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51. 박혜원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 프란시스 플랑 <검은 성모를 위한 찬가>
코로나 19로 인하여 해외 여행의 길이 거의 모두 막혀버린 요즘, 랜선으로 대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프랑스로 예술 기행을 떠나는 듯한 감성에 빠질 수 있는 신간이 출시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백신이 나오면 바로 떠나고픈 여행지에 프랑스를 꼽도록 만들고 있는데요. 바로 박혜원의 2020년 10월 신간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입니다.
브뤼셀의 리브르 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박혜원은 브뤼셀 왕립 미술학교에서 판화과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판화과를 졸업하였으며, <천창전>, <자투리전> 등 11회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매혹과 영성의 미술관’, ‘그림 속 음악산책’ 등의 저서를 남긴 화가이자 작가입니다. 박혜원이 2019년 프랑스의 작은 도시들을 여행하며 교회 건축이나 미술 작품들을 예술기행의 형식으로 쓴 책이 바로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인데요, 그림 속에 들어있는 음악들에 대한 책을 서술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은 박혜원의 신간답게 책 속에는 클래식 작품들이 곳곳에 들어있습니다.
그 중 서문 ‘그림, 그 영혼의 여정’에서 그녀가 자신이 프랑스의 명소를 다니며 발견한 아름다움에 대한 여정을 정리하며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던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칸타타 속 아리아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알토를 위해 바흐가 1726년에 완성한 교회 칸타타 ‘즐거운 안식이여, 사랑하는 영혼의 기쁨이여 (Cantata ‘Vergnuegte Ruh, beliebte Seelenlust’, BWV. 170)’가 그 주인공입니다.
Vergnuegte Ruh, beliebte Seelenlust,
Dich kann man nicht bei Hoellensuenden,
Wohl aber Himmelseintracht finden;
Du staerkst allein die schwache Brust.
Drum sollen lauter Tugendgaben
In meinem Herzen Wohnung haben.
즐거운 안식이여, 사랑하는 영혼의 기쁨이여,
행복한 안식은 악의 길로는 얻을 수 없으니,
이는 천상과의 영적 결합으로만 가능하리;
당신만이 나의 나약한 마음을 강인하게 만들 수 있으니,
당신의 고결한 선물들이
나의 마음에 둥지를 틀 수 있으리라.
뿐만 아니라 작가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국립 박물관에서 처음 ‘수르바란 (Francisco de Zurbaran, 1598-1664)’의 ‘천주의 어린양 (Agnus Dei)’을 처음 보았던 감격의 기억을 2019년에 콜마르, 샤르트르, 로카마두르, 소레즈, 아시 등의 도시를 여행하며 마주친 미술 작품들과의 연결을 통하여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에서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의 종착지인 ‘아시 (Assy)’는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경계 근처인 프랑스 동부에 자리잡은 아주 작은 알프스 마을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아시 성당은 현대 교회 건축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끼친 ‘마리 알랭 쿠튀리에 (Marie Alain Couturie, 1897-1954)’ 신부가 1937년 건축가 ‘모리스 노바리나 (Maurice Novarian, 1907-2002)’에게 설계를 맡기고 마티스나 샤갈의 타일 벽화들로 장식하여 완성한 성당입니다.
저자는 이 아시 성당이 탄생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 전염병,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 전역을 휩쓴 폐결핵의 공포를 달래기 위하여 아시 성당이 세워진 배경을 설명하며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가 작곡하여 1896년 초연을 올린 4막의 오페라 ‘라보엠 (La Boheme)’을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 라보엠의 주인공인 ‘미미’가 폐결핵으로 인하여 연인 ‘로돌포’의 품에 안겨 죽는 줄거리 때문이죠.
이렇게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의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클래식 작품 중 가장 구체적으로 작곡가와 연결이 되어있는 도시가 있는데 바로 프랑스 남부의 작은 중세 마을 ‘로카마두르 (Rocamadour)’와 20세기 프랑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프란시스 플랑 (Francis Jean Marcel Poulenc, 1899-1963)’입니다.
프랑스의 비평가 ‘앙리 콜레 (Henri Collet, 1885-1951)’가 러시아 5인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초현실주의를 지향하는 작곡가들 6명에게 ‘프랑스 6인조 (Les Six)’라 이름 붙였으며, 플랑은 ‘다리우스 미요 (Darius Milhaud, 1892-1974)’, ‘루이 뒤레 (Louis Durey, 1888-1979)’, ‘오네게르 (Arthur Honegger, 1892-1955)’, ‘조르주 오리크 (Georges Abel Louis Auric, 1899-1983)’, ‘타유페르 (Germaine Tailleferre, 1892-1983)’과 함께 이 ‘프랑스 6인조’의 한 사람으로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운동을 끌어나갔던 음악가입니다.
그는 피아노 모음곡 ‘세 개의 무궁동 (Mouvements Perpetuels, Fp. 14a)’, 발레 모음곡 ‘암사슴 (Les Biches)’, 2막의 오페라 부파 ‘티레시아스의 유방 (Les Mamelles de Tiresias)’,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1막 오페라 ‘인간의 목소리 (La voix humaine)’ 등의 온음계 중심의 선율이 강조된 플랑만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작곡하였습니다.
저자는 절벽에 매달려있는 듯한 중세 마을 ‘로카마두르’에서 1936년 8월, 플랑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반가워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성모 앞에 혼자 앉아 있던 나는 마치 내 심장에 은총의 검에 찔리는 하느님의 사인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한 플랑은 1936년 로카마두르에서 세례를 받은 후 처음으로 종교곡인 ‘검은 성모를 위한 찬가’를 작곡하였으며, 이후 1950년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수도를 품에 안고 슬퍼하는 성모를 위로하는 합창곡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Fp. 148)’, 1959년 ‘글로리아 (Gloria, Fp. 177)’, 그리고 1974년 공포 정치로 인하여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수녀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3막의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Dialogues des Carmelites, Fp. 159)’ 등 아름다운 종교 음악을 다수 작곡하였습니다.
플랑이 로카마두르에서 영적 체험을 하고 처음 작곡한 종교 음악인 ‘검은 성모를 위한 찬가 (Litanies a la Vierge Noire, Fp. 82)’는 원래 여성과 어린이로 구성된 합창과 오르간을 위해 작곡된 작품입니다. 또 플랑은 1947년 이 곡을 합창과 현악 오케스트라, 그리고 팀파니를 위해 편곡을 하였습니다.
로카마두르를 향해 걷던 오솔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양을 통하여 자신의 ‘어린 양’을 찾아나서는 박혜원 작가의 성스러운 마음까지 엿볼 수 있는 프랑스 예술 기행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에 스며들어 이 책이 의도하는 방향까지 집어주고 있는 플랑의 첫 종교 음악 작품 ‘검은 성모를 위한 찬가’와 함께 ‘랜선 여행’이 아닌 ‘책 속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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