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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냥의 클래식 칼럼/삼성 7기 칼럼(完)

2014년 11월 #9. 아내를 사랑한 작곡가 1

by zoiworld 201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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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9. 아내를 사랑한 작곡가 1

 

https://www.familysamsung.com/nonmember/familycolumn_show/18551?page=18&perPage=10&sort=id&order=desc

 

 

 

 

 

안녕하세요.

가을이 짙어가는 11, 드라이브~~가 아니라

군부대로 연주 투어를 떠나는 차 안에서 글을 쓰고 있는 쏘냥~입니다.

 

이번 칼럼은 원래는 한번에 올리려 했으나 거의 대서사시가 되어버려서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처럼(?!) 3부작으로 나눠 올리려고 합니다.

 

칼럼의 주제는 제 남편에게 좀 보고 배우라고 가져온 너무나도 사적인!

수능 날이 생일이니 보고 느끼는 점이 있으면 케이크라도 하나 준비하라고 남편에게 보여주려는 흑심이 담긴!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던 클래식 작곡가들에 대해 까발려보겠습니다^^ 

 

 

 

 

 

 

<클라라 비크 로베르트 슈만에게 헌정한 "로망스(Romance op.3)"의 주제로 다시 슈만이 클라라에게 헌정한 작품,

클라라 비크의 주제에 의한 즉흥곡 (Impromtu on Thema by Clara Wieck op.5)

출처 :  http://youtu.be/ZpOz9tLgFeQ>

 

 

 

 

우선 가장 유명한 애처가 작곡가는 제자였던 브람스와의 삼각 관계였던 걸로도 유명했던 슈만이 있죠.

그 외에도 사랑의 인사로 유명한 엘가,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팔불출로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입니다.

 

 

오늘은 그 1탄으로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에 대한 사랑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젊은 시절 바람둥이(?!)로 명성이 자자했던 슈만,

출처 :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87012494E69D5C219>

 

 

 

 

독일의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

원래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젊은 청년이였죠.

 

20살이 되던 해 그는

독특한 교수법으로 유명해진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비크는

당시 유명했던 소프라노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마리안네 비크(Marianne Wieck)와의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뒀는데

그 중 클라라 비크(Clara Josephine Wieck, 1819~1896)는 프리드리히의 넷째 자녀입니다.

 

 

클라라가 5살이 되던 해 비크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때까지도 말을 하지 못했던 클라라가 걱정이 되던 프리드리히는

그녀가 벙어리거나 귀머거리인 것이 아닌지 시험을 해보기 위해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다른 어떤 것에도 반응을 하지 않던 클라라가 피아노 소리에는 반응을 보이자

괴팍하고 권위적이지만 남들과 다른 특별한 교수법을 가지고 있던 프리드리히 비크는

클라라를 통해 성공을 꿈꾸게 됩니다.

 

 

 

<훗날 클라라 슈만이 되는 클라라 비크,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4Exn&articleno=12743917>

 

 

 

클라라 비크는 이미 9살에 첫 독주회를 열 정도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였고

그녀가 11살이 되던 해 로베르트 슈만이 자신의 아버지 프리드리히의 제자로

그녀의 인생에 들어오게 됩니다.

 

 

처음 슈만이 비크의 제자가 되었을 때만 해도

아직 어린아이였던 클라라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함께 피아노를 공부했던

17세의 에르네스티네 폰 브리켄(Ernestine von Fricken, 1816~1844)을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에르네스티네는 폰 프리켄 남작의 사생아였어요.

1834, 24살의 슈만은 에르네스티네와 약혼 반지까지 교환했지만

이 사실을 알게된 프리켄 남작이 에르네스티네를 데리고 돌아가버렸고

 

1835년 음악 이론과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드레스덴으로 떠났다 돌아온

클라라와 다시 함께 비크의 집에서 지내게 되며

에르네스티네에 대한 사랑은 급격히 식어버리고

클라라와 새로운 사랑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에르네스티네 폰 프리켄, 출처 : http://www.schumannportal.com/1184.html>

 

 

 

하.지.만.

프리켄 남작에게 슈만과 에르네스티네의 관계를 알렸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성공의 발판이자 애지중지했던 16세의 딸 클라라를 꼬신 이 바람둥이 제자를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술을 사랑하고

어딘가 모를 음침한 우울함도 지니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손가락 힘을 단련시키기 위해 슈만 자신이 직접 만든 기계 때문에 손을 다치게 되어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은 끊겨버리고 말았던 로베르트 슈만은

비크에게는 그저 배은망덕한 미래가 불투명한 작곡 지망생일 뿐이였던 것이죠.

 

 

그에 비해 클라라는 사춘기에 접어들어 불타오르는 사랑을 어찌할 수가 없었죠.

그녀의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공개적으로 연애를 할 수 없었던 이 연인은

친구들을 통해 몰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워나갔답니다.

 

 

결국 비크와 로베르트 슈만의 클라라를 둔 쟁탈전(?!)은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었어요.

그 당시 법은 클라라가 21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 동의 없이 결혼할 수가 없었고

비크는 괘씸죄까지 덧붙여버려 슈만을 미성년자 유괴죄로 고발해 버렸어요.

 

또 로베르트의 전 약혼녀였던 에르네스티네는

1838년 체트비치 백작(Graf von Zedtwitz)과 결혼을 했지만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프리드리히 비크의 편에서 증언을 했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5년간의 긴 법정 싸움 끝에

클라라가 21살이 되기 바로 하루 전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해줘

클라라와 로베르트는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는 참석하지 않았죠.

 

 

 

<결혼, 순결의 상징인 은매화, 출처:https://t1.daumcdn.net/tistoryfile/fs11/20_21_1_21_blog258710_attach_1_117.jpg?original>

 

 

 

 

길고 험난했던 사랑하는 클라라와의 결혼식

전날 슈만은 결혼 선물로 가곡집 미르텐(Myrthen)을 선물했답니다.

 

미르텐은 신부의 화관을 장식하는 꽃 은매화를 뜻합니다.

 

독일의 유명 시인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

모젠(Julius Mosen, 1803~1867),

뤼케르트(Friedrich Rueckert, 1788~1866)를 비롯

영국의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번즈(Robert Burns, 1759~1796),

아일랜드 출신의 무어(Thomas Moore, 1779~1852),

영국의 여류 시인 팬쇼(Catherine Maria Fanshawe, 1765~1834)

유명 시인들의 26개의 시에 곡을 붙인 이 가곡집은

첫번째 곡 헌정(Widmung)이 가장 유명하답니다.

 

 

 

 

<헌정 (Widmung), 출처 : http://youtu.be/BF-YV-hGLGM>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인 이 헌정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로 유명합니다.

 

 

Du meine Seele, du mein Herz. 그대는 나의 영혼, 나의 심장이요.

Du meine Wonn, O du mein Schmerz. 그대는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이요.

Du meine Welt, in der ich lebe. 그대는 내가 살아가는 나의 세계요.

Mein Himmel du, darein ich schwebe, 그대는 내가 날아오르는 하늘이요.

O du mein Grab, in das hinab, 그대는 무덤,

ich ewig meinen Kummer gab. 나의 고뇌를 영원히 묻어버린..

 

Du bist die Ruh, du bist der Frieden. 그대는 나의 안식, 평화요.

Du bist vom Himmel mir beschieden, 그대는 하늘이 내게 주신 사람,

Dass du mich liebst, macht mich mir wert. 그대의 사랑이 나를 가치 있게 만들고

Dein Blick hat mich vor mir verklaert. 그대의 시선이 나를 빛나게 만드오.

Du hebst mich liebend uerber mich. 당신이 나를 그 사랑 속에서 나를 드높여주니

Mein gutter Geist, mein bessres Ich! 그대는 나의 선한 영혼이며 나보다 더 나은 나 자신을 만들어 준다오.

 

 

슈만이 결혼한 이 해는 가곡의 해라고 불려질 정도로 그가 많은 가곡을 작곡한 해였어요.

1년동안 무려 138의 가곡을 작곡했답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달까요?!슈만이 정신병으로 라인강에 몸을 던지기 전까지 14년간

클라라와 로베르트는 행복한 부부생활과 음악적 활동을 통해

클라라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슈만은 작곡가이자 평론가로 명성을 높여갔답니다.

 

 

 

<로베르트와 클라라 슈만, 출처 : http://www.rodoni.ch/schumann/immagini/roberteclara.jpg>

 

 

 

슈만의 가족력은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는데요.

슈만의 아버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 신경쇠약을 앓다가

로베르트가 16세가 되던 1826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같은해 그의 누나인 에밀리에 슈만 역시 자살했습니다.

 

23살이 되던 해 손가락 부상으로 인한 좌절과 슬픔 속에

죽은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하며 나타난 그의 정신병 증세는

평생 음이 계속 들리는 환청에 시달리며 심해졌어요.

 

클라라와의 결혼 후 안정을 찾을 것 같던 로베르트 슈만은

피아니스트로서의 미련 때문인지

잘나가는 여류 피아니스트인 클라라를 질투하는 마음이 은연 중에 생겨났고

그런 자격지심들이 클라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부딪히며

양극성 장애, 조울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피아노 오중주 op.44 중 2악장: http://youtu.be/0mksDpO5Zx4>

 

 

 

특히 로베르트는 조증인 상태에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고 하는데요.

그가 클라라에게 헌정하고 그녀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한

1842년 작품 피아노 오중주 (Piano quintet in E flat Major Op.44)

로베르트 슈만의 기쁨과 클라라에 대한 사랑이 전 곡에 흐르고 있어요.

물론 2악장의 경우는 장송 행진곡으로 그의 슬픈 마지막을 암시하고 있지만요.

 

이 곡은 현악 사중주에 피아노를 더해 피아노 오중주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슈만의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어요.

 

 

1854년 그의 정신병 증세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그는 라인강에 투신하고 말았답니다.

근처에 있던 어부에게 구조되어 목숨은 건졌지만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2년간 투병 생활을 했답니다.

 

물론 클라라 슈만은 피아니스트로 활발히 활동하며

슈만의 제자였던 14살의 연하인 브람스와 알쏭달쏭한 관계로 함께 연주 여행을 다녔지만요.

 

 

 

 

 

<클라라 슈만의 삶과 그녀의 두 남자(?!) 로베르트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Clara"

출처 : http://indolentdandy.net/fitzroyalty/2009/05/10/clara-schumanns-bizarre-love-triangle/>

 

 

 

 

1856,

사리 분간조차 하지 못했던 슈만은 폐렴까지 겹쳐 죽어가고 있었고

그가 죽기 3일 전 브람스와의 연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클라라가 마지막으로 면회를 왔을 때

음식을 삼킬 수도 팔다리를 들 수조차 없었던 로베르트는

클라라를 껴안고 한마디 말을 남겼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어요.

 

 

그것은 바로

Ich Weiss., 알고 있어.

 

 

 

이에 대해 클라라는 아래와 같이 브람스에게 편지를 썼는데요.

 

 

로베르트는 나를 보고 웃었고 무서울 정도로 강한 힘으로 나를 껴안았어요.

그 때 그는 팔다리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떠한 금은보화를 준다 해도 나는 이 포옹을 잊을 수 없을거예요.

 

 

모든 것을 잃고 놓아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알았던 걸까요?

 

아내에 대한 사랑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던 자신을 대신하고 있는 브람스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클라라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일까요?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였을까요?

클라라 슈만 역시 그가 죽은 후 40간(!!)

슈만의 악보를 정리, 출판하며

연주회를 통해 그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평생 활동하며

독신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노년의 클라라 슈만,

출처 : http://www.schillerinstitute.org/graphics/photos/hist_poet_musicians/schumann_c.jpg> 

 

 

 

 

여담이지만..

브람스 역시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준 스승에 대한 의리일까요?

슈만 부부의 위대한 사랑을 지켜주고 싶어서일까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클라라 슈만의 곁에서 친구로 지내며

클라라 슈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켜주고 그의 마음을 감추어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클라라 슈만이 세상을 떠나고 1년 뒤인 189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다음 칼럼에는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바그너 이후 가장 위대한 독일 작곡가로 손꼽히며

나치와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야 했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그의 부인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www.soipark.net / tschiny@hanmail.net 으로 문의 환영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