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57. 앙리 바탈리 시집 '하얀 방' - 나디아 불랑제 가곡 '기도'
자신의 여동생이자 뛰어난 작곡가로 인정받던 천재 작곡가 ‘릴리 불랑제 (Marie-Juliette Olga Lili Boulanger, 1893-1918)’가 결핵으로 인해 24세란 젊은 나이에 숨지자, 그 충격으로 작곡을 중단하고 평생 교육자로 살아갔던 ‘나디아 불랑제 (Nadia Boulanger, 1887-1979)’는 아론 코플랜드, 피아졸라, 엘리어 가드너, 필립 글라스, 퀸시 존스, 거슈윈, 번스타인 등 수많은 음악가들을 길러내고 교류하였던 ‘음악가들의 스승’, ‘현대 음악의 스승’으로 불리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파리 국립 음악원, 줄리어드, 하버드, 런던 왕립 음악 대학 등의 강단에 오른 것뿐 것 아니라 여성 최초로 뉴욕 필하모닉, BBC 교향악단, 보스턴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하였던 음악가이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작곡에 대한 재능은 있으나, 먼저 세상을 떠난 여동생에 비하여 자신의 개성이 부족하기에 특별하게 기억될 작곡가가 아닐 것이란 판단에 작곡 활동을 중단하였던 나디아 불랑제였으나, 그녀 역시 9세란 어린 나이에 파리고등음악원에 입학하여 파반느 등으로 유명한 ‘포레 (Gabriel Urbain Faure, 1845-1924)’에게 작곡을 배우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칸타타 ‘인어 (La Sirene, 1905)’, 가곡 ‘베아트리체 수녀의 노래 (Cantique de soeur Beatrice, 1909)’, 오르간을 위한 3개의 모음곡 (3 Pieces for Organ, 1911), 피아노를 위한 ‘새로운 삶을 향하여 (Vers la vie Nouvelle), 1917)’,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판타지 바리에이션 (Fantaisie Variee, 1912)’ 등의 작품을 남긴 나디아 불랑제의 대표적인 가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기도 (Priere)’는 1909년 그녀가 22세 때 작곡하였으며, 앙리 바탈리의 시집 ‘하얀 방’에 포함된 시를 가사로 쓰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시인 ‘앙리 바탈리 (Henry Felix Achille Bataille, 1872-1922)’는 사실 1887년 15세의 나이에 첫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나, 1892년 연극 ‘나병 환자 (La Lepreuse)’의 1막의 대본을 쓰게 된 계기로 평생 수많은 희곡을 쓰게 되며 시인으로서의 명성보다는 극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893년 앙리 바탈리가 쓴 ‘잠자는 숲 속의 공주 (La Belle au Bois Dormant)’가 연극 무대에 올려졌고, 이 작품은 평론가들에게서 혹평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앙리 바탈리의 족쇄가 되어 평생동안 그가 올린 연극 작품들이 맹비난을 받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리 바탈리는 1897년 연극 ‘당신의 피 (Ton Sang)’를 시작으로 매년 새로운 각본을 무대에 올렸으며 ‘엄마 벌새 (Maman Colibri, 1904)’, ‘장미를 든 남자 (L’Homme a la rose, 1920)’, 그의 마지막 희곡인 ‘인간의 육체 (La Chair humaine, 1922)’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바탈리는 1904년 시집 ‘아름다운 항해 (Le Beau Voyage)’, 1917년 시집 ‘신성한 비극 (La divine tragedie)’, 1920년 시집 ‘사랑의 제곱/사랑의 사각형 (La Quadrature de l’amour)’,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시집 ‘하얀 방’까지 4개의 시집을 남겼습니다.
당시 프랑스 부르주아의 도덕성과 관습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넘쳐흐르던 바탈리의 작품 특성이 많이 들어가 있던 그의 희곡 작품들과 달리 그의 시집에서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바탈리의 인간미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앙리 바탈리의 첫 시집인 ‘하얀 방 (La Chambre blanche)’는 1895년 출판되었으며 이 시집에 포함된 ‘역사 (Histoire)’, ‘비가 온다; 달팽이는 이파리 아래에서 잠이 들고 (Il pleut; les limacons dormiront sous les feuilles)’, ‘나는 때때로 인간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Je porte parfois toutes les douleurs humaines)’, ‘죽고 사라진 달콤한 말 (Les doux mots que morte et passee)’, ‘파랑새, 시간의 색깔 (Oiseau bleu, couleur du temps)’와 같은 시들이 ‘이브 나트 (Yves Nat, 1890-1956)’나 ‘가브리엘 그로블레 (Gabriel Marie Grovlez, 1879-1944)’, ‘알프레드 브루뉴 (Louis Charles Bonaventure Alfred Bruneau, 1857-1934)’와 같은 19세기에서 20세기의 프랑스 음악계를 이끌어가던 지휘자,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들의 가곡들의 가사로 쓰여졌습니다.
나디아 불랑제의 가곡 ‘기도’ 역시 앙리 바탈리의 시집 ‘하얀 방’에 수록된 시 ‘오 마리! 나는 마리가 되고, 내 마음은 영원할 것이오 (O Marie! Soyez-moi Maire, et mon Coeur vivra
)’를 가사로 하고 있으며, 나디아 불랑제는 이 곡에 ‘조용하고도 달콤한 (Tranquille-doux)’이란 부제를 달았습니다.
O Marie! Soyez-moi Maire, et mon Coeur vivra
오 마리! 나는 마리가 되고, 내 마음은 영원할 것이오
O Marie! Soyez-moi Maire, et mon Coeur vivra
Qui me separera de l’amour de Marie?
Les tenebres ne m’empecheraient pas
De sentir sa douceur. – O Marie,
Vous m’avez fait perdre la paix, et pourtant
Je vous ai aimee d’une charite eternelle..
Peut-etre si Dieu, qui nous entend certainement,
M’avait cree selon elle,
On aurait ete bien heureux!
Mais ce n’est pas pour etre heureux,
Ce n’est pas pour cela que je l’ai attire..
Qu’elle vive sur mes volontes comme elle veut!
Je n’en demande pas tant, et s’il vous agree.
Simplement douce outendre ou pas,
Soyes-moi Marie et mon Coeur vivra.
오 마리! 나는 마리가 되고, 내 마음은 영원할 것이오.
누가 나를 마리에의 사랑에서 떨어뜨려 놓을까?
어둠조차 날 막지 못할 것이오.
다정함을 느낄 것이오. 오 마리!
당신은 나의 평온을 잃게 만들었지만
나는 영원한 사랑으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들으심이 확실한 신께서
그녀를 따라 나를 창조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을 위하여
내가 그녀를 끌어당긴 것은 아닙니다……
내 소원처럼 그녀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길 바랄뿐!
난 많은 것을 원하지 않아요.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기만 한다면.
단지 순수하거나 온화하게
오 마리! 나는 마리가 되고, 내 마음은 영원할 것이오.
마치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연상되는 나디아 불랑제의 ‘기도’는 잔잔한 피아노의 반주 위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는 듯한 성악가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앙리 바탈리의 간절한 시구를 생생하게 살려주고 있습니다. 이 곡은 나디아 불랑제의 섬세한 작곡 스타일이 매우 잘 나타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 앙리 바탈리의 시집이 번역되어 출판되지 않았으며, 앙리 바탈리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작가인데요, 나디아 불랑제의 ‘기도’가 점차 많은 성악가들의 사랑을 받아가듯 이 곡을 통하여 앙리 바탈리의 많은 시들이 우리 나라에도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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