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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브런치 클래식 매거진

알쓸신클-18.히든 클래시커 (Hidden Classic-er) 1. 파데레프스키

by zoiworld 2018.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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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 않았으나 기이하거나 독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클래식 역사 속 히든 음악가를 만나는 히든 클래시커 (Hidden Classic-er)’, 그 첫번째 시간으로 폴란드의 초대 수상을 지낸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현재 저는 국제 학술 회의 참여차 폴란드의 포즈난이란 도시에 와있는데요.

우리 나라와 비슷하게 외세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았던 폴란드의 역사의 중심에 있는 이 도시에서 학술 회의 주최 워킹 투어를 다니던 중 폴란드 독립과 민주 정부의 시작의 중심에 한 음악가가 있었다는 설명에 큰 충격을 받게 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폴란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주위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정복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프로이센, 제정 러시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이렇게 3개국이 1795년 폴란드를 분할하여 1918년까지 약 200년의 시간동안 나폴레옹에 의한 바르샤바 공국 시대 (1807-1815)를 제외하고는 지배 아래에 있었던 슬픈 역사의 국가입니다.

1830, 독립을 위한 혁명 정부를 조직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고 19181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독립을 하게 되었죠.

 

폴란드는 그 후 2차 세계 대전, 공산 정권의 시기를 거쳐 1990년 드디어 민주화를 이뤄내며 첫 민선 대통령을 투표로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 파리에 그 근거지를 두었던 폴란드 국민 위원회 위원장에 있었으며, 소비에트 정권 아래에서 보호를 받으며 소련에 소속이 될 것인지 아니면 폴란드의 독립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국민들의 혼란 속에서 민심을 한 곳으로 모은 인물이 바로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 (Ignacy Jan Paderewski, 1860~1941)’입니다.

 

그는 건반의 애국자라 불리우는 피아니스트입니다.

1872년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웠으며 졸업 후 5년간 바르샤바 음악원의 피아노 교수로 재직하였던 파데레프스키는 1881년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작곡을, 다시 피아니스트로의 정진을 위하여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 폴란드 출신의 레세티츠키 (Theodor Leschetizky, 1830-1915)’에게 사사를 받았습니다.

1909년부터 바르샤바 음악원의 원장으로 재직하였던 파데레프스키는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져있는 폴란드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Arthur Rubinstein, 1887-1982)’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이미 미국에서 데뷔 이후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과 스타성을 부각시키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파데레프스키는 50여년간 미국 국내에서만 1500회 이상의 연주회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넘어가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윌슨 (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대통령에게 폴란드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을 때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며 폴란드는 소련의 지배 하에서 계속 안전 (?!)을 보장받으며 살 것인지 폴란드 정부를 세우며 독립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포즈난 시의 당시 유명한 호텔 바자 (Bazar)’앞 광장은 우리나라의 광화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의견이 분분한 국민들이 모인 바자 앞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파데레프스키는 연설 대신 피아노 연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100가지 말보다 음악을 선택한 그의 깊은 의미와 애국심을 느끼게 된 국민들은 폴란드 공화국을 세우게 되었으며, 파데레프스키는 폴란드 공화국 최초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1년간 공화국 수상 자리에 있었던 파데레프스키는 정치적 이유와 자신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소명 때문에 사임을 하고 화려한 연주 활동을 계속 이어갔으며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폴란드 공화국의 초대 수상이었던 이색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는 파데레프스키는 현재 폴란드에서 쇼팽만큼 사랑받는 음악가이자 애국자로 그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