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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리뷰 [책 속의 클래식]

리뷰 2021년 1월호 - 피에르 샤라스 '프란츠의 레퀴엠',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by zoiworld 2021.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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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52. 피에르 샤라스 '프란츠의 레퀴엠',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모차르트가 1791년 죽기 직전까지 작곡을 하다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한 유작인 레퀴엠 (Requiem in d minor, KV. 626)을 비롯하여 베르디, 베를리오즈, 포레, 생상스, 드보르작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작곡한 레퀴엠 (Reqiuem)은 죽은 이를 위한 미사인 위령 미사에서 사망한 자의 영혼에 영원한 안식을 하느님께 청하며 연주하는 음악입니다. 첫 곡인 입당송 (Introitus)의 가사가 주여,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Reqiuem aeternam don eis Domine)로 시작하는데, 이 위령 미사에 등장하는 첫 가사 단어인 레퀴엠을 따 부르게 되었으며, 진혼곡이라고도 부릅니다.

 

19세기 독일 리트 형식의 창시자이자 600여편의 가곡을 작곡하며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미완성 교향곡을 포함한 13편의 교향곡,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겨울 나그네, 백조의 노래, 가곡 송어, 마왕을 비롯하여 수많은 소나타, 오페라 등을 세상에 남긴 작곡가였습니다.

아쉽게도 슈베르트는 단 한 곡의 레퀴엠도 작곡하지 않았는데, 그런 슈베르트의 레퀴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샤라스의 소설 프란츠의 레퀴엠입니다.

 

1982두세 번의 만남으로 등단하였으나 배우로도 활동하고 희곡을 발표하며 극작가로도 활동한 피에르 샤라스 (Pierre Charras, 1945-2014)1984년 소설 루이즈네 집에서 (Chez Louise), 1987년 소설 매주 일요일에 우리는 행복했지 (On etait heureux les dimanches), 1991년 소설 천사의 회고록 (Memoires dun ange), 1998년 소설 밤 직전에 (Juste avant la nuit), 2006잘자요, 왕자님 (Bonne nuit, doux prince) 등을 집필한 작가입니다. 특히 그의 소설 아돌프 (Adolphe)2002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명인 이자벨 아자니가 주연을 맡아 영화화되며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습니다.

1994년 작 앙리 (Monsieur Henri)로 프랑스의 유서 깊은 문학 상인 되 마고 상 (Prix des Deux Magots), 2000년 작 배우 (Comedien)발레리 라르보 상 (Prix Valery Larbaud), 2003년 작 19(Dix-neuf secondes)프낙 소설 상 (Prix du roman Fnac)을 수상한 피에르 샤라스의 마지막 소설이 바로 프란츠 슈베르트의 삶을 조명한 2009년 소설 프란츠의 레퀴엠 (Le Requiem de Franz)입니다.

 

피에르 샤라스의 소설 프란츠의 레퀴엠은 레퀴엠의 구성에 따라 서창, 주여, 분노의 날, 무서운 대왕, 기억하소서, 저주받은 자들, 눈물의 날, 주 예수 그리스도, 희생 제물, 거룩하시도다, 축복, 하느님의 어린양, 영원한빛, 이렇게 1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챕터가 시작할 때 각 노래의 첫 가사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Kyrie eleison, Christe eleison 등이 부제처럼 등장합니다.

프란츠의 레퀴엠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슈베르트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피에르 샤라스는 자신이 마치 당시 비엔나의 슈베르트가 된 것처럼 슈베르트의 삶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병약하였으며 매우 소심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던 슈베르트의 작곡과 삶, 그리고 사랑에도 적극적이었던 많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프란츠의 레퀴엠슈베르트, 그 미완의 이야기란 부제처럼 슈베르트가 자신의 장례식에서 울려질 작품이 어떤 것일까에 대한 고민이 중간중간에 등장하며 베토벤이나 파가니니, 그리고 친구들의 그늘에 가려 주눅이 들거나 오히려 자만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불안정한 슈베르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 슈베르트의 면모도 드러내어 주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슈베르트는 자신의 장송곡을 처음에는 가곡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베토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작곡한 현악오중주 (String Quintet in C Major, D.956, Op.163)이나 멜로디가 매우 유명한 피아노 트리오 2(Piano Trio No.2 in E Flat Major, D.929, Op.100), 미완성 교향곡 (Symphonie No.8(7) in b minor, D.759 Unvollendete) 등을 떠올리지만 결국은 레퀴엠을 작곡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란츠의 레퀴엠 속 매독으로 인하여 레퀴엠의 작곡을 시작도 하지 못한 슈베르트가 숨을 거두기 직전 그는 자신을 위한 장송곡으로 죽음과 소녀를 떠올립니다.

 

..오래전에, 소녀를 찾아 내려온 죽음의 사자를 그린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 후에 그 시를 모티프 삼아 현악사중주를 작곡하기도 했다. 나는 그 어린 소녀다..

 

달이 떴다 (Der Mond ist aufgegangen)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편집자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Matthias Claudius, 1740-1815)1774년에 쓴 시 죽음과 소녀 (Der Tod und das Maedchen)은 슈베르트에게 큰 영감을 줬으며, 슈베르트는 이 시에 곡을 붙여 1817년 가곡을 작곡하였으며 1821년 초판을 발행하는데, 그 곡이 바로 가곡 죽음과 소녀 (Der Tod und das Maedchen, D. 531, Op. 7, No.3)입니다.

 

슈베르트는 1824, 가곡 죽음과 소녀의 멜로디와 클라우디우스의 시를 토대로 현악사중주 작품을 작곡하여 사망하기 2년 전인 1826년 개인적으로 초연을 하였습니다. 1악장 알레그로 (Allegro), 2악장 안단테 콘 모토 (Andante con moto), 3악장 스케르초 (Scherzo, Allegro molto), 4악장 프레스토 (Presto), 이렇게 4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String Quartet No.14 in d minor, D. 810 Der Tod und das Maedchen)는 슈베르트가 사망한 다음 해인 1829년 체르니에 의하여 출판되었으며, 1833년 공식적으로 무대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슈베르트가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를 작곡한 직후 자신의 친구이자 슈베르트의 초상화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 (Leopold Kupelwieser, 1796-1862)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면 피에르 샤라스가 왜 죽음과 소녀를 슈베르트의 레퀴엠으로 선정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2개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했다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도 불쌍한 인간이야. 건강이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점점 나빠지고 있다네. 가장 빛이 나던 희망도 사라지고 사랑과 우정으로 가득하던 행복이 가장 큰 고통으로 바뀌고 있다네.. (Denke dir einen Menschen, dessen Gesundheit nie mehr richtig warden will, und der aus Verzeiflung darueber die Sache immer schlechter statt beser macht; denke Dir einen Menschen, sage ich, dessen glaenzendste Hoffnungen zu nichte geworden sind, dem das Glueck der Liebe und Freundschaft nichts bietet alshoechstens Schmerz)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슈베르트의 속마음과 죽음을 직전에 앞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워하던 천재 음악가의 모습에 동화될 수 있는 피에르 샤라스의 소설 프란츠의 레퀴엠과 슈베르트의 가곡, 그리고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를 함께 감상해보면 더욱 깊이 있는 감상에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