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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삼성 7기 칼럼(完)

2014년 9월 #6.전설이 된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사랑 이야기

by zoiworld 201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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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6.전설이 된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사랑 이야기

 

https://www.familysamsung.com/nonmember/familycolumn_show/18220?page=21&perPage=10&sort=id&order=desc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찾아온 쏘냥~입니다.

 

 

추석 지난 후부터 연주도 많아지고

영통 구청 근처에 클래식 전문 연습실을 만들고 있어 정신이 없었어요.

 

오늘은 많이 늦어졌지만...

마지막 칼럼에서 언급했던 전설이 된 사랑 이야기에 대해 칼럼을 써보겠습니다.

 

 

이 사랑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선 우선 오늘의 주인공 스키스키~씨에 대해 알아봐야 해요.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비롯 대부분의 동유럽 사람들의 이름에 붙은 스키~씨들 중

오늘 알아보려 하는 분은..

이노므스키~~~~~가 아닌

비예냐프스키입니다.

 

 

 

 

 

<젊은 시절의 비예냐프스키,

출처: http://www.audiosparx.com/sa/composer/Henryk_Wieniawski/sounds.cfm/63>

 

 

 

헨리크 비예냐프스키 (Henryk Wieniawski)는 폴란드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그는 1850년 폴란드의 루블린(Lublin)에서 태어나

8살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해 바이올린을 전공했어요.

 

영재이자 신동이였던 그는 13살의 나이에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St.Petersburg)에서 솔로로 데뷔했답니다.

영주 7세때 솔로 데뷔 앨범을 발매했는데 뭐가 대단하냐 하신다면

그는 약 150년 전의 인물이라는거죠..

장영주도 비예냐프스키도 부러운 소시민 쏘냥입니다_

 

아무튼 1860년부터 페테르스부르크 궁전의 전속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고

1862년부터 5년간은 페테르스 부르크 음악 학교의 교수로 재직했어요.

 

 

벨기에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비외땅(Henri Vieuxtemps, 1820-1881)

동시대 음악가였던 비예냐프스키는

비외땅의 후임으로

벨기에 브뤼셀의 왕립음악원에서 1874년부터 3년간 교수로 재직했답니다.

 

 

비예냐프스키는 세계적인 거장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안톤 루빈슈타인 (Anton Rubinstein, 1829~1894)과 미국 연주 순회를 하기도 했답니다.

 

 

 

 

 

 

 <페테르스부르크의 궁정 연주자로 연주 중인 비예냐프스키와 베토벤 멍멍이...왜 힘들어 보일까요?ㅎㅎ

출처 : http://www.wieniawski.pl/kdCmsAssets/render/file_name/henryk-wieniawski-w-palacu-zimowym.jpg>

 

 

 

 

이 이름도 어려운 비예냐프스키가

사라사테(Pablo Sarasate, 스페인, 1844~1908)

비외땅

요아힘(Joseph Joachim, 헝가리, 1831~1907)

이자이(Eugene-Auguste Ysaye, 벨기에, 1858~1931)와 함께

파가니니 이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들 중 한명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그가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조국 폴란드의 회상과 제 2의 고향이였던 모스크바의 향수를

그의 기교적인 프랑스-벨기에 파의 음악에 포함시켜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많이 작곡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예냐프스키는 바이올린에서 쓰여지는 현대의 많은 기교와 활 주법을 완성시키기도 했습니다.

 

 

 

 

 

<비예냐프스키의 가장 유명한 곡인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라단조 작품번호(Opus/Op.)22번 1악장 중

슬러 스타카토와 화려한 주법이 들어가있는 부분>

 

 

 

그가 완성시킨 테크닉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 스타카토 주법입니다.

 

스타카토는 음이 연결되지 않고 끊어서 연주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비예냐프스키는 위의 동영상 첫부분처럼

기존에 있던 테크닉인 스타카토, 즉 한음씩 끊어 활을 바꿔가며 연주하는 것이 아닌 

(활을 올리는 것을 올림활, 내리는 것을 내림활이라고 합니다.)

 

올림활 한 활을 쓰며 멈췄다 올리며 연주하고 멈췄다 다시 올리며 연주하고를 반복해

슬러 스타카토라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주법을 만들었어요.

 

스타카토 주법을 더 다양하고 화려하게 만든 것 외에도

손가락으로 줄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갖다 대기만 하고 연주하는 하모닉스 주법과 스타카토를 접목시키는 등

 파가니니가 시도했던 주법들을 더 견고하게 완성시켰답니다.

 

이런 테크닉을 활용해 작곡한 비예냐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2번은

현재 멘델스존과 시벨리우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가장 사랑받는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비예냐프스키의 실루엣, 출처: http://www.wieniawski.com/kdCmsAssets/render/file_name/sylwetka.jpg>

 

 

 

 

이 비예냐프스키와 오늘의 주제인 전설이 된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 있냐구요?

그것은 바로 비예냐프스키가 작곡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 한 곡과 관련이 있어요.

 

이 곡은 바로 작품 번호 (Opus/Op.) 17번인 Legende, 전설입니다.

 

 

안개처럼 멀리서 다가오는 피아노/오케스트라를 뒤따르는

바이올린이 아득하고도 먼 옛 이야기를 몽환적이면서도 구슬프게 노래하며

이 곡은 시작됩니다..

 

슬픈 멜로디가 끝날 즈음 박자가 바뀌며 열정적이고도 아름다웠던 행복했던 기억들을 노래하다

다시 처음의 슬픈 기억으로 돌아가 사라져버리는 그리움의 노래,

전설의 동영상을 함께 들으며 이 이야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까발려보겠습니다.

 

 

 

 

<제 교수님의 은사님이셨던 레오니드 코간(Leonid Kogan, 우크라이나, 1924~1982)의 전설 연주

출처:http://www.youtube.com/watch?v=iaXpe56k5Aw>

 

 

 

1859 24살의 혈기 왕성했던 젊은 대가 비예냐프스키는

루빈슈타인과의 연주 여행 중

영국 런던에서 루빈슈타인의 소개로 한 젊은 여성을 만나

한눈에 뿅~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자벨라 햄튼 (Isabella Hampton),

 

그녀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햄튼 (Elizabeth Hampton)

영국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조지 오스본 (George Osborne,1806-1893)의 여동생으로

엘리자베스는 이자벨라와 비예냐프스키, 이 두 젊은 연인을 축복해줬답니다.

 

이 때 비예냐프스키는 브뤼셀의 극작가인 자신의 친구에게

 

자네도 이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네

난 한 젊은 영국 여인을 만났고

난 이 여인을 그 어느 완벽한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넬리 악기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네..

그녀와 꼭 결혼하길 바라고 있어..

 

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답니다.

 

 

 

 

 

 

 

<젊은 연인이였던 비예냐프스키와 이자벨라

출처: http://www.wieniawski.com/kdCmsAssets/render/file_name/henryk-wieniawski-z-zona-izabela.jpg> 

 

 

 

 

But! 그러나! 하지만!!!

 

이자벨라의 아버지인 햄튼 경은

음악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자벨라가 조금더 권력이 있으며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으로 시집을 가기 바라는 마음에

비예냐프스키의 청혼을 거절하고 말았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절망에 빠져버린 비예냐프스키,

 

그는 비통한 마음을 안고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난 너의 전설로 남고 싶다

 

..란 마음을 표현한 곡을 작곡해

이자벨라에게 헌정하려 마음을 먹고

밤새 작곡을 했답니다.

 

 

다음날 저녁 음악회에서

이 곡을 연주하며 이자벨라에게 작별을 고할 마음을 먹은 비예냐프스키는

그의 편(?!)이였던 이자벨라의 어머니 엘리자베스에게 연주회 초대장을 보냈어요.

 

어머니의 설득에 햄프턴 가족들은 음악회에 참석하였고

절망에 휩싸여 슬픈 이별을 고하는 무대 위의 비예냐프스키의 음악은

청중, 특히 햄튼 경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 연주 중인 비예냐프스키,

출처:http://cps-static.rovicorp.com/3/JPG_500/MI0001/196/MI0001196516.jpg?partner=allrovi.com>

 

 

 

햄튼 경은 연주가 끝나고 난 후 비예냐프스키에게

 

진실된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 자네가 우리에게 말한 이렇게도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아름다운 곡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네.

자네가 허락한다면 자네를 사위로 부르고 싶다네.

 

라며 이 젊은 두 연인의 결혼을 승낙했답니다.

 

 

물론!

결론은 1860년 8월 8, St.Andrew 성당에서 이자벨라와 결혼에 골인한 비예냐프스키는

아들 딸을 다섯이나 낳고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해피 엔딩이긴 하지만!

 

전설 작품은 슬픈 사랑의 전설을 표현한 곡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되겠죠^^;

 

 

 

 

 

<중년의 비예냐프스키 부부, 출처: http://www.wieniawski.pl/kdCmsAssets/render/file_name/wienio-z-zona2.jpg>

 

 

 

그 후 비예냐프스키는 잦은 연주 여행으로 무리한 일정을 이어가다

공연 중 무대에서 심장병으로 쓰러지게 됩니다.

8개월동안 60개 도시에서 215번의 연주회에서 연주를 했으니..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든 강행군이였죠.

 

 

비예냐프스키는 그 후 몇 해간 그가 사랑했던 연주회를 갖지 못했고

1879 4월 오데사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마친 후

 

1880년 3월 31

그의 45세 생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아직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현재,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비예냐프스키를 그리기 위해

5년에 한번씩 비예냐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쿨이 폴란드에서 열리고 있어요.

 

 

또 그의 전설이 된 사랑 이야기 “Legende”는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사랑하는 곡 중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연주되며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전설이 되어가고 있답니다^^

 

 

 

 

 

늘 그렇듯 궁금한 점이나 연주회 인포메이션은 tschiny@hanmail.net이나 www.soipark.net 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