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50.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 디아벨리의 7개의 피아노 소나티네
2007년 우리나라에 개봉한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세계적인 독일 감독 ‘톰 티크페어 (Tom Tykwer, 1965-)’의 충격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연출로 큰 흥행을 끈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985년에 발간된 동명의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Das Parfum-Die Geschichte eines Moerders)’을 영화화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3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적인 히트를 친 소설을 쓴 작가가 바로 독일의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Patricj Suesskind, 1949-)’입니다.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의 5번째 글에서 다룬 적 있는 모노 드라마 ‘콘트라베이스 (Der Kontrabass)’를 1984년에 발표하며 성공적으로 등단한 쥐스킨트는 이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통하여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으며 1994년 작 ‘깊이에의 강요 (Drei Geschichten und eine Betrachtung)’와 ‘비둘기 (Die Taube)’를 비롯하여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Rossini oder die moerderische Frage, wer mit wem schlief, 2002)’, ‘사랑의 추구와 발견 (Vom Suchen und Finden der Liebe, 2006)’, ‘사랑을 생각하다 (Ueber Liebe und Tod, 2006)’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사람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모든 문학상의 수상을 거부하고 인터뷰를 거절하는 독특한 인물로만 알려져 있으며 2006년 ‘사랑을 생각하다’ 이후 그 어떤 작품 활동도 하지 않고 있기에 많은 팬들이 그의 새로운 작품 소식을 오매불망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제외하고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1991년에 발표된 소설 ‘좀머 씨 이야기 (Die Geschichte des Herrn Sommer)’일 것입니다.
‘좀머 씨 이야기’는 나무 타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소년 ‘나’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입니다.
어린 시절 마을에 살고 있던 ‘좀머 아저씨’의 직업이나 속사정은 마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일년 내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이 마을과 저 마을을 걸어다니는 좀머 아저씨의 이유나 목적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날씨가 매우 궂은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좀머 아저씨’를 마주친 나는 아버지가 차를 태워준다고 해도 무시하는 좀머 아저씨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특히 아버지가 “그러다가 죽겠어요!”라고 외쳤을 때 분명하게 들려온 좀머 아저씨의 “그러니 나를 좀 제발 내버려 두시오!”란 대답이.
이 이후로는 좀머 아저씨에 대한 각종 추측에도 나는 내가 나무를 타는 것을 좋아하듯 좀머 아저씨는 그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1년의 시간이 흘러, 나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루이제 풍켈’ 선생님에게서 모욕적인 일을 당하고 자살을 결심한 나는 우연히 좀머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고, 자살을 포기하게 됩니다. 또 5-6년의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5학년에 올라간 나는 좀머 아저씨가 호수 안으로 들어가 자살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됩니다.
2주 정도 지난 후에야 마을 사람들은 좀머 씨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고, 실종 신고를 내고 그에 대한 각종 추측들을 쏟아내었지만, 나는 침묵합니다. 좀머 씨의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란 단호한 그의 말과 물 속에 가라앉던 좀머 씨의 모습 때문에..
조금은 기괴한 이웃의 모습을 목격한 소년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그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읽은 많은 독자들은 소설 속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피아노 수업 시간에 연습을 잘 해오지 않고 지각까지 한 ‘나’에게 코딱지로 보복을 가한 풍켈 선생님의 엽기적인 장면으로 꼽을 것입니다. 이 때 풍켈 선생님이 ‘나’와 함께 연탄으로 연주했던 곡이 바로 디아벨리의 소나티나입니다.
안톤 디아벨리는 좋은 작곡가였다. 그는 끔찍한 헤슬러처럼 푸가 형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디아벨리의 곡은 치기가 아주 쉬웠다. 그의 곡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멋들어진 소리를 연출해 냈다. 비록 누나가 ‘아무리 피아노를 못 치는 사람이라도 디아벨리는 칠 수 있어’ 라는 말을 종종 했어도 나는 그를 사랑했다. 아무튼 우리는 디아벨리를 연탄으로 쳤는데 미스 풍켈 선생님은 왼쪽에서 베이스를 쳤고 나는 오른쪽에서 소프라노를 동일 음으로 쳤다. 한동안은 제법 잘 나가서 나는 차츰 마음에 안정을 되찾게 됐고 디아벨리라는 작곡가를 창조하신 신께 감사를 드리기도 했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 중
요제프 하이든과 그의 동생 미하엘 하이든에게서 음악 지도를 받기도 한 오스트리아의 ‘안톤 디아벨리 (Anton Diabelli, 1781-1858)’는 작곡가이기보다는 출판업자이자 편집자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1817년 ‘디아밸리 음악 출판사’를 설립하여 크게 성공한 그는 200여명의 작곡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을 출판하였으며, 특히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33 Veraenderungen ueber einen Walzer von Diabelli in C Major, Op.120)’를 비롯하여 슈베르트, 훔멜, 리스트, 체르니 등 50명의 음악가의 변주곡을 모아 만든 ‘예술가 동맹의 변주곡 (Vaeterlaendischer Kuenstlerverein Variationen)’을 완성시켰습니다.
디아벨리는 작곡가로서의 꿈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작곡을 하였습니다.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 기타를 위한 연습곡과 소나타들, 기타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기타와 성악을 위한 작품을 비롯하여 미사곡, 칸타타 등 200곡에 가까운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에 등장하는 곡은 정확한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디아벨리가 1839년에 발표한 ‘7개의 피아노 소나티네 작품번호 168 (7 Piano Sonatinas, Op. 168)’일 것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안톤 디아벨리 (Anton Diabelli) 7개의 피아노 소나티네 작품번호 168 (7 Piano Sonatinas Op. 168) |
1번 바 장조 (Sonatina No.1 in F Major) 1. Moderato Cantabile 2. Andante Cantabile 3. Rondo. Allegretto |
2번 사 장조 (Sonatina No.2 in G Major) 1. Allegro Moderato 2. Andante Sostenuto 3. Rondo. Allegretto |
3번 다 장조 (Sonatina No.3 in C Major) 1. Allegro Moderato 2. Andantino 3. Rondo, Allegro |
4번 내림 가 장조 (Sonatina No.4 in B♭ Major) 1. Allegro Moderato 2. Andantino 3. Rondo. Allegro |
5번 라 장조 (Sonatina No.5 in D Major) 1. Tempo de Marcia 2. Marcia funebre. Andante Maestoso 3. Rondo Militare. Allegro |
6번 사 장조 (Sonatina No.6 in G Major) 1. Allegro Moderato 2. Andante Cantabile 3. Rondo. Allegro |
7번 가 단조 (Sonatina No.7 in a minor) 1. Allegro moderato 2. Andante Cantabile 3. Rondo. Allegretto |
디아벨리의 7개의 피아노 소나티네는 클레멘티나 두셰크와 같은 작곡가들의 소나티네와 함께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피아노 입문 후 꼭 배워야 하는 필수 레퍼토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소나티네입니다. 아기자기하고 어렵지 않지만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 덕분에 어린 학생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들이기도 합니다. 특히 좀머 씨 이야기에서는 왼손 부분은 ‘풍켈 선생님’이, 오른손 소프라노/멜로디 부분은 ‘나’가 맡아 연탄으로 연주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초등학생 추천 도서로 뽑히기도 하였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흥미로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 출판업자로만 널리 알려져 있는 디아벨리의 피아노 소나티네와 함께 읽으면 풍켈 선생님과의 장면에 몰입하기가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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