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53. 바버라 퀵 '비발디의 처녀들', 비발디 <화성의 영감>
미국의 작가이자 시인, 저널리스트인 ‘바버라 퀵 (Barbara Quick, 1954-)’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전공하였고, 무용과 삼바를 배워 브라질의 무용단 ‘아콰렐라 (Aquarela)’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포르투갈어를 비롯하여 독일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북단 (Northern Edge, 1990)’, ‘아직도 친구- 결혼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 후 행복하게 살기 (Still friends-Living happly ever after even if your marriage falls apart, 1999)’, ‘날개 아래에서-우리의 인생을 바꾼 스승들 (Under her wings-The mentor who changed our lives, 2000)’, ‘더욱더 (Even More, 2003)’, ‘골든 웹 (A golden web, 2010)’ 등의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그녀가 2007년에 집필한 ‘비발디의 처녀들 (Vivaldi’s Virgins)’는 2009년 한국어 번역본이 초판 발행되며 우리나라에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바버라 퀵의 장편소설 ‘비발디의 처녀들’은 실제 인물들과 허구를 적절하게 섞어 당시의 시대상과 음악가들의 삶을 잘 엿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비발디의 처녀들은 이탈리아 고아 소녀들을 위한 고아원이자 음악원, 오케스트라였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 (Ospedale della Pieta)’에서 비발디의 가르침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안나 마리아 델라 피에타 (Anna Maria della Pieta, 1696?-1782)’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오스페달레’는 이탈리아어로 병원을 뜻하지만, 비발디가 살았던 시대에는 고아나 환자 등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자선 단체를 의미하였습니다.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는 당시 베네치아의 수녀들이 운영했던 고아원으로 ‘성가대의 딸들’이란 의미의 ‘필리에 디 코로 (Figlie di coro)’라 불리는 오케스트라를 꾸려 음악적 재능을 지닌 고아들을 연주자로 키워냈습니다.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는 수녀원에서 운영되었기에 기본적으로 ‘선신적이고 순종하고 겸손한 주의 종’의 자세를 중시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유분방하였던 성격으로 알려진 안나 마리아는 이런 이유로 다른 동료들에 비하여 승진이 늦어졌으나, 천재적인 음악 재능으로 바이올린 외에도 5개의 악기를 능숙하게 다뤘으며 연주자 계급인 ‘코로 (Coro)’를 뛰어넘어 피리에 디 코로의 지휘자 자리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비발디는 자신의 애제자였던 안나 마리아를 위하여 무려 28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여 헌정하였습니다. 실제로도 안나 마리아는 유럽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비발디만큼의 큰 명성을 얻은 인물입니다.
비발디의 제자였던 고아 소녀 안나 마리아와 그녀와 함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서 필리에 디 코로에 소속된 다양한 처지의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기에, 비발디의 작품들이 소설에 쉼 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 (Antonio Lucio Vivaldi, 1678-1741)’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그리고 성직자였습니다. ‘붉은 머리의 사제 (Il Preto Rosso)’란 별명으로 불린 비발디는 가장 유명한 작품인 사계를 비롯하여 화성의 영감, 미사 ‘글로리아’ 등 수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1703년부터 1740년까지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716년 필리에 디 코로의 단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던 비발디는 ‘안나 마리아를 위한 6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6 Violin Concertos for Anna Mari)’를 작곡하여 자신이 가장 아꼈던 바이올린 연주자 안나 마리아에게 초연을 맡겼는데, 그 중 3번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Violin Concerto in D Major, RV. 229)’는 소설 ‘비발디의 처녀들’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안나 마리아를 위한 6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외에도 ‘6곡의 드레스덴 소나타 (Dresden Sonata in C Major, RV.2 & RV.3/ in d minor, RV.12/ in g minor, RV.28/ in A Major, RV.29/ in B flat Major, RV.34)’,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트리오 소나타 (Trio Sonata in B flat Major, RV.77)’, ‘글로리아 (Gloria RV.589)’ 중 ‘쿰 상토 스피리투 (Cum Sancto Spiritu)’ 등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는 비발디의 처녀들은 천재 음악가이지만 고아이기에 고독한 안나 마리아가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을 그리워하고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며 일어나는 해프닝들이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발디가 작곡을 구상하고 후에 곡을 안나 마리아에게 연주하도록 악보를 건내는 등, 여러 차례 다뤄지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비발디가 1711년 바이올린과 첼로를 포함한 다양한 편성을 위해 12개의 협주곡 모음집으로 발표한 ‘화성의 영감 (L’Estro Armonico)’입니다.
‘조화의 영감’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특히 지하철 환승 시에 울리는 음악으로도 익숙한 6번 협주곡 ‘바이올린을 위한 가단조 협주곡 (Concerto for solo Violin & Strings in a minor, RV.356)’ 중 1악장 알레그로가 유명합니다. 소설 속 비발디는 ‘영감 (Estro, 에스트로)’가 동물 암컷들의 교미기란 뜻도 있기에 제목을 이렇게 붙인 이유가 달마다 바뀌는 기분과 출혈 때문일 것이고 그 것은 자신과 연주를 하는 필리에 디 코로의 소녀들만이 알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끝자락에 등장하는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가장 큰 후원자 페르디난도 3세 데 메디치 대공에게 헌정한 음악회에서 ‘화성의 영감’에 대한 묘사를 다른 작품들에 비하여 세세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음악회에서는 화성의 영감 중 3번 ‘바이올린 협주곡 사장조 (Concerto for solo Violin in G Major, RV.310)’, 5번 ‘두대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Concerto for 2 Violins, Cello & Strings in A Major, RV.519)’, 그리고 8번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Concerto for 2 Violins in a minor, RV.522)’가 연주됩니다.
특히 2013년 영화 ‘웜 바디스 (Warm Bodies)’에도 등장하는 8번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에서 1바이올린 솔로는 비발디, 2바이올린 솔로는 안나 마리아가 맡아 연주하는데, 이는 비발디가 안나 마리아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추측과 비발디가 안나 마리아에 대한 애정이 제자를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비발디의 소녀들이 처녀들이 되기까지의 17세기~18세기 시대상을 엿볼 수 있으며, 비발디라는 위대한 음악가들이 고아 소녀들을 훌륭한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수학하기 위해 작곡한 500곡이 넘는 수많은 작품들, 특히 ‘화성의 영감’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만나볼 수 있는 바바라 퀵의 ‘비발디의 처녀들’은 역사물, 추리물, 음악 소설 등 다양한 장르가 섞여 흥미로운 전개를 펼쳐내고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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