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1.아내를 사랑한 작곡가 2
안녕하세요..
11월 중으로 아내를 사랑한 작곡가 시리즈 3편을 모두 써서 올리려 했으나
12월말이 되어도 완성 시키지 못해 좌절하고 있는 쏘냥입니다…ㅠㅠ
오늘은 두번째로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와
그의 아내 파울리네(Pauline de Ahna)에 대해 까발려보겠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그의 아네 파울리네 드 아네, 출처:http://paulthomasonwriter.com/wp-content/uploads/2012/08/strauss-and-pauline.jpg>
요즘 “인터스텔라”라는 영화가 큰 인기라는데요..
다크나이트, 배티맨 비긴즈, 메멘토, 인썸니아 등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SF 영화로
놀란 감독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꼭 시간을 내어 보러 가려...
...마음먹은지는 벌써 몇주째인데 정작 가지는 못하고 있는 영화랍니다.
(남편! 언제 보러 갈거냐고오~!!!)
이러다 아바타처럼 케이블에서 보게되지않을까란 걱정이 슬그머니 드네요..ㅠㅠ
아무튼!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명작으로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고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와 많이 교차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SF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영화인데
이 영화의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장식하는 음악이 2가지가 있습니다.
이 음악들이 두 슈트라우스의 음악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많지 않으실거예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도입부",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3rzDXNQxjHs>
두 주인공이 비행을 할 때 흘러나오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그리고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지구의 웅장한 모습과 함께 나오는
오늘의 주인공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의 서주입니다.
아마도
이 지구의 영상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실겁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작품을 바탕으로 1896년 작곡된
웅장한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을 작곡한 슈트라우스는 어떤 사람이였을까요?
<리하르트와 프란츠 슈트라우스, 출처:http://en.wikipedia.org/wiki/Franz_Strauss>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뮌헨의 호른 연주자였던 아버지 프란츠 슈트라우스(Franz Strauss, 1822~1905)와
맥주 양조업자의 딸이였던 어머니 요제파 프쇼르(Josepha Pschorr,1863~1910)의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났어요.
4살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11살에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슈트라우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이미
140여곡을 작곡한 음악가로 성장했답니다.
1882년에 뮌헨 대학에서 철학과 예술사를 배우기도 했던 슈트라우스는
1년 후 베를린으로 떠나
가장 유명한 19세기 지휘자 중
한스 폰 뷜로 (Hans Guido Freiherr von Buelow, 1830~1894)에게서
지휘를 배웠고
1885년 뷜로가 은퇴한 후 그의 자리를 물려받았답니다.
역시 라인인건가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그의 친필 사인, 출처:http://csosoundsandstories.org/wp-content/uploads/strauss4-980x500.jpg>
슈트라우스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tz, 1811~1886)가
13개 단악장 교향곡을 작곡하며 이름붙인
“교향시” 라는 장르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요.
교향시는
4악장~5악장의 오케스트라 곡인 교향곡 (Symphony) 가 아닌
단 하나의 악장으로 이뤄진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신화, 시, 소설, 회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작곡되었죠.
결국 쉴 시간이 없다는 뜻이죠..ㅠㅠ
이 “교향시”의 작곡에 심취했던 슈트라우스는
1889년, 드디어,
현악기 연주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교향시
“돈 후앙(Don Juan)”을 작곡했어요.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꼭 나오기 때문에 모든 현악기 주자들이 두려워 한다는 돈후앙,
출처: http://youtu.be/7q9AsHax-vk>
이 돈후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카사노바 돈 후앙이 아니라
이상형의 여자를 찾아 헤매다
결국 만나지 못해 절망에 빠져 죽음을 택하는
비극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답니다.
오케스트라 오디션이나 학교 졸업 시험에 꼭 들어가는 곡이라
모든 현악기 연주자들이 두려워한다고 알려져있죠…ㅎㅎ
이 곡 외에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아까 위에도 언급했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돈키호테 (Don Quixote, 1897)"
"영웅의 생애 (Heldenleben, 1898)"
등의 교향시를 작곡했어요.
교향시 외에도 다수의 작품을 썼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아내를 만나게 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그의 첫 오페라
“군트람 (Guntram, 1893)”
이후 많은 오페라 곡들을 작곡했는데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 영국의 작가, 1854~1900)"의 연극을 각색한
"살로메(Salome, 1905)"는 1막짜리의 오페라로
그의 대표적인 오페라이기도 하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오페라 살로메, 가장 유명한 "7개의 베일의 춤", 출처 : http://youtu.be/JjI8G6gA65w>
성경에 기초한 살로메의 줄거리는
세례자 요한
갈릴리의 왕 헤롯
그리고 그의 의붓딸 살로메에 대한 내용이예요.
헤롯 왕의 생일 축하연에서 춤을 춰 왕을 기쁘게 한 살로메는
소원 한가지를 빌 수 있게 되었는데
자신의 엄마 헤로디아의 꼬임에 빠져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라 쟁반에 담아 달라는 잔인한 부탁을 하게 되었죠..
결국 요한을 죽음에 빠지게 한 나쁜 여자 살로메는
자신의 유혹을 거절했었던 요한의 잘린 목을 껴안고
그 입술에 입을 맞추며 욕망을 충족시키는...
...이런 충격적인 장면도 오페라에 나온답니다.
역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거겠죠?????
(그러니 어서 나를 영화관으로 데려가달라!!!!ㅎㅎ)
슈트라우스는 살로메 외에도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엘렉트라(Elektra, 1909)”
“장미의 기사(Rosenkavalier, 1911)”
“낙소스의 아리아드네(Adriadne auf Naxos, 1916)”
..등등 많은 오페라를 작곡했답니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클래식 까발리기 1 참조)"에서 여주인공 엘사 역을 맡은 파울리네,
출처 :http://img1.photographersdirect.com/img/262/wm/pd2766519.jpg>
슈트라우스의 그녀 파울리네 마리아 드 아나(Pauline Maria de Ahna, 1863~1950)는
그 당시 유명했던 독일의 소프라노였답니다.
20살의 나이에
모짜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여주인공 파미나 공주로 데뷔를 한 파울리네는
슈트라우스와 결혼하는
이미 독일에서는 우리나라의 조수미만큼이나 유명한
“프리마돈나 (Prima donna, 오페라나 발레의 주역이자 인기 여자 주인공을 지칭)”
가 되어있었답니다.
29살의 슈트라우스와 30살의 파울리네,
연상연하의 커플이여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육군 장군의 딸이였던 파울리네의 기질 때문이였을까요?
예의바르고 수줍기까지한 슈트라우스와 달리
소프라노들의 “여왕의 기질”을 타고난 파울리네는
괴팍하고 말에 거리낌없이 하고싶은 얘기는 다 하는 성격이였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바로
비엔나의 총독이였던
발두르 폰 쉬라흐 (Baldur benedikt von Schirach, 1907~1974)와의 스토리입니다.
<나치 총독 쉬라흐,
출처:https://40.media.tumblr.com/4b7bc9bea48622ae2ae49d512bc31f72/tumblr_n9yvmaQI7r1scmabvo7_500.jpg>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치”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그너 음악의 신봉자였던 히틀러와
그의 오른팔이였던 괴벨스 (Paul Joseph Goebbels, 1897~1945)가
슈트라우스를
“제국 음악원 (Reichsmusikkammer)”의 장
..으로 지목하게 되면서 시작돼요.
지금의 북한의 피바다 가극단과 같은 역할을 했던
제국 음악원의 학장이란 공직에 머무르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주제가 작곡 등을 하며
고위 나치 당원들과 친하게 지냈던 슈트라우스는 나치가 아닌게 이상할 정도였는데요.
그 뒷배경에는
그의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를 지키려고 했던
슈트라우스의 숨은 뜻이 있었답니다.
<며느리 앨리스와 둘째 손자 크리스티안과 함께 있는 슈트라우스, 출처: www.richardstrauss.at>
슈트라우스와 파울리네 사이에는 한명의 아들이 있었어요.
이름은 프란츠 (Franz Strauss, 1897~1980).
그리고
프란츠의 아내이자 슈트라우스의 유일한 며느리였던
앨리스 (Alice von Grab Strauss, 1901~1991)는
체코 프라하 근방에서 태어난 유태인이였습니다.
모계 혈통을 따라가는 유태인들의 전통에 따라서도,
"순수 아리안인(Aryan, 인도유럽어족)”이 아닌 “더러운 유태인의 피”가 섞였기에
비난 받고 학교에서조차 멸시 받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손자 "리하르트 (Richard)"와 "크리스티안 (Christian)" 또한
유태인으로 분류되어 당장이라도 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는 상황이였답니다.
그런 자신의 유일한 며느리와 두 손자를 보호하기 위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그렇게
“친나치”적이면서 “중립적인 정치적 입장”에
서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면서도 1938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에
앨리스가 가택연금이 되자 오페라 “평화의 날 (Friedenstag, 1936)”을 무대에 올려
그의 평화와 자유에 대한 갈구와 나치에 대한 반항,
유태인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음악 속에 표현하려고 했답니다.
1942년 슈트라우스는 2차 세계 대전의 중심에 서있던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Garmisch-Partenkirchen)을 떠나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었던 곳이자
그와 그의 음악을 각별히 생각하고 있던
발두르 폰 쉬라흐가 총독으로 있던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족들과 함께 이주하게 됩니다.
이 때 부인의 거침없는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슈트라우스는 파울리네에게
나치의 고위층이 많이 있는 비엔나의 사교계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고 여러 번 당부했어요.
어느 날, 연주회가 끝나고 난 뒤의 파티에서
파울리네는 쉬라흐와 담소를 나누게 되었는데
“총독께는 무슨 얘기든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해도 될까요?
아니면 입 다물고 저 쪽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좋을까요?”
라고 물어봤다고 하네요.
흥미를 느낀 쉬라흐가 무슨 의미냐고 되묻자 그녀는
“만약 독일이 전쟁에서 지고 모든 것을 연합군에게 빼앗기게 된다면
총독께서도 어디론가 도망을 가셔야겠죠.
가르미슈에 총독님을 위해 은신처를 마련해드리겠으니 그 곳으로 오세요.
그치만 여기에 있는 다른 쓰레기들은 절대 데려오시지 마세요~”
<어디서나 당당한 게르만 여성이였던 파울리네,
출처:http://www.crescendo.de/wp-content/uploads/2013/11/strauss21_Pauline_008.jpg>
어떻게 생각하면 무모하기까지 한 그녀의 대범함(?!) 지녔던 파울리네.
이런 막무가내이자 인간 관계에 문제가 많았던 그녀였지만
슈트라우스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고
무려 55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었답니다.
게으르고 담배를 사랑했던 슈트라우스를 위해
알맞은 식단과
담배 연기 그윽한 방을 정기적으로 환기 시키며
가끔은 늘어져있는 그에게 닥달하며 작곡을 하도록 지시(?!)하던 파울리네.
“밀당”을 잘하는 파울리네라고밖에 표현이 안되는 부분이죠??^^?
그 덕분에 결혼 후 30여년이 지난 1930년에도
“나는 오로지 당신 곁에서만 완전히 행복하답니다.”
..란 고백을 슈트라우스에게서 받을 수 있었던거겠죠..ㅎㅎ?
1983년 “접시꽃(1948)”이란 곡이 발견되기 전까지
슈트라우스가 최후에 작곡한 곡으로 알려졌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Vier Letzte Lieder)"”라는 곡은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48년
파울리네와 그들의 결혼 생활, 그리고 슈트라우스의 죽음을 생각하며 쓴 곡인데요.
<저녁 노을, 출처:http://youtu.be/ppoqUVlKkBU> “봄(Fruehling)” “9월(September)” “잠들 때(Beim Schlafengehen)” “저녁 노을(Im Abendrot)”
"아이헨도르프 (Joseph Freiherr von Eichendorff, 독일의 시인, 1788~1857)"의 시에
작곡을 한 저녁 노을이 유명한데요.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Wir sind durch Not und Freude
우리는 슬픔도 기쁨도
Gegangen Han in Hand.
손을 맞잡고 견디어 왔다.
Vom Wandern ruhen wir beide
이제 방황을 멈추고 저 높고 고요한 곳에서
Nun ueberm stillen Land.
안식을 누리리.
Rings sich die Taeler neigen,
주위의 계곡은 깊게 패이고
Es dunkelt schon die Luft,
사방은 어둠으로 가득 찼네
Zwei Lerchen nur noch steigen
두 마리 종달새만이 아쉬움을 쫓아
Nachtraeumend in den Duft.
저녁 안개 속을 날아 오르네.
Tritt her, und lass sie schwirren
이리로 물러서 그들이 노래하도록 내버려 두자.
Bald ist es Schalfenzeit,
곧 잠들 시간이니..
Dass wir uns nicht verirren
외로움 속에서도
In dieser Einsamkeit.
우리는 방황하지 않으리.
Oh! weiter, stiller Friede!
오! 넓고 조용한 평화여!
So tief im Abendrot,
저녁 노을 속에서
Wie sind wir wandermuede.
우리는 피로로 지쳐있네.
Ist das etwa der Tod?
이것이 아마 죽음이 아닐까?”
<아이헨도르프, 출처: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0/Eichendorff.jpg>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정치 재판을 피해 스위스에서 무일푼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특히 방광에 병이 깊어졌던 슈트라우스와
역시나 노환으로 고생 중이던 파울리네,
이 노부부는 몸과 마음이 모두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 때 작곡된 이 작품은 바로
황혼에 접어든 부부가 긴 여정의 끝을 예감하고
솔직하고도 담담하게 표현한 곡이 아닐까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지휘를 하고 파울리네 드 아나가 노래를 부른 연주회 포스터, 출처: https://csoarchives.files.wordpress.com/2014/06/theodore-richard-and-pauline-1904.jpg>
1949년 5월에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의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된
슈트라우스와 파울리네.
55년간의 해로 끝에
슈트라우스는 심장 발작으로 1949년 9월 8일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슈트라우스의 장례식에서
자신도 데려가 달라며 관에 매달려 눈물을 흘렸던 파울리네는
그로부터 8개월 후인
올해가 가기 전에
시리즈의 3번째 주인공인 “에드워드 엘가”와 그의 부인의 스토리를
꼭 까발리기로 약속 드리며...
마지막으로 위험한 빙판길과 추운 날씨에
하루하루 더 치열하게 살고있는 우리들을 위해
바이올린 솔로 선율이 아름다운
슈트라우스의 “내일(Morgen)”을 들려드리며
칼럼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존 헨리 맥케이 (John Henry Mackay, 1864~1933)의 시에 작곡된 내일 (Morgen),
출처:http://youtu.be/qURtlClAkGU>
"And tomorrow the sun will shine again
그리고 내일 태양이 다시 빛날 것이다
And on the way that I will go
그리고 나는 다시금 길을 나설 것이다
She will again unite us, the happy ones
이는 행복한 우리를 다시 결합시킬거고
Amidst this sun-breathing earth,
태양을 호흡하는 땅의 가운데에서
And to the beach, wide, wave-blue
그리고 넓고 파도가 푸르른 해안으로
Will we still and slowly descend
우리는 잠자코 천천히 내려가
Silently we will look in each other’s eyes
말없이 상대방의 눈을 바라본다.
and upon us will sink the mute silence of happiness
그리고 우리는 거대한 침묵의 행복에 빠져든다.”
*언제나 궁금하신건 www.soipark.net / tschiny@hanmail.net 으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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