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49. 가곡의 교과서 독일 시인 하이네의 ‘노래의 책’ – 17.보로딘의 '아름다운 어부의 딸이여', '내 노래에 독이 섞여 있구나'
독일의 대문호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 1797~1856)’의 ‘노래의 책 (Buch der Lieder)’ 속의 시들을 토대로 작곡된 많은 작품들 중 열일곱번째로 다뤄볼 작품은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포르피리예비치 보로딘 (Alexander Porfiryevich Borodin, 1833-1887)’의 가곡 ‘아름다운 어부의 딸이여 (Красавица рыбачка)’입니다.
보로딘은 작곡가 ‘발라키레프 (M. Balakirev, 1837-1910)’와 평론가 ‘스타소프 (V. Stasov, 1824-1906)’가 주축이 된 러시아의 5인조 국민악파 작곡가 그룹 ‘러시아 5인조 (Могучая Кучка, 힘센 무리)’의 멤버 중 한명이었던 작곡가이자 화학자였습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족의 왕족 ‘게디아노프 (Luka Stepanovich ‘Gedianov’ Gedevanisvilli, 1772-1840)’의 사생아로 태어난 보로딘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였던 홍길동처럼 자신의 성을 ‘게데바니슈빌리’가 아닌 아버지의 농노 ‘포르필리 보로딘 (Porfily Borodin)’의 성을 받아야 했습니다.
성은 받지 못하였으나 젊고 아름다웠던 보로딘의 어머니 ‘안토노바 (Evdokia Konstantinovna Antonova)’를 사랑했던 아버지 게디아노프 덕분에 물질적인 어려움없이 자랐던 보로딘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나 첼로와 같은 악기를 접할 수 있었으며 9세에 스스로 작곡을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그저 아마추어의 수준이었으며, 의학, 자연과학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보로딘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졸업 후 의학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보로딘은 1863년 발라키레프에게서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며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인 ‘림스키 코르사코프 (N. Rimsky-Korsakov, 1844-1908)’, ‘무소르그스키 (M. Mussorgsky, 1839-1881)’, ‘세자르 쿠이 (Cesar Cui, 1835-1918)’와도 교류를 맺게 되었습니다.
1869년 발라키레프의 지휘로 자신의 첫번째 교향곡의 초연을 올렸던 보로딘은 자신을 ‘일요일의 작곡가’라고 표현했을 만큼 화학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남겨진 작품이 많지 않습니다. 또 그가 1869년에 작곡에 들어갔던 오페라 ‘이고리 왕자 (Prince Igor)’는 18년간 완성이 되지 못하고 결국 보로딘의 미완성 유작으로 남겨졌는데, 이 작품은 림스키코르사코프와 글라주노프에 의하여 완성되어 초연되었습니다.
‘이고르 왕자’ 중 2막에 등장하는 ‘폴로베츠인의 춤과 합창 (Polovtsian Dances)’을 비롯하여 교향시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 (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 현악사중주 1번과 2번, 발레 오페라 ‘믈라다 (Mlada)’ 등 4개의 오페라, 피아노를 위한 작은 모음곡 등의 작품을 남긴 보로딘은 1854년, 1868년, 그리고 1870년에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에 수록된 시들을 토대로 가곡을 작곡하였습니다.
무소르그스키도 가곡으로 썼던 하이네의 노래의 책 중 연작시 ‘서정적 간주곡 (Lyrische Intermezzo’의 두번째 시 ‘나의 눈물로부터 (Aus meinen Traenen)’를 자신만의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 시킨 1870년 작 ‘나의 눈물로부터 (Из слез моих)’와 함께 보로딘이 선택한 하이네의 시가 바로 1854년 작곡된 ‘아름다운 어부의 딸이여’와 1868년에 작곡된 ‘내 노래에 독이 섞여있구나’입니다.
Du schoenes Fischermaedchen
Du schoenes Fischermaedchen.
Treibe den Kahn an’s Land.
Komm zu mir und setze dich nieder,
Wir kosen Hand in Hand.
Leg’ an mein Herz dein Koepfchen.
Und fuerchte dich nicht zu sehr,
Vertrau’st du dich doch sorglos
Taeglich dem wilden Meer.
Mein Herz gleicht ganz dem Meere,
Hat Sturm un Ebb’ un Fluth,
Und manche schoene Perle
In seiner Tiefe ruht.
아름다운 어부의 딸이여
아름다운 어부의 딸이여
작은 배 저어 물가에 대고
내 곁으로 와 내 곁에 앉아
우리 서로의 손을 맞잡고 쓰다듬자.
네 머리를 내 가슴에 누이고
그리고 너무 두려워하지마.
넌 두려움 하나 없이
매일같이 거친 바다에 몸을 맡기고 있잖아.
내 마음은 바다와 똑같단다.
폭풍과 밀물, 그리고 썰물이 있지.
그리고 그 깊은 심연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진주들이 숨어져 있어.
Vergiftet sind meine Lieder
Vergiftet sind meine Lieder
Wie koennt’ e sanders sein?
Du hast mir ja Gift gegossen.
In’s bluehende Leben hinein.
Vergiftet sind meine Lieder
Wie koennt’ e sanders sein?
Ich trage im Herzen viel Schlangen.
Und dich, Geliebte mein.
내 노래에 독이 섞여 있구나.
내 노래에 독이 섞여 있구나.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피어나는 나의 삶에
당신이 독을 부어 넣었으니..
내 노래에 독이 섞여 있구나.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내 가슴 속에 수많은 뱀들과
그리고 그대, 나의 사랑을 안고 있으니.
러시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역사가였던 ‘크로포트킨 (Peter Alekseyevicg Kropotkin, 1842-1921)’는 하이네가 1824년 발표한 노래의 책의 세번째 연작시 ‘귀향 (Heimkehr)’의 8번째 시 ‘아름다운 어부의 딸이여 (Du schoenes Fischermaedchen)’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로딘은 1854년 크로포트킨이 번역한 시를 가사로 가곡 ‘사랑스러운 어부의 딸이여! (Красавица рыбачка!)’를 완성하였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어부의 딸이여!’는 성악과 첼로, 그리고 피아노를 위하여 작곡되었으며, 매우 밝으면서도 첼로와 함께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시인 ‘레프 메이 (Lev Aleksandrovich Mei, 1822-1862)’가 하이네의 노래의 책 중 두번째 연작시 ‘서정적 간주곡’의 51번째 시 ‘내 노래에 독이 섞여 있구나 (Vergiftet sind meine Lieder)’를 러시아 어로 번역하였으며, 보로딘은 레프 메이가 번역한 이 시에 곡을 붙여 1868년 ‘나의 사랑은 독으로 가득 차있네 (Отравой полны мои песни)’를 발표합니다. 강렬한 피아노의 저음 화음으로 무겁게 시작하는 이 곡은 사랑스러운 어부의 딸이여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품고 있는 매우 열정적이면서도 비장함이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벌써 17번째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하이네의 ‘노래의 책’을 소재로 작곡된 수많은 작곡가들의 다양한 작품들, 20부작으로 완결을 지을 예정인 하이네의 가곡의 교과서 ‘노래의 책’의 시들을 가사로 한 다른 가곡들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쏘냥의 클래식 칼럼 > 리뷰 [책 속의 클래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 2020년 12월호 - 박혜원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 프란시스 플랑 <검은 성모를 위한 찬가> (0) | 2020.12.14 |
---|---|
리뷰 2020년 11월호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 디아벨리의 7개의 피아노 소나티네 (0) | 2020.12.14 |
리뷰 2020년 9월호 - 김지연의 추리소설 '모차르트 살인',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0) | 2020.12.14 |
리뷰 2020년 8월호 - 가곡의 교과서 독일 시인 하이네의 '노래의 책', 무소르그스키의 '염원', '내 눈물로부터' (0) | 2020.12.14 |
리뷰 2020년 7월호 - 푸쉬킨의 대서사시 '황금 수탉',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금계' (0) | 2020.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