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스며든 클래식]
#61.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 - 바르톡의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
로시니의 오페라 ‘체네레놀라’의 원작인 동화 ‘작은 유리 구두’,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원작인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외에도 ‘장화 신은 고양이’, ‘빨간 망토’ 등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작품을 쓰며 ‘동화’라는 장르를 문학의 장르로 끌어 올린 프랑스의 작가가 바로 ‘샤를 페로 (Charles Perrault, 1628-1703)’입니다.
그가 1697년에 쓴 동화 모음집 ‘교훈이 담긴 옛날 이야기 또는 콩트 (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e, avec des moralites)’는 ‘어미 거위 이야기 (Contes de ma mere l’Oye)’란 부제와 함께 10개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으며, 이 10개의 이야기에 속하는 동화 중 하나가 바로 ‘푸른 수염 (La Barbe-Bleue)’입니다.
동화 ‘푸른 수염’은 수많은 저택과 영지 등을 소유하고 있으나 거듭되는 아내들의 실종으로 새로운 짝을 찾고 있는 푸른 수염을 지닌 귀족과 그의 7번째 아내가 된 여인의 이야기로 실존 인물이었던 ‘질 드 몽모랑시 라발 드 레 남작 (Gilles de Montmorency-Laval, Baron de Rais, 1404-1440)’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동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100년 전쟁에서 잔다르크와 함께 샤를 7세를 위하여 싸운 전쟁 영웅이었던 ‘질 드 레’ 남작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으나 3년이 지난 1432년 든든한 지지자였던 조부가 사망하고 권력 싸움에서 밀려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 인물입니다. 그 후 방탕한 생활로 영지를 잃어가는 것을 참다 못한 친척들과 그의 친동생이자 마슈쿨의 영주였던 ‘르네 몽모랑시 라발 (Rene de Montmorency-Laval, Seigneur de Machecoul, 1407-1473)’은 샤를 7세에게 청원하여 1435년부터 질 드 레 남작이 더 이상 영지를 매각하는 것을 금지토록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440년, 남작은 무려 이단 행위와 동성애, 그리고 140명이 넘는 아동을 살해한 혐의로 고발당하였으며 이 죄를 시인한 그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시체는 토막이 나 불태워졌습니다. 그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였다는 설 외에도 중세 시대 마녀 사냥에 희생된 무고한 인물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질 드레 남작을 모티브로 한 동화라는 주장 외에도 뱀의 유혹에 선악과를 먹는 아담과 이브, 판도라의 상자, 얼굴을 보지 말라고 했던 미지의 남편의 얼굴을 들춰보는 내용의 그리스 신화 속의 큐피트와 프쉬케와 같이 금지되어 있는 것들을 가지고 샤를 페로가 새롭게 창작했다는 설이 있는 동화 ‘푸른 수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일을 무려 6번이나 겪은 부유하지만 수상쩍은 귀족 ‘푸른 수염’, 그의 미스테리한 부인들의 연쇄실종사건 외에도 푸른빛의 수염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그를 보기만 해도 두려워하거나 도망을 가버립니다. 어느 날 푸른 수염의 성에서 이뤄진 파티의 초대장을 받은 자매들은 푸른 수염의 성으로 향하고, 이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동생은 푸른 수염의 섬뜩한 첫인상과 달리 자상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와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결혼식 후 푸른 수염의 성에서 살게 된 동생에게 푸른 수염은 성 안에 모든 방을 다 출입해도 되지만 지하 깊숙한 작은 방 하나만은 절대 열어선 안된다는 당부를 전합니다.
어느 날 푸른 수염은 외출을 하게 되었고, 마침 성에 방문한 언니가 동생을 설득해 작은 방의 문을 열게 합니다. 푸른 수염의 비밀의 방은 이전에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6명의 아내들이 살해된 채 은닉되어 있던 장소였고, 이 사실에 놀란 동생은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열쇠에 피가 묻고 맙니다. 성으로 돌아온 푸른 수염은 열쇠에서 핏자국을 발견하고 자신의 7번째 아내 역시 다른 6명의 아내들처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에 분노하여 그녀를 죽이려 합니다. 마침 언니에게 이 사실을 듣고 동생이 걱정이 되어 성으로 찾아온 두 오빠들에 의하여 푸른 수염을 죽입니다. 푸른 수염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동생은 언니오빠들과 재산을 나누고 자신도 착한 남자와 재혼을 하게 됩니다.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은 독일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 (Jaques Offenbach, 1819-1880)’,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로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 ‘폴 뒤카스 (Paul Abraham Dukas, 1865-1935)’ 등에 의하여 오페라로 작곡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독특하며 현재까지도 무대에 많이 올려지고 있는 오페라가 바로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 (Bela Viktor Janos Bartok, 1881-1945)’의 유일한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 (Bluebeard’s Castle)’입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만난 작곡가이자 철학자이면서 언어학자였던 ‘졸탄 코다이 (Zoltan Kodaly, 1882-1967)’와 함께 헝가리를 비롯한 중앙 유럽 지역의 민요들을 수집하여 정리하였던 벨라 바르톡은 이 작업을 통하여 접한 수많은 민요들의 특색을 자신의 음악 세계에 반영하였던 작곡가입니다. 그는 2개의 관현악 모음곡, 5악장으로 구성된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2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3개의 피아노 협주곡, 6개의 현악사중주, 피아노를 위한 소곡집 ‘마이크로코스모스’, 그리고 2개의 발레곡 ‘허수아비 왕자 (The Wooden Prince)’와 ‘이상한 중국관리 (The miraculous Mandarin)’ 등을 작곡하였습니다.
1908년 영화 제작자이자 시인, 극작가였던 ‘벨라 발라즈 (Bela Balazs, 1884-1949)’는 자신의 룸메이트였던 바르톡의 첫 오페라를 위하여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을 대본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2년의 시간이 지나 대본이 완성되었을 때 발라즈는 바르톡과 코다이에게 이 대본을 함께 헌정하였으며, 이 대본에 감명받은 바르톡은 1911년 헝가리 예술협회 콩쿨을 목표로 단막 오페라를 작곡하게 됩니다.
1시간 가량 길이의 1막 오페라인 바르톡의 ‘푸른 수염의 성 (A kékszakállú herceg vára)’은 도입부에 나와 헝가리의 전통시 형식의 나레이션을 하는 음유시인과 중간에 등장하지만 아무런 대사나 노래를 하지 않는 푸른 수염의 아내들 3명을 제외하고는 푸른 수염과 아내 유디트, 단 2명의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심리극 형태로 새롭게 탄생한 헝가리어 오페라 작품이었습니다. 콩쿨에 입상하지 못한 바르톡은 이 오페라가 절대로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크게 상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이 오페라는 7년이 지난 1918년에서야 부다페스트 왕립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유디트가 푸른 수염의 성에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바르톡의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은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과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 점이 많으며, 그 첫째가 유디트의 가족들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오페라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작은 샤를 페로의 동화와 같은 결말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며 많은 이들이 이 오페라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또 어떻게 끝맺음을 맺게 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동화에서는 하나의 방을 제외하면 모든 방을 다닐 수 있고 단 하나의 방을 볼 수 없게 하고 푸른 수염은 외출하는 것과 달리, 바르톡의 오페라에서는 밝고 행복한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유디트가 사랑 때문에 어둠과 슬픔으로 가득한 푸른 수염의 성으로 온 후 그의 모든 것을 알고싶다며 굳게 닫힌 7개의 문을 푸른 수염과 함께 열어보게 됩니다. 첫 번째 문을 열자 피로 물든 고문실이, 두 번째 문 뒤에는 무기고가 있었으며 세 번째 방에는 빛나는 보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유디트와 푸른 수염이 네 번째 문 뒤에 펼쳐진 비밀의 화원을 지나 다섯 번째 문을 열자 성 주위의 광활한 자연이 펼쳐집니다. 안개로 가득한 눈물의 강이 펼쳐진 여섯 번째 문을 열고 난 푸른 수염은 유디트에게 7번째 문을 열지 말고 그저 자신과 돌아가자며 키스를 간청하지만 7번째 방 뒤가 궁금했던 유디트는 푸른 수염에게 그 문을 열어달라 강하게 말을 합니다. 유디트는 드디어 문이 열린 마지막 방에서 ‘영원한 새벽’, ‘영원한 낮’, ‘영원한 저녁’이란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는 영주의 전 부인들의 시체를 마주하게 되고, 푸른 수염에 의하여 ‘영원한 밤’이란 이름의 마지막 전시물이 되고 맙니다.
잔인성과 호전성, 소유욕과 권력욕, 미에 대한 욕구, 감수성, 그리고 비밀로 상징되는 7가지 방은바르톡이 자신의 정신 세계를 작품에 투영시키던 것을 넘어서 남성들의 7가지 욕망과 여성의 두려움을 넘어선 호기심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바르톡의 유일한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은 헝가리어 뿐만 아니라 독일어 가사로도 불리며 현대 오페라의 혁신적인 시도를 상징하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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