배신하였으나 다시 그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하며 에게 살해당하는 순간까지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를 읊조립니다.

 

Mon Coeur souvre a ta voix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Mon cœur s'ouvre à ta voix

Comme s'ouvre les fleurs, Aux baisers de l'aurore!

Mais, ô mon bien-aimé,

Pour mieux sécher mes pleurs, Que ta voix parle encore!

 

그대 음성에 내 마음이 열립니다.

아침의 입맞춤에 눈뜨는 꽃처럼

그러나, , 사랑하는 이여,

이제 다시 눈물짓지 않도록 다정한 그대의 말과 진심어린 맹세를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