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15.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욕심쟁이 거인”, 그리고 후바이의 오페라 “욕심쟁이 거인”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 단편 작가이며 극작가이기도 했던 “오스카 핑걸 오플래허티 윌스 와일드 (Oscar Fingel O’Flahertie Wills Wilde, 1854~1900)”는 19세기 후반 영국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특출났던 재능만큼이나 기괴한 행적들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유명세를 몰았던 슈퍼 스타였으며 46년이란 짧은 삶을 사는 동안 재치있으면서도 날 선 사회 풍자가 담겨진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The picture of Dorian Gray, 1891)”, “캔터빌의 유령 (The Canterville Ghost, 1887)”, 희곡 “살로메 (Salome, 1894)”, “파두아 공작 부인 (The Duchess of Padua, 1883)”, “진중함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1895)”, “심연으로부터 (De Profundis, 1905)”, “오스카 와일드의 편지 (The Complete Letters of Oscar Wilde , 1960)” 등이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작가로도, 사회 유명인으로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1895년, 그의 나이 41세가 되던 해에 남성들과 외설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내 “콘스탄스 Constance Lloyd Wilde, 1859~1898)”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가 있었으나 퀸즈베리 후작의 아들이었던 “알프레드 더글라스 (Lord Alfred Douglas, 1870~1945)”와 연인 관계를 함께 유지하고 있던 양성애자였습니다. 이 둘의 관계에 불만을 가졌던 퀸즈베리 후작이 1895년, 오스카 와일드를 많은 소년들을 추행, 매춘하였다는 혐의로 고발하였고 오스카 와일드는 이 사건으로 2년간 감옥에 투옥되었다 영국에서 영구 추방되었으며 이혼까지 당해 1900년 파리에서 뇌수막염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자신의 아이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 하였습니다.
그의 짧고도 파란만장한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바로 오스카가 “나의 빛나는 보석들”이라 표현하였던 두 아들 “시릴 (Cyrill Holland, 1885~1915)”과 “비비안 (Vyvyan Holland, 1886~1967)”과의 시간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패로 끝나긴 하였으나 형기를 마치고도 아이들을 볼 권리를 얻으려 죽는 그 순간까지 애를 쓴 오스카 와일드의 행보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기 시작한 오스카 와일드는 이 동화 속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들과 지혜들을 녹여내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1888년에 출간된 동화책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 (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입니다.
“행복한 왕자”를 비롯하여 5개의 동화로 구성된 이 동화책의 3번째 작품이 바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명작 “욕심쟁이 거인 (The selfish Giant)”이며 줄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한 때는 아이들이 매일 찾아와 뛰어노는 생기 넘치는 정원이었으나 거인이 혼자 독차지 하기 위해 높은 담을 쌓고 아이들을 쫓아내어버린 후부터 봄이 오지 않고 늘 겨울인 정원, 그 이유를 모른 채 새가 돌아와 지저귀고 꽃이 다시 피길 바라는 거인의 마음 속에는 그리움이 점점 커져만 갑니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거인의 정원이 봄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아이들이 나무를 타고 담을 넘어 정원으로 들어와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서야 거인은 왜 정원에 봄이 찾아오지 않았는지를 알게 되었고, 키가 작아 혼자 나무에 오르지 못해 울고있는 아이를 안아 나무에 올려주고 담을 허물며 다시 정원은 아이들과 거인 모두의 정원이 되었고 거인과 아이들은 모두 친구가 되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이 동화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삶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작품으로 영국 출신의 작곡가이자 소프라노 “리자 레먼 (Liza Lehmann, 1862~1918)”이 1911년 낭송곡으로, 또 영국의 비올라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에릭 코우츠 (Eric Coates, 1886~1957)”가 1925년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The selfish giants, Phantasy for Orchestra)”로 작곡하고 현재까지 어린이 뮤지컬이나 연극, 애니메이션 등의 작품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헝가리 출신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제노 후바이 (Jeno Hubay von Szalatna, 1858~1937)” 역시 이 동화에 주목하여 이 작품을 주제로 오페라를 작곡하였습니다.
후바이는 부다페스트 리스트 음악원의 교수였던 아버지 “칼 후버 (Karl Huber, 1827~1885)”에게 바이올린 기초를 배운 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아힘 ()”에게 1873년부터 6년간 수업을 받은 후 파리로 진출, 바이올리니스트 거장 “비외탕 (Vieuxtemps)”의 후계자로 인정받아 1882년 벨기에 브뤼셀 음악원 교수로 취임한 음악가입니다.
1886년 후바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부다페스트 음악원 교수 자리를 넘겨받아 1919년부터 12년간 교장으로 지냈던 그는 오페라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제작자 (Der Geigenmacher von Cremona, 1894)”,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rina, 1924)”, 4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 독주곡 “볼레로 (Bolero Op.51, No.3)” 등 많은 작품을 작곡한 그는 황혼기를 지내던 1933년, 그의 나이 75세에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욕심쟁이 거인”을 오페라 작품으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Az önző óriás, Op.124”란 이름으로 1934년 완성된 후바이의 1막 오페라 욕심쟁이 거인은 후바이가 세상을 떠나기 1년전인 1936년 2월 초연되었으며, 작가 “라치오 마르쿠스 (László Márkus, 1881~1948)”와 “제노 모하치 (Jenő Mohácsi, 1886~1944)” 가 헝가리어 대본 작업에 참여한 헝가리어 오페라 작품입니다. 후바이는 이 작품을 쓰고 난 뒤에는 단 2곡의 성악곡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기에 이 단막의 오페라 욕심쟁이 거인은 그의 마지막 대작이라 회자되기도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자식애가 스며있는 아름다운 동화 “욕심쟁이 거인”과 그 책 속에 스며든 노년의 마에스트로의 역작 “욕심쟁이 거인”이 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15번째 이야기였습니다.
'쏘냥의 클래식 칼럼 > 리뷰 [책 속의 클래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 1월호 - 월트 스콧 '호수의 여인',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0) | 2018.04.23 |
---|---|
리뷰 12월호 - 블라디슬로프 슈필만의 자전 소설 '도시의 죽음', 그리고 쇼팽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야상곡 20번 내림 다단조' (0) | 2018.04.18 |
리뷰 9월호 - 요제프 겔리네크의 소설 "악마의 바이올린", 파가니니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카프리스 24번 (0) | 2017.09.17 |
리뷰 8월호 - 셰익스피어, 멘델스존의 음악극 "한여름 밤의 꿈" (0) | 2017.09.17 |
리뷰 7월호 - 셰익스피어, 벤자민 브리튼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0) | 2017.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